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19 10:27최종 업데이트 26.01.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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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강을 막개발 중이다. 이대로 둬도 되는 것일까? 서울시의 랜드마크이자, 서울 면적의 6.7%에 해당하는 중요한 공유지가 서울시장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있다. 현재의 한강의 모습을 알리고, '우리가 꿈꾸는 한강'을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기자말]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소장이 대림동투어를 진행하고 있다.박동찬

'디아스포라'는 고향을 상실한 채 방랑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지금은 그 의미가 확장되어 조국을 떠나 객지에서 삶을 영위하는 이주민을 호명할 때도 쓰인다. 그런데 사람만이 디아스포라일까. 어딘가에서 발원하여 구석구석을 누비다가 결국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과 하천도 디아스포라의 삶을 묘하게 닮았다. 한강도 디아스포라다.

한국 사회에도 디아스포라로 분류되는, 흔히 이주민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1980년대 말, 연이은 메가 스포츠 행사의 성공 개최 덕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에 알려졌고, 그때부터 한국은 이주민의 새로운 목적지로 부상했다. 이주의 경위는 천차만별이겠지만 여전히 노동, 쉽게 말해 외화벌이를 위한 이주가 압도적이다.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270만 명가량의 이주민은 대부분 노동에 종사한다.

이주민 디아스포라의 유입은 어디까지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고도성장 이후 대대적으로 늘어난 산업인력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그들을 불러들였다면, 오늘날 이주민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다는 산업현장 3D 직종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소위 고부가가치 노동에 진출할 수 있도록 가사, 육아, 간병 등 돌봄노동을 전적으로 떠맡고 있다. 이렇게 산업현장과 돌봄 현장을 떠받치며 사회적 (재)생산에 참여하고 있지만,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사회적 갈등이 생기면 '일자리를 뺏는 존재'나 '사회적 비용'으로 이내 규정당한다.

지난해,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강행했다가 결국 무위로 돌아간 서울시의 필리핀 가사노동자 시범사업도 비슷한 맥락이다. 수요를 앞세워 막무가내로 정책을 폈지만, 정책 실패의 책임은 오롯이 필리핀 가사노동자의 '무단 이탈'이나 '적응 실패'로 쉽게 전가된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의 처지는 우리가 한강을 비롯한 자연을 대해온 방식과 닮아있다.

이런 태도의 근본에는 도구적 인식이 자리한다. 이주민이든 한강이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할 때는 자원으로 끌어안지만, 그 필요가 사라지거나 부작용이 나타나면 쉽게 책임 전가의 대상이 된다.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개발만 밀어붙이다가 발생한 후환을 자연의 불가항력으로 돌리는 이중성을 우리는 수시로 목격하고 있다. 필요하면 이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외면하는, 그 경계선 위에서 이주민과 한강은 똑같이 디아스포라적 존재가 되어버린다.

규정당하지 않을 자유

서울 대림동 혐중 혐오집회에 맞서는 시민들의 모습박동찬

디아스포라는 숙명처럼 두 가지 문제와 평생 씨름한다. 귀속의 문제와 정체성의 문제다. 경계를 넘는 일이 일견 멋져 보이긴 하지만, 사실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을 향한 환대의 토양은 아직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디아스포라는 떠나온 출신국과 도착한 이주 목적국 사이 결코 한 곳으로 수렴되지 않는 혼종성을 안고 살아간다. 그 귀속은 두부모 자르듯이 명확하게 나뉠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흘러드는 온갖 개천을 품은 한강은 어떻겠는가.

"한국과 중국/일본/베트남(질문받는 이주민의 출신국)이 축구를 하면 어디 응원해?"와 같은, 이주민을 향한 주류 사회의 폭력적인 질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이주민의 정체성을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검증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을 때, 정체성의 해석권이 온전히 자신에게만 주어질 때라야 인간의 의례적 평등은 실현된다.

한강도 마찬가지다. '한강 르네상스'처럼 그 정체성이 외부에 의해 굴절되고 규정당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한강의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게끔 해야 한다. 강도 말할 수 있다. 수변이 품은 식물을 통해, 보금자리 튼 수달과 철새를 통해, 그리고 한강을 가꾸는 시민을 통해 한강의 말하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샛강 습지에 새들을 위한 벼농사를 지은 샛강시민들정지환

몇 년 전, 서울에 막 뿌리 내리려는 이주배경청소년들과 함께 샛강에서 생태교육과 수변문화 체험을 진행한 적이 있다. 샛강은 말 그대로 한강에서 잠시 갈려 나갔다가 하류에서 다시 본래의 큰 물줄기에 합쳐지는 강을 가리키는데, 이주배경청소년의 정체성이 샛강을 닮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의 발로에서 특별히 선택한 장소였다. 출신국이라는 물줄기에서 뻗어 나와 지금은 하나의 섬을 사이에 둔 채 경계에서 흐르지만, 언젠가는 한국이라는 새로운 큰 강에 합류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당시 이주배경청소년의 방문을 앞장서 환대해 준 곳이 방치됐던 샛강생태공원에 한줄기 생기를 불어넣은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이다. 그런데 작년 공원의 민간 위탁 재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행인 것은 경계에서는 소외만이 아닌 희망도 태동했다. 그동안 샛강을 매개로 모였던 시민들은 흩어지는 대신 '샛강시민'으로 다시 뭉쳤고, 스스로 강의 목소리가 되기로 결의했다. 그들은 한강이 어떤 색으로 빛나며,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지 끊임없이 귀 기울이며 행동한다.

한강은 디아스포라다. 디아스포라 정체성이 유동적이듯, 한강은 끊임없이 흐르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에 실려 오는 모래 한 톨 한 톨에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누군가는 전쟁 앞에서 한강 다리를 건너던 아픔을 상기할 수 있고, 누군가는 '한강의 기적'과 같은 산업화의 향수에 젖어 들 수 있다. 또 누군가는 강변 잔디에서 즐겼던 치맥과 한강을 마주하고 바라본 새해 해돋이를 기억할 것이다.

그런 오색영롱한 한강의 이야기들이 '한강버스'와 같은 애초에 없었어야 할 이슈에 가려지는 작금의 현실이 한없이 개탄스럽다. 권력에 빼앗긴 한강을 시민들이 되찾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시민의 한강'이라는 자칫 또 다른 종속을 넘어 한강과 시민의 관계도 생각해봄 직하다. 디아스포라는 늘 경계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과 상상력을 요구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박동찬. 중국 선양(瀋陽) 태생 동포 5세, 한국살이 10년 차 이주인권 연구활동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한편,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를 통하여 이주민·디아스포라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평등과 환대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연구자와 활동가의 정체성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길을 찾는 중이다. 제5회 이주노동자희망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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