▲이재명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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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대한민국 산업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전환기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과거 우리가 마주했던 위기들이 단일한 외부 충격이나 순환적인 경기 변동의 파동이었다면, 현재 우리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복합적이며 구조적이고, 무엇보다 동시다발적이다. 하나의 변화만으로도 산업 생태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메가톤급 충격이 세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위협 1: 중국의 제조 패권 심화와 '과잉생산'의 구조화
중국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시장, 기술, 자원, 공급망을 모두 완벽하게 갖춘 차원이 다른 경쟁자로 진화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의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액은 4조 6,600억 달러로 전 세계 점유율 27.7%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는 2위인 미국의 2조 9,100억 달러(17.3%), 3위 일본(5.15%), 4위 독일(4.93%)을 크게 상회하며, 6위인 한국(4,160억 달러, 2.47%)과는 10배 이상의 격차를 보인다.
중국의 무서운 점은 양적 팽창이 질적 고도화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중국제조 2025' 정책의 종료 시점이었던 2025년을 기점으로, 중국은 전기차(EV), 배터리, 태양광, 드론 등 신산업 분야에서 전 세계 공급망을 사실상 장악했다.
미국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Marco Rubio)가 지난 2024년 5월 <중국이 만든 세계(The World China Made)> 보고서에서 지적했듯, 중국은 32개 고부가가치 제품군에서 미국의 세계 수출 점유율을 추월했으며, 역사상 미국이 마주한 가장 강력한 산업적 적수가 되었다.
2026년부터 시작되는 중국의 '제15차 5개년 계획'은 이러한 제조 기반 위에 AI와 데이터 경제를 결합하여 공급망의 완전한 자립과 기술 패권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디스플레이, 정밀기계 분야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아닌 '추월'이 일상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위협 2: 미국 트럼프 2.0 시대, 보호무역의 광풍과 강압적 투자요구
2025년 출범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넘어, 동맹국에게도 비용을 청구하고 자국 내 투자를 강요하는 '거래적 고립주의' 통상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현기증 나는 관세정책이 의도하는 바는 분명하다. 반도체, 이차전지, 자동차 등의 수입을 줄이고, 관련 제조생산기능을 미국 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모든 산업분야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AI디지털경제시대를 선도하는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자율주행 자동차, 로봇 등 핵심전략산업에서는 미국 내 완결형 공급망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의도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 대미 투자를 직접적으로 강요하는 것으로 노골화되었다. 2025년 연말 한미 양국은 지난했던 협상과정을 거쳐 조선산업 분야 투자(MASGA)를 포함하여 3,500억 달러(한화 약 500조 원)를 한국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 중 2,000억 달러는 현금 투자, 나머지 1,500억 달러는 조선산업 분야에 투입된다. 현금 투자액에 관해서는 연간 200억 달러의 상한을 설정했으나, 조선산업 분야 투자금액에는 금액 상한이 없다.
이에 따라 연간 최소 200억 달러에서 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한국의 최근 10년간(2015~2024) 국내 제조업의 설비투자 금액이 연평균 824억 달러 수준(115.3조 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이다.
대미 투자를 연간 500억 달러씩 투자한다면, 매년 국내 제조업 설비투자의 60% 이상을 미국에 투자하는 셈이며, 그만큼 국내 제조업 설비투자는 감소될 수밖에 없고, 중장기적으로 국내 산업공동화를 초래할 것은 명확하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 기업이 미국 내 공급망을 이용하고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것을 강요하고 있어,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가 한국 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도 어려운 구조다.
위협 3: AI 디지털 전환, 뒤처지면 디지털 식민지 전락 우려
생성형 AI의 등장은 산업의 판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전기나 컴퓨터처럼 모든 산업을 재정의하는 '일반목적기술'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수백조 원을 쏟아부으며 이 판을 장악했고, 중국 역시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특징은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함에 따라 승자독식의 성격이 강하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엄청난 투자 경쟁을 벌이고, 중국, 유럽, 일본 등에서도 국가 명운을 걸고 투자를 집중하는 것도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에서 한번 뒤쳐질 경우 회복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인공지능 3대 강국을 목표로 100조 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미국의 빅테크기업과 중국 EU 등의 국가단위 투자 스케일을 따라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연산력'이 곧 혁신 속도를 좌우하는 현 국면에서 국가 차원의 공용 컴퓨팅·데이터 파이프라인 부족, 비메모리 생태계(설계·EDA·IP) 취약, 전력망·송전선로·변전 용량 제약은 따라잡기 어려운 장애요인이다.
그 사이 미국과 EU는 보조금+규제 표준으로 시장규칙을 선점하고, 중국은 대규모 내수+국산화로 규모의 경제를 누적한다. 한국이 기술·자본·규범 삼박자에서 모두 경쟁력 없는 추종자로 밀려나 '디지털 식민지'의 길로 내몰릴 수 있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5년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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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업의 자강을 위한 전략방향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자강의 핵심은 산업발전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여 내부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산업성장의 기본은 산업전반의 생산성을 높이고, 산업구조를 미래성장산업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산업구조의 개편은 제조업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공급망 구조가 강건하게 유지되어야 가능하다. 첨단기술 분야에 연구개발투자를 집중한다고 해서 첨단기술의 산업화가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을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실력이고 경쟁력이다. 애플카의 실패와 샤오미카의 성공을 갈라놓은 핵심적 차이는 미국과 중국의 소부장 공급망 경쟁력 차이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국내에 소부장 공급망 생태계가 활발하게 작동해야 수출주도 캐시카우(Cash-cow) 산업과 미래성장을 주도하는 첨단기술산업의 성장이 가능하다. 소부장 공급망 생태계야 말로 산업성장의 기본 중의 기본이고, 우회하는 길은 없다.
한국의 산업을 위협하는 3대 요인에 맞서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산업성장의 기본을 튼튼하게 하는 적극적 산업정책을 펼쳐야 한다.
자강 전략 1: 산업성장의 근간인 소부장 산업생태계 강화
첫째, 중국에 대응하는 우리의 산업전략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적당한 기술 수준의 중간재 생산제품을 중국에 수출하는 구조는 끝났다. 중국과의 산업관계를 재구조화해야 한다.
대중국 산업경쟁 관계에서 상대적 우위를 보이는 일부 첨단산업(고사양의 메모리반도체, 이차전지 일부, OLED 등 첨단디스플레이, 의약 및 화장품 등 첨단바이오, K-콘텐츠 등 지식서비스) 분야에서는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노력을 강화한다.
철강, 석유화학, 기계, 가전, 조선 등 주력 제조업 분야는 생산성을 높여 대응할 수밖에 없다. 생산성 제고를 위해서는 현시대의 핵심기반기술인 인공지능 기술의 전면적 적용을 통해 인공지능 전환(AI transformation: AX)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제조 AX를 통해 생산공정을 대폭 혁신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원가·품질·납기에서 새로운 프런티어를 열어야 한다. 제조업 전분야에 걸쳐 소부장 공급망을 국내에 갖추는 것은 어렵다. 우리의 소부장 공급망을 면밀히 검토하여 전략적으로 유지 및 확장해 나갈 분야에 선택과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강전략 2: 미국과 첨단기술 협력체계 강화
미국에 대한 투자가 불가피하다면, 이를 철저히 '실리'로 연결해야 한다. 단순히 공장만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앞선 AI, 우주항공, 바이오 기술을 우리가 전수 받거나 공동 개발하는 '기술 협력형' 투자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산업의 인공지능 전환이 한국 산업의 성장동력을 회복하는 데 핵심적 과제이고, 인공지능 기술분야에서 압도적 우위성을 보이고 있는 미국과의 기술협력은 더욱 강화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기반 스마트 제조기술, 자율제조를 가능케 할 최첨단 로보틱스, AI 기술을 활용한 신약개발 분야, 최첨단 통신 및 우주항공 기술, 양자컴퓨팅 등 미국과의 기술협력을 강화할 분야는 매우 많다. 최첨단 기술분야의 알앤디(R&D) 센터를 설립하고, 미국의 우수 대학들과의 기술협력 과제를 확대하고, 우수 기술인력과의 교류를 강화할 방안을 최대한 발굴해야 한다.
또한 개별기업별로 분산적으로 투자하기보다는 미국 내 한국기업 전용 산업단지를 조성하거나 기술협력단지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모아가야 한다.
대미 투자가 국내 공급망과 연계되도록 부품 국산화율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자강전략 3: 제조 AX와 인재 확보에 모든 역량 집중
AI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도구다. 한국이 가진 최고의 자산인 '양질의 제조 데이터'와 '세계적 수준의 IT 인프라'를 결합하여, 세계 최고의 'AI 제조 강국'으로 도약해야 한다.
인공지능 3대 강국을 위한 투자를 GPU 구입 및 AI데이터센터 조성, 한국형 파운데이션모델 개발 등의 인프라성 사업에만 한정하지 않고,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제조업의 양호한 산업구성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도록 제조 AX 촉진 프로젝트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별로 수십 년간 축적된 공정 데이터, 설계 도면, 숙련공의 작업 노하우를 학습시킨 'K-산업 특화 sLLM(smaller Large Language Model, sLLM)'을 개발해야한다. 조선소의 용접 노하우, 반도체 공정의 미세 제어 기술을 데이터화하고 이를 로봇과 결합해 자율제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가제조 AX 첨단 R&D센터'를 설립하고, 전국 주요 산단에 '제조 AX엔지니어링센터'를 두어 청년 AI 기술인력이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돕도록 해야 한다.
미래 기술산업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은 결국 우수 인재 확보싸움이다.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혁신과 산학연 연계 강화를 위한 질적 전환이 필수적이다. 인공지능 디지털경제시대에 맞는 인재 양성을 위해 고등교육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하고, 산학연 연계 교육의 벽을 허물어야 고급 융합형 산업인력의 확보가 가능하다.
자국 인재만으로는 부족하다. 전 세계의 두뇌를 한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첨단 기술 분야의 해외 석·박사급 인재에게 영주권 및 국적 취득 절차를 획기적으로 간소화하는 'K-테크(Tech) 비자'를 신설해야한다. 단순한 비자 발급을 넘어, 주거, 교육, 의료 등 정주 여건을 패키지로 지원하여 이들이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는 폐쇄적인 단일 민족 국가 이미지를 탈피하고 개방형 혁신 국가로 나아가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결론: 강력한 산업정책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악수하는 한-중 정상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MOU 체결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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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업은 지금 '골든타임'을 지나고 있다. 중국의 추격은 이미 추월로 바뀌었고, 미국의 청구서는 날로 무거워지고 있으며, AI 혁명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복합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치열한 혁신 노력과 더불어, 정부의 강력하고 효율적인 산업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은 개별 부처가 각개약진할 때가 아니다. 산업부, 과기부, 중기부, 기후환경에너지부, 국토부, 보건복지부 등으로 흩어진 정책을 하나로 묶어낼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국무총리 직속의 '국가전략산업위원회'와 이를 뒷받침할 상설 PMO(사업관리조직)를 설치해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R&D-인력양성-금융-규제개혁-통상을 아우르는 통합적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 산업은 숱한 위기를 기회로 바꿔온 저력이 있다. 2026년은 한국 산업이 쇠락의 길로 접어드느냐, 아니면 위기를 딛고 G4 산업강국으로 도약하느냐를 가르는 역사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다. 미·중 패권 경쟁과 AI 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자강'의 기치를 들고 제조업 강국을 넘어 글로벌 4대 산업 강국으로 도약해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 기술을 다지고, 사람을 키우고,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김영수 원장
포럼사의재
* 필자 소개 : 김영수는 산업연구원에서 산업정책, 지역산업 육성, 국가균형발전정책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다. 지금은 (사)중소기업정책개발원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교육부의 라이즈위원회, 글로컬대학위원회, 교육발전특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학의 인재양성과 지역산업과의 협력체계 구축에도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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