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가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검찰이 1996년 8월 5일 서울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한 것 역시 인명살상의 규모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다음날 <경향신문> 4~6면을 비롯한 주요 신문들에 보도된 '검찰 논고 요지'에 따르면, 검찰은 10·26사태로 박정희가 사라진 직후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국민들은) 그동안 열망해 왔던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설렜습니다"라며 1980년 '서울의 봄'을 상기시켰다. 그런 뒤 "(전두환으로 인해) 국민은 민주화의 소망이 좌절당한 채 다시 12년여 동안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인명살상과 더불어 민주화 열망 파괴도 전두환의 핵심 죄목이었음을 보여주는 진술이었다.
검찰은 전두환이 민주화 열망을 좌절시킨 구체적 양상을 열거했다. 위의 '검찰 논고 요지'는 전두환이 국헌 문란의 목적을 갖고 내란을 저지른 일을 거론하는 대목에서 "주요 정치인들에 대한 체포·연금, 계엄군 병력의 국회 점거,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의 계엄포고령 제10호 발령 등을 통하여 국회를 사실상 해산시켰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역시 사형 구형의 핵심 요인이었다.
검찰은 전두환의 행위가 국민들에 대한 도전이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는 국민과 민주주의 그리고 헌법상 최고원리 중의 하나인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피고인들의 도전이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민들을 거역한 부분도 사형 구형의 근거였던 것이다.
검찰은 전두환이 국민의 군대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군대로 국민까지 공격한 점도 지적했다. "국민의 군대인 계엄군을 이용해 민주화라는 범국민적 열망을 짓밟으면서 헌법질서 파괴행위를 자행"했다고 규탄했다. 전두환이 정의와 불의의 가치관을 전도시켜 사회를 혼란케 만들고 전혀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논고문에서 언급됐다.
검찰이 전두환 사형을 구형하자, 417호 대법정은 환호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위 <경향신문>은 "장내에서는 '와'하는 환호와 함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라고 전했다. 법정 바깥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윤석열과 전두환은 비슷한 이유로 사형 구형을 받았지만, 구형을 받는 순간의 태도는 각기 달랐다. 윤석열은 웃음을 지었지만, "전씨는 아무래도 내부적으로 충격이 있었는지 연신 목덜미를 손으로 주물렀다"(위 기사).
전두환에 대한 사형 구형의 핵심 사유는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파괴하고 세상을 혼란에 빠트린 것이었다. 이 점에서 윤석열은 전두환과 다를 바 없다. 특검의 사형 구형은 그래서 당연하다. 특검의 표현처럼 이 구형은 비극적 역사의 반복을 막는 일이다. 이것은 누군가를 죽여달라는 구형이 아니라 세상을 살려달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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