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14 11:47최종 업데이트 26.01.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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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훈 후보자 "아들 병역 특혜 도모할 이유도, 영향력도 없었다"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유성호

이혜훈의 갑질이나 축재 논란은 사실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인사 검증을 했던 청와대도 이혜훈의 도덕성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지명했습니다. 왜 했을까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민주 정부가 보수 정부와 가장 다른 점은 두 가지로 집약됩니다. 하나는 통일정책, 다른 하나는 재정정책입니다. 민주 정부는 남북 관계를 어떡하든 평화 공존 체제로 가져가고 싶어 합니다. 보수 정부는 대결적입니다. 민주 정부는 복지를 강화하려 합니다. 문재인 정부 때가 대표적인데, 재정도 확장 기조를 견지합니다. 반면 보수 정부는 복지보다 부자 감세와 긴축 재정에만 진심입니다.

그런데 민주 정부는 대북 유화 노선을 취하되, 그 일을 보수진영 인사에게 맡기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국민 눈에 균형 잡힌 정책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임동원이 대표적 예입니다. 임동원은 원래 군 출신입니다. 그런 그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앞장섰습니다.

문제는 재정정책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투자해, 벌어서 갚으면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걸 '따갚되'라고 한답니다. '따서 갚으면 되잖아'의 줄임말입니다. 전형적인 '케인스주의'적 접근입니다. 역대 민주당 정부가 대개 그런 정책 기조를 택했습니다. 펌프에 마중물을 부어 저 아래 내려가 있는 지하수를 끌어 올리듯, 유효수요를 자극해 민생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정책입니다.

문제는 이런 확장적 재정 정책에 선뜻 앞장서는 보수 인사가 잘 없다는 점입니다. 앞장은커녕 지금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재정경제부 관료들은 코웃음을 치고 있을 겁니다. 무슨 한물가도 한참 간 케인스냐며 나라 걱정을 늘어지게 하고 있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창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주류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하이에크와 통화주의가 그들의 이론적 시조고, 기본 축입니다. 대한민국 재정정책을 수립하는 관료들에게 그 외의 이론은 전부 이단입니다.

청와대는 보수 정당 출신 경제 전문가를 쓰겠다는 방침을 먼저 정했을 겁니다. 그다음 명단을 죽 뽑아놓고 고심을 거듭했을 듯합니다. 몇 명의 후보가 압축됐고, 그들을 순차적으로 면담했을 테지요. 대통령의 재정정책 기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떤 구체적 정책 수단이 있을지 물었겠지요. 이혜훈과 김성식은 그들 중 가장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응답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경제 상황에서는 성장과 수요 진작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정책이 맞습니다'라고.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기용된 김성식은 원래 유명한(?) 운동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혜훈은 한국 주류 가문 출신입니다. 그러니 상품성에서 이혜훈이 한 수 위입니다. 동시에 약식 검증도 했을 테지요. 그런데 결과를 보니, 도덕적 문제가 없는 후보가 없습니다. 이 후보자가 아마 평균 정도였을 공산이 큽니다.

청문회에서 볼 단 한 가지

따라서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우리가 볼 건, 딱 한 가지뿐입니다. 아마 야당 의원들이 벌떼같이 덤벼들어서 이렇게 묻겠지요. '대통령의 기본소득론을 지지하냐? 국가채무를 늘리려 할 텐데 동의하냐? 툭 하면 현금 지원을 하려 들 텐데 그게 진짜 민생을 살리는 방법이 된다고 보냐? 재정적자를 감수하고라도 확장 기조로 가는 게 옳으냐?'와 같은 질문입니다. 거기에 이혜훈이 뭐라고 답하는지만 보면 됩니다.

거기서 예스라는 답변이 연속 나오면, 대통령의 첫 기획예산처 장관 임명에 담긴 포석을 우리는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국민의힘이 물고 늘어지는 건 이혜훈의 배신이 괘씸해서가 아닙니다. 이재명 정부의 재정정책 방어 논리를 국회에 출석한 자당 출신 장관에게 들으며, 매일 부들부들 떨 자신들 모습이 얼마나 한심할지 눈에 선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인사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혜훈의 도덕성은 어떡할 거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글은 그 문제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도덕성은 어차피 이혜훈에게 기대할 게 아니라고 봅니다. 원래 보수가 그런 걸 뭐 어떡하겠습니까?

우리 정치권에 예전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보수는 능력, 진보는 도덕성'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또 이어집니다.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격언입니다. 둘을 합치면 대충 이럴 것 같습니다. 보수는 능력을 발휘해 높은 자리에 오른 다음 그 권력으로 해 먹다 망하고, 진보는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나머지 다른 이들과 잘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왜 나왔을까요? 이승만 정권은 물론 군사독재 시절에도 권력은 당연히 보수의 것입니다. 진보는 감옥에 가거나, 재야에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권력이란 걸 가져본 최초의 진보 인사가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그전에는 국회의원 외에는 어떤 공직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아니, 김대중 정부가 되고도 재야인사의 등용은 극히 예외적이었습니다. 무슨 자리를 맡기고 싶어도, 하나같이 이력서에 쓸 만한 그럴듯한 경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보수 인사치고 부패 의혹 없는 사람 없다는 게 국민 인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보수 언론은 대놓고, 그래도 능력만 출중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옹호합니다. 하지만 진보 쪽에 대해선 완전히 다릅니다. 조그만 티끌만 묻었어도 위선적이라고 온갖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수천만 원이나, 국정원이 흘린 노무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가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민주 진보 정권이 수차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운동권 출신이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됐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된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입니다. 소위 '586 퇴진론'이 그렇습니다. 그럴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는데, 이번에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의심받는 진보의 도덕성

윤리심판원 출석한 김병기공천헌금 수수 등 각종 비위 의혹을 받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윤리심판원 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남소연

민주당의 강선우, 김병기 의원 사건으로 '아니, 어쩌다 운동권적 전통에 서 있는 상대적 진보정당인 민주당이 갑질에 공천 헌금에... 이게 무슨 꼴이냐?'는 탄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번만큼 민주당의 도덕성이 의심받았던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동시에 생각해 봐야 할 게 더 있습니다. 네 번째 민주당 정권입니다. 그러면 그동안 공직에 등용되어 차근차근 커온 인재가 꽤 있을 터입니다. 그런 정당에 이재명 대통령의 재정정책을 힘 있게 집행할 인물이 정녕 없을까요? 꼭 보수진영 인물까지 데려와야 할 정도일까요? 만약 진짜 그런 거라면 그 또한 슬픈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차피 관료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덕수를 보십시오. 국민의 정부에서 장관을,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그런 자가 계엄 때부터 대선 전까지 한 짓을 보면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홍남기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 최장수 부총리입니다. 그자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윤석열이 집권하자마자 사흘 만에 당시 부총리 추경호가 역대 최대 규모인 60조 원을 추경에 쓰라고 꺼내놓았습니다. 재정 관료들이 그렇게 노골적입니다.

그러니 진보적 재정정책을 다룰 수 있는 인사는 관료 중엔 없고, 정치권 쪽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없어서 없는 건지, 있는데 대통령의 차도지계(남의 칼을 빌려 나의 목표를 이룸)식 용인술 때문에 안 쓴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기획예산처 장관 물망에 오르는 전현직 민주당 의원이 별로 눈에 안 띈 건 사실입니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하면, 이재명 정부 이후 민주당의 정체성이 변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보수 정당의 붕괴입니다. 정당의 공간이론에 따르면, 모든 정당은 득표 최대화를 위해 이념적 위상을 스스로 조정하고 이동합니다. 지금 국민의힘이 극우로 가 있습니다. 덕분에 가운데와 그에 인접한 오른쪽이 헐렁해졌습니다. 꽤 큰 표밭입니다. 민주당은 그 밭까지 차지하려 합니다. 즉, 민주당의 보수화 현상은 필연적입니다.

대통령의 그림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그렇다면 이제 민주당은 '보수의 능력'까지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도보수층 표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습니다. '진보의 도덕성'입니다. 갈수록 의원들의 윤리의식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세상 이치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원래 민주당 당원이나 지지층은 격렬히 반발할 것입니다. 능력 있는 엘리트는 좋지만, 도덕성을 잃어버린 엘리트는 대중의 심판 대상입니다.

지금 겉으로 말은 안 하지만, 민주당 지지층의 속은 부글부글 끓습니다. "예산처 장관감은 못 내놓으면서, 원내대표를 하거나 장관 지명까지 받았던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 공천 헌금이나 받고..."라며 혀를 찹니다. 일반 국민의 분노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요컨대 도덕성은 흔들리는 반면, 능력은 아직 충분하지 않은 상황. 그게 불안한 겁니다. 벌써부터 이러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진짜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래서 할 일이 있습니다. 보수 정당이 퇴조할수록 국민이 바라볼 곳은 민주당밖에 없습니다. 민주당이 유능하고 도덕적인 정치를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민주당은 도덕성을 굴레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보수한테는 기대도 안 하면서, 진보에게는 끝없이 요구하니 억울할 때도 물론 있습니다. 오십 보와 백 보의 차이는 곽종근과 여인형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국민은 민주당에게 그 이상인 '정병주'를 기대합니다. 그게 민주당의 숙명입니다.

대통령은 뭔가를 내다보는 듯합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원래 진보 아니었고,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 보수 정당'이라면서 '앞으로 대한민국은 민주당이 중도 보수 정권으로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라는 말을 툭 던집니다. 엄청 중요한 화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할 때, 도덕성은 민주당의 기본값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도덕성은 당연히 그대로 지켜야 하고, 정책은 좌우를 안 가리고 능소능대하게 대처하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굉장히 무서운 말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이혜훈을 빌려 쓰더라도, 이제부터는 민주당 안에도 재정 전문가가 즐비해야 합니다. 동시에 도덕성도 지켜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문제 있다 싶으면 단호히 쳐내야 합니다. 여의도는 정치하는 곳이지, 법적 용어나 절차를 따지며 앉아 뭉개는 데가 아닙니다. 의원들끼리 온정주의적으로 서로 감싸는 꼴도 국민은 보기 싫어합니다.

검찰·사법 개혁을 마무리 짓는 대로 성장과 민생을 위한 능수능란한 정책 중심의 정치를 펼쳐 보이자는 대통령의 그림을 민주당이 얼른 이해해야 합니다. 하물며 도덕성에서 발목 잡히는 모습은 누구도 원치 않습니다.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민주당의 장고가 길었습니다. 그나마 12일 '김병기 제명' 결정을 내렸으니 민주당의 윤리의식은 그나마 남아 있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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