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07 11:52최종 업데이트 26.01.0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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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모습.연합뉴스

경남 양산경찰서는 전국 곳곳의 위안부 소녀상에 '철거'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씌우거나 소녀상을 검은 천으로 덮은 보수단체 대표 A씨 등 4명을 수사 중이라고 5일 밝혔다. 중국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이에 관한 언론 기사를 6일 엑스에 링크하면서 "이런 얼빠진... 사자명예훼손입니다"라고 썼다.

이명박도 심각성 느낀 '위안부' 문제

정반대로 일본제국주의의 범죄를 부정하는 역사부정주의자(역사수정주의자)들도 소녀상 문제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과 비슷한 표현을 사용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 6인이 쓴 <반일 종족주의>에도 '얼빠진'과 유사한 단어가 적혀 있다. 이 책은 정의기억연대의 제1000회 수요시위(수요집회)가 열린 2011년 12월 14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이 세워진 일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당시의 대한민국 정부를 이렇게 탓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막아야 했음에도 넋이 빠진 채 구청 소관 사항이라며 방관만 했습니다."

보수정당 정치인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중의 목소리에 귀를 가장 많이 기울였다고 볼 수 있는 시기는 2007년이다. 그는 그해 5월 10일에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고 8월 20일에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그가 대중의 동향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시기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기념비적 사건이 벌어진 때였다. 아베 신조의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 참패한 다음 날인 그해 7월 30일, 미국 하원은 일본 정부의 사죄와 역사교과서 기록을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는 일본의 우방인 미국마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가 전 세계적으로 형성됐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 같은 세계적 흐름을 대선 운동 때 목격한 이명박은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상징적 사건을 대통령 임기 중에 맞닥트렸다. 그가 4년차 대통령이 된 2011년에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해 8월 30일, 헌재는 "우리 정부가 직접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이라면서, 피해자들이 직면한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의 실현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회복에 대한 장애상태"를 대한민국 정부가 제거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명박 회고록인 <대통령의 시간>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가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부작위 상태는 헌법위반이다'라는 사법부의 결정은 대한민국 대표자인 그 자신과 직접 연관되는 사안이었다.

<대통령의 시간>에서 그는 "이 판결은 내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큰 경각이 됐다"라고 한 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독도와 과거사 문제에도 진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당시의 이명박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경각'돼 있었지만, 그런 모습이 역사부정주의자들에게는 "넋이 빠진" 상태로 비쳤던 모양이다.

재일한국인 2세인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가 쓴 '한국의 평화의 소녀상과 탈진실의 정치학'(<한국여성학> 2017년 제33권 제3호)이라는 논문을 읽어보면, 이 문제와 관련해 진짜로 얼이 빠진 쪽은 극우세력임을 한층 명확히 느낄 수 있다. 이 논문은 일본의 극우 남성들이 위안부와 소녀상을 혐오하는 이유를 분석하는 대목에서 일본 역사부정주의자들의 시대착오적인, 정신 나간 모습을 지적한다.

"위안부를 자발적이며 타산적인 매춘부로 그린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조국을 위해, 자손을 위해 싸운 남자들의 성욕을 용서하라', '위안소를 이용해서 죽어간 할아버지들을 강간범이라고 단정하는 놈들은 도대체 어떤 개XX냐'라는 만화를 그린 후 일정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은-대부분은 남성인데- 위안부 문제를 '일본을 더럽히는' 내셔널리즘 문제로 볼 뿐만 아니라 '일본의 남자를 더럽히는' 의식적/무의식적 젠더 문제로 이해한다."

일본 극우세력은 위안부 문제의 실상에 주목하기보다는, 이 문제가 국가권력 또는 남성의 권위를 침해한다는 점에 보다 더 주목한다. "위안부 문제가 일본을 더럽힌다는 감정적 내셔널리즘만이 아니라 일본의 남자를 더럽힌다는 젠더 감정과 연결되어 위안부 문제의 사실관계와 가해 책임을 부인하고 싶다는 억압된 욕망이 소녀상에 투영되어 분출"된다고 위 논문은 분석한다. 한일 양국의 소녀상 폄훼 활동을 이끌어가는 일본 극우세력이 얼마나 얼빠진 이유로 소녀상을 혐오하는지를 알 수 있다.

소녀상 훼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소녀상 설치를 반대하는 한 단체가 지난 2025년 10월 29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고등학교 앞에서 교내에 있는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집회를 예고한 가운데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교문 앞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이정민

2025년 4월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문제 이렇게 해결하자'라는 학술대회의 발표자로 나선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소녀상에 대한 역사부정주의의 공격이 한층 가열되는 현상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2019년 12월부터 수요시위 주변의 극우 역사부정세력들이 맞불집회"를 개시했다며, 이들이 "소녀상 철거"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또 2024년 2월부터는 전국의 소녀상들에 대한 노골적인 테러를 일으켰다면서, 그 실태를 발표문에 이렇게 적었다.

"'철거'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씌우고 검은 비닐봉지로 가리는 '위안부상 마스크 씌우기'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음. '위안부는 사기', '매춘부 교육', '흉물 소녀상 철거' 등의 2차 가해를 멈추지 않고 있음(2025.03.04. 기준 총 104건 진행)."

지난해 10월 1일부터 시행 중인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위안부피해자법) 제1조는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입법 목적 중 하나로 열거한다. 그런데 이 법은 소녀상 테러를 통한 위안부 명예훼손에는 취약하다. 소녀상에 테러를 가하는 목적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폄하하고 일제의 범죄행위를 두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소녀상을 통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의 수단이 마땅치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소녀상 테러가 '물건 손괴'가 아닌 '죽은 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썼다. 이 의견이 현행 법률에 부합하든 않든, 소녀상 테러를 사실상 물건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테러로 간주하고 법적으로 제재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일 양국의 역사부정주의자들로 인해 위안부 문제는 한층 더 뒤엉키고 소녀상 테러도 근절되기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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