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홍수> 스틸컷
넷플릭스
이 영화를 모성이라는 단어에 가두지 않으면 더 좋은 해석도 가능하다. 지나칠 정도로 모성이라는 키워드에 집착한 탓에 홍수처럼 플롯에 휩쓸려가긴 했지만, 시뮬레이션 속 구안나가 아이만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니다. 구안나는 엘리베이터에 고립된 어린이를 구했고, 재난 상황에서 활개 치는 강도들로부터 노부부를 살렸으며, 출산이 임박한 젊은 부부를 도왔다. 이들은 홍수나 산불과 같은 기후재난 시 가장 먼저 소외되는 취약계층이기도 하다. 무심코 지나쳤던 모든 이들의 위기 상황에 구안나가 도움을 주었을 때, 구안나는 잃어버린 아이도 찾을 수 있게 된다.
2022년에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클라이맥스에 나온 대사가 있다. "제발, 다정하게 대하세요. 특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말이에요." 모두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을 때, 가장 약해 보이는 남편 캐릭터 '웨이먼드'가 한 말이다.나는 이 대사 하나 때문에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영화와 문학작품에서 극한의 위기를 다루어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타인을 짓밟는 등장인물을 통해 인간의 잔혹성을 강조하는 것, 서로를 도와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최근에는 전자의 방식이 후자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듯하다. 이는 서로의 고통에 점점 무관심해지고, 각자도생이 자연스러워진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과도 연결점이 있을 것이다. 살기 어려워진 만큼, 희망을 말하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을 비관하는 것을 넘어 무엇인가를 바꾸고 싶다면, 후자가 전하려는,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예측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 문턱까지 차오른 문제는 기후위기일 것이다. 가장 똑똑한 인간도, 최첨단 기술도 지구 온난화가 얼마나 빨리 세상을 초토화할 것인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섬 지대 사람들이 고립되고, 살 수 없는 땅이 많아지며, 식량 위기와 전염병이 창궐하는 등 예상할 수 있는 몇 가지 시나리오는 일어날 수 있는 일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안방에 물이 차오르고, 평생 살아온 공동체가 파괴되는 일은 그 누구도 비극의 정도를 측정할 수 없다. 기후 시스템 자체의 급격한 변화인 기후 임계점을 넘게 된다면, 영화 <대홍수>에 나온 규모의 재앙은 꼭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극단적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대홍수> 속 구안나처럼 기후위기 시대 속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기 위한 과정을 밟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구안나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눈앞에 놓인 모든 이들의 어려움을 무시하지 않고 도왔을 때 비로소 아이를 되찾는 일에 성공한 것처럼, 위기는 '나'와 '내 가족'과 같은 좁은 경계에서만 허용되는 마음을 타인의 고통을 돌보는 마음으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황폐해진 지구에 다시 돌아가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신인류 구안나에게 필요한 건 혈연적인 모성의 위대함이 아닌 더 넓은 범위의 다정함인 공존의 감각이다. 그리고 그것을 배우는데 성공했기에 구안나는 기후재난의 시대 속에서 신인류가 될 수 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영화를 해석할 때,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다.
아직 우리에게 시간이 있다
▲서울 강남대로에서 열린 기후위기 대응 촉구 대규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9.7.
연합뉴스
2026년은 기후위기의 측면에서 중요한 이벤트가 많은 해이다. 2월 말,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은 탄소중립기본법의 개정 시한이 돌아오고, 정부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한 기후시민회의에 대한 논의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2031년 이후의 국가 탄소 감축 방안을 결정하는 일, 그리고 시민의 목소리가 실효적으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짜는 일은 미래세대에 대한 다정함과 소외된 지역민에 대한 다정함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될 6월에는 지방선거가 진행될 예정이다. 동네의 살림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 정하는 선거이기에, 기후위기를 어떻게 동네에서 민주적으로 다루어낼 것인지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은 나와 내 가족이라는 좁은 경계를 넘어 국경과 세대, 성별과 직업을 넘어 안전망을 모두에게까지 펼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만 번의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후문제의 수많은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할 기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라는 좁은 세계를 깨고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결정을 신년에 우리가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다정함만이 서로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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