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13 13:25최종 업데이트 26.01.1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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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고향인 나라현을 방문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위령비 앞에서 기도하는 사진을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 올렸다.엑스 갈무리

이재명 대통령의 방일을 하루 앞둔 12일, 한일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나라현 나라시를 방문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그곳에서 고 아베 신조 총리에게 경의를 표했다.

정상회담의 사전 준비를 위해 고향에 왔다고 이날 오후 엑스(옛 트위터)에 글을 쓴 그는 "오늘 총리 취임 후 처음으로 고향인 나라현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라며 "조부모와 부모가 잠든 다카이치가(家)의 묘, 그리고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위령하는 유혼비(留魂碑)를 참배해 총리 취임을 보고했습니다"라고 썼다. 글자 그대로 하면 아베의 영혼이 머물러 있는 그 비석을 찾은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때로는 엄하게도, 뒤에서 나의 정치활동을 지켜주는 부모, 일본의 명예를 지키고 경제를 강하게 하는 데 심혈을 바친 아베 전 총리. 그런 생각에 다시금 마음을 집중하고 일본의 조타수라는 중책을 맡은 자로서의 결의를 새롭게 했습니다."

다카이치가 두 손 모아 기도한 유혼비에는 부동심(不動心)이란 글자가 큼지막이 새겨져 있다. 아베 신조의 부동심을 구성하는 것 중에는 외할아버지이자 극우 총리인 기시 노부스케의 정신도 있다. 다카이치는 그 정신을 아베 신조로부터 배우고 있다.

다카이치는 부동(不動)한 마음을 지닌 아베가 일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엑스에 썼다. 일본 극우가 말하는 일본의 명예는 주로 남북한 및 중국과의 역사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미국도 아닌 일반 국가들이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에 맞서 일본 극우는 자국의 명예와 위신을 지키고자 분투하고 있다. 위의 엑스 글은 아베 신조가 그런 지도자였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다카이치는 그런 아베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정상회담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이재명 대통령의 방일 전날 표시했다. 한일 역사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암시적 의미도 어느 정도 내비친 셈이다.

의심스러운 일본 극우의 인간성

아베 신조는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을 짓밟은 일에 대해 미안해하기보다는 도리어 이 문제를 갖고 한국을 나무랐다. 그는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가 총리 퇴임 다음 달인 2020년 10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요미우리신문 기자들과 대담한 내용이 <아베 신조 회고록>에 수록됐다. 이 회고록에 따르면, 한일 위안부 합의(2015.12.28)를 통해 이 문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 아베는 이렇게 답했다.

"이 합의를 맺는 것에 처음에는 저는 신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도 약속을 지켜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해결로써 국제사회에서 서로 비난·비판하는 것은 삼가하겠다, 즉 국제사회를 증인으로 삼는 것이죠. 이 두 기둥으로 이 문제를 종식하겠다고 한다면 마지못해 할 수밖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세금에서 10억 엔을 내고 제가 사과한 것입니다."

2015년 이전에 양국이 위안부에 관한 합의를 체결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아베는 한국이 약속을 어기고 사과를 계속 요구하기 때문에, 더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고자 국제사회가 보는 앞에서 위안부 합의를 체결했노라고 발언했다. 일본이 아닌 한국이 큰 잘못을 범한 듯이 말한 것이다.

아베는 자신이 위안부 합의 때 사과한 일을 거론했다. 이 사과는 일본 정부가 잘못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위안부 합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한 일을 환기시키는 대목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강제연행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인 고노 담화(1993.8.4)에서는 "감언, 강압"에 의한 강제 연행이 인정됐다. 하지만 아베는 자신의 사과가 강제 연행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강제 연행이 없었다면,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는 의미가 된다. 이를 전제로 하는 사과는 위안부들에 대한 감사 내지는 노고 치하 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의 사과가 피해자들에 대한 농락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이렇게 표현한 셈이다.

아베는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일본이 '도덕적 우위'를 갖게 됐다고도 발언했다.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부정한 뒤에도 마찬가지라고 자평했다. 아래의 괄호 속 표현은 원문 그대로다.

"확실히 합의는 깨졌지만 일본이 외교상 'Moral High Ground'(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지위)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한번 국제사회를 향해 합의한 것이니, 저는 상대방(한국)과 만날 때마다 '당신들, 잘 좀 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된 셈이니까요."

"당신들, 잘 좀 하세요"라는 말은 위안부 합의 이전이나 이후에나 일본이 한국에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한국이 하기에도 뭣한 이런 말은 제3국이 일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한국을 만나면 그런 말을 해주겠다는 아베의 말은 그를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는 일본 극우세력의 인간성을 의심케 만든다.

일본 극우의 전통 이어져

2014년 9월 3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첫 내각 회의 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새 내각 각료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아베 총리 오른 쪽에 총무대신으로 임명된 다카이치 사나에가 서 있다.AP/연합뉴스

회고록 내에서 위안부 합의를 거론하기 조금 전에 아베 신조는 그해 8월 14일의 '전후 70년 담화'를 언급했다. 이 담화에 나오는 "우리나라는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해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했습니다"라는 대목과 관련된 언급이었다.

회고록에서 그는 "여러 차례 사과를 시켰으면 이제 됐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라고 한 뒤 "제가 사과드립니다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자꾸 사과를 시키니까, 역대 총리들의 사과를 뭉뚱그려 표현하되 자기 자신은 사과하지 않는 '묘수'를 개발했다는 무용담이었다.

전후 70년 담화와 위안부 합의가 있기 전인 그해 4월 29일(워싱턴 시각), 아베 신조는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했다. 이때 그가 신경을 쓴 대목은 일본이 미국 등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회고록에서 그는 "7년 9개월간의 장기 집권 중에서도 저에게 가장 마음에 남는 연설"이라며 그때의 일화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때 70년 전 이오지마에서 일본군과 싸운 해병대 로렌스 스노든 중장이 회의장에 와줬더군요. 이분을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이 화해의 상징이 됐습니다. 이오지마의 생존자가 없는지 외무성에 알아봐달라고 해서 찾은 것입니다. 이오지마 수비대 사령관이었던 구리바야시 타다미치 대장의 손자인 신도 요시타카 중의원 의원을 그의 옆에 앉게 했습니다. 잘 만들어진 연출이었던 것 같아요."

회고록에서 아베 신조는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식민 지배를 하고 "잔혹한 짓"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일본만이 식민 지배를 한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이 계속해서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미국을 침공한 것은 식민 지배보다 한 단계 낮은 사건이다. 위의 논리대로라면 굳이 사과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아베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위와 같이 "잘 만들어진 연출"을 기획했다. 어떤 피해자가 더 많은 고통을 입었나를 따지지 않고 어떤 피해자가 힘이 더 센가를 따지는 일본 극우세력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시 노부스케에서 아베 신조로, 아베에게서 다카이치 사나에로 일본 극우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한일 역사문제 해결을 위해 다카이치 총리에게 일말의 기대감이라도 거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다.

아베 신조의 영혼은 나라시의 유혼비뿐 아니라 다카이치의 머릿속에도 깃들어 있다. 일본 정권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기다리기보다는 한국 스스로 끊임없이 압박을 가하는 편이 한일 역사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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