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바라보는 시민들.
염형철
3. 한강은 왜 존재하는가?
강이 역사적 행위자라면 강은 왜 그런 행위를 하는가? 강은 왜 생각하고 소통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실천적인 지식인이었던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참신한 설명을 제시한 바 있다. 그레이버는 동물행동학을 예로 들어서 그동안 동물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대체로 경제적인 합리성에 의존했다고 보았다.
동물의 행동은 먹이의 확보, 종의 번식, 유전자의 전파와 같은 경제적인 목적에 따라서 이루어지며, 목적 없는 에너지 소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동물은 합리적인 계산 기계이다. 그런데, 모든 동물들은 전혀 경제적인 목적이 없는 놀이(play), 즉, 순전히 즐거움을 위해서 노는 행동을 무수히 수행한다.
상호부조론(mutual aid)을 제시한 표트르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에 의하면, 자연에 경쟁도 있긴 하지만, 상호협력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원리이며, 생명체는 '넘쳐나는 힘의 발현'과 '살아있음의 순수한 기쁨'을 위해 협력하고 놀이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며, 즐거움은 그 자체로 설명할 필요 없는 삶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그레이버는 우리가 왜 '즐거움이 즐거운지'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놀이 원칙'(the play principle) 혹은 '유희적 자유의 원리'(principle of ludic freedom)가 모든 물리적 실재의 근저에 깔려있다고 제안한다.
그레이버는 유명한 장자(莊子)와 혜자(惠子)의 물고기의 즐거움에 대한 논쟁 이야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이야기의 핵심은 두 사람이 절친한 친구로서 이런 식의 논쟁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재미를 느꼈다는 것, 일종의 놀이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레이버가 이해한 장자의 설명은 이렇다. "자네가 논쟁에서 나를 이기려고 애써야 한다고 느꼈고, 실제로 나를 이길 수 있어서 그토록 기뻐했다는 사실 자체가, 자네가 옹호하던 전제(우리는 타자의 마음을 알 수 없다)가 틀림없이 잘못되었다는 걸 보여주네. 만일 철학자들조차 주로 그런 즐거움, 곧 단지 행위 그 자체를 위해 자신의 가장 높은 능력을 발휘하는 즐거움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는다면, 이는 분명히 자연의 모든 수준에 존재하는 원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세.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물고기들에게서도 그 원리를 자발적으로(spontaneously) 알아볼 수 있었던 거라네".
그레이버의 해석이 맞다면, 인간이 물고기나 개미의 행복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 또한 이 자연의 놀이 원칙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위자로서 강의 존재 이유는 강의 넘쳐나는 힘의 발현과 순수한 기쁨을 위해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강은 인간이 이용할 수 있게 비옥한 퇴적층을 형성하기 위해 범람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가진 힘을 최대한 즐겁게 발현하느라 범람하는 것이다. 이것이 강의 자유의지고 강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근대화(modernization) 과정은 강을 경제적 합리성의 지배하에 두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강은 자본축적과 이윤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강의 물길을 직선으로 제어하고, 댐이나 보로 가두고, 강 안에 있는 섬을 허물거나 모래를 파고 쌓아서 집과 건물을 올렸다. 근대화의 이러한 폭력에 대해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생태화'(ecologization)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모든 사물을 행위자로 보고, 그들 간의 네트워크와 협력을 중시하는 생태화 패러다임에서 강을 포함한 자연물들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의 왕국에 속하게 된다. 이는 그레이버의 유희적 자유의 원칙과도 상응하며, 강이 본연의 자유와 즐거움을 누릴 권리를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댐을 만들어 강을 가두어놓는 것은 인간의 경제적 합리성에는 적합한 행동일 수 있어도 강의 자유를 구속하는 일이고, 강의 즐거운 놀이를 훼방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강은 '물이 하는 놀이'다. 자유롭게 흐르면서 즐겁게 놀이하는 물과 모래, 수초, 물살이 들을 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놀이를 바탕으로 강과 우리가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강의 놀이에 어떻게 동참하며 강과 함께 즐거워할 것인가?
4. 우리는 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우리와 소통하면서 놀이를 하는 강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생태화의 패러다임을 통해서 보자면, 강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자유를 최대한 발현시키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난점(難點)도 있다. 강의 자유를 발현시키는 최대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이다. 무작정 강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한다면 우리는 강의 즐거운 놀이에서 희생양이 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강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가 어느 수준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또 어느 시점의 강을 기준으로 복원을 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기후민주주의'를 위해 지난해 11월 1일~2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에서 열린 '사물의 의회' 포스터.
사물의의회
이러한 난점을 고려해서 제안을 해보자면, 브뤼노 라투르가 제안하는 '사물의회'(Parliament of thins)와 같은 장치를 통해 한강에게 정의롭고 타당한 윤리적 기준을 사회적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사물의회'는 인간뿐 아니라 대기·동물·기술·산림·해양 같은 비인간 존재들도 정치적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탈인간중심적 민주주의 모델이다.
한강의 구성체(물, 수초, 물살이, 모래, 여울, 흙, 자갈, 나무 등)들을 대변하는 다양한 그룹들이 한강의 자유, 한강의 즐거움, 한강의 복원 시점 기준 등에 대해서 숙의함으로써 조화롭고 균형 있는 한강의 개발 수준, 그리고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한강을 복원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한강에 대해 윤리적으로 정당하고 정의로운 사회적 규범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최자영 교수가 지적하듯, '사물의회'가 민주적이고 생태화 패러다임 측면에서 바람직한 의미를 가지려면 이러한 숙의 과정이 '좋은 민주주의'가 될 수 있도록 법·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즉, 실컷 시민들이 논의를 한 후에 최종 결정은 전문가나 관료, 국회에서 해버리면 아무리 숙의를 한다고 해도, 그것을 좋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예컨대 한강을 주제로 한 '사물의회'가 좋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수단이 되려면 한강에 대한 '사물의회'의 결정이 국토종합계획이나 도시기본계획에 대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질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5. 한강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
우리는 한강을 동등한 행위자로서 '사물의회'에 출석시켜 한강의 생각을 복원해 내고, 우리와 공생공락(conviviality)할 수 있는 범위와 정도, 그리고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복원을 하는 것이 한강에게 가장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서 결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 위에서 국토개발이나 도시개발, 그리고 하천관리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토양생태학자 유경수는 그의 저서 <흙의 숨>에서, 미네소타강과 미시시피강이 만나는 브도트(두물머리)를 창조의 장소라고 믿었던 아메리카 선주민 다코타족이 브도트에서 어떻게 유럽 정착민들에 의해 폭력적으로 죽임을 당했는지를 알려준다. 다코타 사람들은 2002년부터 2년마다 미네소타의 눈물길이라 불리는 브도트까지의 160킬로미터를 7일에 걸쳐 걷는 행진을 통해 조상들을 애도한다고 한다.
유경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폭력에 대항하는 인간의 진보는 양심이 미치는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일어난다. 사람을 넘어 뭇 생명의 집인 강과 땅이 양심의 반경 안으로 들어올 때가 왔다. 눈물길을 걸어 도착한 브도트에서 바치는 다코타 사람들의 애도는 그들의 조상만이 아니라 강과 사람을 아우르는 세계를 향한다(...) 인간에 강을 맞추던 낡은 시절은 이제 보내야 한다. 강에 걸맞은 사람이 사는 세상의 문턱에 우리는 왔다. 브도트야말로, 두물머리야 말로 우리가 다시 태어날 곳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근대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한강에서 우리가 다시 태어나야 하지 않을까? 한강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무수한 사람들이 한강의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함께 신명 나게 살아가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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