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워런 버핏이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진행된 인터뷰 중 미소 짓고 있다. 2018.5.7.
AP/연합뉴스
주식 투자로만 세계 최고의 거부가 된 워런 버핏(자산 210조 원 규모)이
지난해 인터뷰에서도 언급한"내가 여기 미국에서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다(I was lucky to be born here)"는 말도 시대, 국가에 중점을 둔 말입니다.
그는 3가지 의미에서 자신이 "행운"을 타고 났다고 말해 왔습니다.
1. 내가 1930년대에 태어난 것이 행운이었다(그는 1930년생입니다).
2. 내가 미국에서 태어난 것이 행운이었다.
3. 내가 미국의 백인 남자로 태어난 것이 행운이었다.
그렇습니다. 미국인 입장에서 1930년대 태어났다는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미국인의 관점으로 보면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침공이었고, 그때 워런 버핏의 나이는 11살, 1945년에 전쟁이 끝나기 전까진 18세 성년도 되지 않았으니 전쟁에 참전하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먼저 타고 난 겁니다.
게다가 1945년 종전 후 미국 경제는 오랫동안 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규모를 자랑했고, 전후 복구사업으로 성장률도 가팔랐지요. 그는 1947년 17살의 나이에 지금도 재무학으로 유명한 펜실베이니아 경영대학 와튼스쿨에 입학했다가 자신이 교수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아서 와튼 스쿨을 그만뒀다고 말할 정도로 부모로부터 좋은 머리를 타고 난 사람이었습니다.
미국 자본주의가 꽃필 시기에 태어났고, 그 자본주의에 적합하게 태어난 머리를 타고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세 번째 운, "내가 미국의 백인 남자로 태어난 것이 행운이었다"는 무슨 뜻일까요?
가치투자라는 개념을 만든 벤자민 그레이엄의 수제자로, 숫자의 천재이면서도 지독하게 근면성실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런 버핏은 스스로 자주 자신의 성공의 근원은 1930년대 미국에서 "백인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해왔습니다.
만약 백인이 아니라 흑인으로 태어났다면… 만약 남자가 아니라 여자로 태어났다면… 자신은 이 정도의 거부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란 뜻을 내포하고 있지요.
실제로 그는 2013년 미국 포천지 기고문을 통해 "나는 1930년에 태어났는데 그때는 여성의 역할은 교사, 간호사, 비서 등으로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경쟁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내가 꽤 잘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나는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인구의 절반과만 경쟁했었던 겁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1930년 미국 중상층에서 태어난 정직한 백인 남자의 시선으로 보기에, 자신이 사는 동안 미국 사회는 흑인에게 불리했다, 미국 사회는 여성에게 차별적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가 "내 비서보다 내가 더 낮은 실효세율을 적용받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2013년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미국은 제발 슈퍼리치들을 그만 과잉보호하라"(Stop Coddling the Super-Rich)라고 말했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특정한 시대, 부모, 국가로부터 충분한 행운과 혜택을 받은 거대부호들이 점점 더 거만해지고 있는 이유도 국가가 그들이 요구하는 "더, 더, 더"를 우쭈쭈해가며 받아들인 결과라고 버핏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자신이 누린 사회적, 시대적 행운을 겸손히 인정하고, 국가는 이들이 받은 혜택의 일부를 당연히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점점 가속화되는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막지 않으면 마치 미국의 부자들도 남미의 부자들처럼 살게 될 수밖에 없다고 워런 버핏은 걱정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워런 버핏은 "미국적 자유"를 평생 누리고 싶었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미의 부자들처럼 거대한 성 같은 집을 짓고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호원들을 두면서 자신의 부를 지켜야하는 삶의 속박이 싫었던 것이지요.
그는 자신이 뿌리 박고 사는 사회와 공존하지 않으면 개인의 자유는 오히려 제한된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웃 주민들과 자신의 고향 오마하 그 시골구석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함께 마시면서 웃고 떠들 수 있는 자유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가장 '미국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미국

▲지난 3일 플로리다주 팜비치 소재 마라라고 클럽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체포 관련 기자회견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연합뉴스
그러나 지금 미국을 통치하는 부동산 사업가 출신의 트럼프의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그의 자유는 한국에서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씨의 자유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요. 자유와 민주를 말하지만, 그 자유와 민주는 점점 더 부자, 백인, 남자들만의 전유물처럼 보입니다. 미국 안팎의 약자나 약소국을 죽이거나 짓밟아서 뺏은 살육전의 전리품처럼 보입니다.
미국의 저 오만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요? 한때 "미국적 자유"를 흠모해 마지 않았던 저는 그래서 2026년 한국에서 50대 중반의 나이로 살고 있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1930년 한국에 태어나 한국전쟁의 참상을 거치지 않았다는 건 얼마나 다행입니까?
1960년 한국에 태어나 남영동에서 고문을 당하지 않았던 건 얼마나 다행입니까?
2024년 12월 3일 내란을 막아준 한국인들이 내 이웃이라는 건 얼마나 다행입니까?
직장에서 2번이나 쫓겨나듯 나왔지만 뉴미디어 기술 덕분에 혼자서도 유튜브로 일하고 돈 벌어서 세금 내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10여 년 전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선배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자네들 뉴스타파처럼 유튜브라는 게 있었으면, 그랬으면 우리도 자유롭게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을 텐데… 40년이 이렇게 갔네."
뉴스타파도, 제 개인 유튜브도 다 기술 문명의 덕분, 시대의 덕분, 운이었던 것이지요.
앞으로의 한국은 결코 지금의 미국처럼 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도 자주 저렇게 됐다가 빠져나왔지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국운을 개척했습니다.
지금의 미국은 남미의 부자들처럼 거대한 성 같은 집을 짓고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며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격입니다. 미국의 부와 권력을 지킨다면서 그들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는 꼴입니다. 미국의 자유를 지킨다면서 "미국적 자유"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미국의 국운도 사그라들 겁니다. 미국은 지금 가장 미국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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