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영화는 이주인만큼이나 주변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에 관심을 기울인다. 먼저 엄마 태선이 있다. 세차장에서 참았던 고통을 드러내는 딸의 외침을 태선은 묵묵히 듣는다. 그리고 조용히 묻는다. "한 바퀴 더 돌까?" 딸의 고통 때문에 본인도 알코올 중독의 위험에 처한 태선은 딸을 대할 때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태선은 말 그대로 어른이다.
그리고 주인의 동생 해인(이재희)이 있다. 주인은 해인의 방에서 숨겨 놓은 편지 무더기를 발견한다. 거기에는 해인이 쓰다 만 답장도 있다. "우리 누나에게 편지 보내지 마세요." 그 편지를 읽고 주인은 모른 채 넘어가지만, 나는 이 장면에서 어떤 온기를 발견한다.
주인이 다니는 체육관 관장(이대연)도 있다. 체육관에 페인트를 바르는 장면에서 관장은 벽 한구석의 그을음은 그냥 두라고 말한다. 그것은 오래전 가출했던 미도가 체육관에서 지내면서 불을 내서 생긴 흔적이다. 그 흔적은 미도가 통과했던 고통의 기록이다. 관장은 그 기록을 지우지 않는다. 나는 이런 장면에서 역시 어른스러운 관심과 애정이 무엇인지를 느낀다. 주인에게는 이런 어른, 친구, 언니들이 주위에 있기에 함부로 이 잔인한 사회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곱지 않은 시선에 맞서는 힘을 얻는다.
영화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바흐의 아리아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가 인상적이라 가사를 찾아봤다. 이런 내용이다. "선한 목자가 깨어 지켜보는 곳에서는/ 양들이 근심 없이 풀을 뜯을 수 있다/ 통치자들이 정의롭게 다스리는 곳에서는/ 사람들은 평온과 평화를 느끼게 되고/ 그것이 바로 나라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주인 같은 소녀들이, 소년들이, 청년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살아가려면 그들 주위에는 어른다운 어른, "선한 목자", 정의롭게 다스리는 "통치자"가 있어야 한다.
<주인>은 섣부른 감상주의와는 거리를 두면서 사람을 살게 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의 거의 끝부분에서 밝혀지는 쪽지의 비밀은 그래서 뭉클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생각한다. 그런 변화는 거창한 게 아니다. 한 사람의 용기가 그걸 지켜본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그런 용기의 파도가 점점 퍼져갈 때 그게 세상을 바꾼다. 그렇게 정직한 용기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을 나는 혁명이라고 부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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