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07 12:04최종 업데이트 26.01.07 12:04
  • 본문듣기
5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페이스북 갈무리

개혁신당 대표인 이준석 의원이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반도체 클러스터는 왜 용인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7가지 이유를 밝혔습니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권(새만금 등)으로의 분산 배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 의원이 제시한 7가지 이유 모두 반도체 산업 현장의 현실이나 글로벌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주장입니다.

반도체는 '정치'로 짓는 게 아니라 '과학'으로 짓는 것입니다.

이 의원은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이 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겁니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입지는 정치가 아니라 과학으로 결정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이렇게 말해 놓고 정치로 반도체를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 의원의 글을 해제하여 그의 주장이 정말 과학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생존 혈관'?] 반도체 산업 생태계는 확장되어야

첫째, 반도체 지도에는 '생존 혈관'이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수원-기흥-화성-평택을 잇는 경부고속도로 축에, SK하이닉스는 이천-청주-용인을 잇는 중부고속도로 축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수천 개 협력사가 실시간으로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기업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생태계입니다.

수천 개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가 수도권의 그 좁은 지역에 수십 년간 생태계를 쌓아 온 것은 맞습니다. 이 의원은 그걸 '생존 혈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반도체 팹과 협력사들이 밀집해 있어야 효율적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서 그 혈관이 막힌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진, 태풍, 홍수 등의 자연재해나 화재나 폭발 사고 혹은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수십 년간 쌓아 온 반도체 생태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될 테고 회복은 어려울 겁니다.

TSMC 홈페이지에 소개된 팹(FAB) 위치. 반도체 팹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 분산 배치가 원칙입니다.TSMC

그래서 다른 반도체 제조 국가들은 최대한 반도체 산단을 분산 배치하고 있는 겁니다. 대만의 TSMC 같은 경우 지진과 지정학적 위협에 대비해 생산 거점을 분산 배치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TSMC의 새 팹은 일본 남쪽에 있는 섬 규슈에 있고, 일본의 국가적 차원에서 짓고 있는 라피더스 팹은 일본 북쪽 끝에 있는 섬 홋카이도에 있습니다. 두 곳 모두 수도 도쿄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거리에 있습니다. 미국 인텔 역시 오하이오, 오리건, 애리조나에 팹을 분산 배치했습니다.

이렇게 분산 배치된 각각의 팹 주위로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이 모여 별도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팹을 운영하는 나라 가운데 수도권 근처에 팹을 모두 몰아넣은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는 어느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확장되어야 하고, 호남은 그 확장 생태계로서 최적의 위치입니다.

[#2 '1시간 내 대응'?] 거리와 상관없이 실현

둘째, 글로벌 장비사들이 이미 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 유일의 EUV 노광장비 업체 ASML이 어디에 사옥을 지었습니까? 동탄입니다. 삼성과 하이닉스를 지원하는 글로벌 소부장 기업들이 동탄을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장비가 멈추면 분당 수억 원이 날아가기 때문에 '1시간 내 대응'이 가능한 거리에 있어야 합니다. 시장이, 기업이, 기술이 이미 경기 남부를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ASML 등 글로벌 장비사들이 수도권에 자리 잡은 것을 근거로 용인의 당위성을 설명하지만, 이는 선후 관계가 바뀐 해석입니다. 반도체 소부장 업체가 그곳에 간 것은 그곳에 팹이 있기 때문입니다. 호남에 대규모 메모리 팹이 들어선다면, 장비사들은 팹이 완공되기도 전에 서비스 센터를 지을 것입니다. 반도체 소부장 업체의 수도권 집중은 결과일 뿐, 호남에 팹을 지을 수 없다는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반도체 업계에서 요구하는 "1시간 내 대응"은 문제가 발생한 후 1시간 이내에 엔지니어가 거기에 가야 한다는 물리적 거리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대응을 위한 물리적 거리만 생각한다면 전 세계 팹을 모두 한곳에 모아 놓아야 합니다. 글로벌 소부장 기업들은 세계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팹을 상대로 현장 상주 인력 배치뿐만 아니라 원격 진단 시스템, 물류 시설 공유 등을 통해 거리와 상관없이 1시간 내 대응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3 '전기의 질'?] 재생에너지 풍부하고 보완 가능

애플은 2030년까지 공급망 및 제품의 100% 탄소 중립화 달성을 약속했습니다. RE100을 달성 못하면 빅테크 기업에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애플

셋째, "전기 있는 곳으로 가라"는 논리의 허구입니다. 여권은 "호남에 태양광 전기가 남아도니 공장을 옮겨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치명적 오류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전기의 '질'입니다. 나노 공정 장비는 전압과 주파수가 아주 미세하게만 흔들려도 멈춥니다. 실제로 삼성전자 평택 공장은 2018년 30여 분간의 정전으로 500억 원 이상의 웨이퍼를 폐기했습니다. 날씨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태양광은 주파수 안정도가 떨어집니다. 역설적으로, 만약 정말 에너지 비용과 송전망이 문제라면 태양광의 호남이 아니라 원전이 밀집한 울산·경주로 가야 맞습니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용인을 택한 건 결국 '인력'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RE100은 공장이 태양광 패널 옆에 있어야 인정받는 게 아닙니다. 전력망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용인에 공장이 있어도 호남의 태양광 발전 사업자와 전력수급계약(PPA)을 맺거나, 녹색프리미엄·REC 구매를 통해 얼마든지 RE100 이행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전기가 있는 곳으로 공장을 옮겨라"는 주장은 산업의 복합적 요소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의원은 태양광의 간헐성을 이유로 전기의 질을 문제 삼았습니다. 물론 반도체 팹에서 전력 안정성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외국의 최신 팹들은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그 재생에너지로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요? 막대한 양의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 반도체 팹은 단순히 태양광 전원을 직접 꽂아 쓰는 게 아닙니다. 호남에는 태양광 말고도 풍력, 조력 발전이 있고 원자력을 포함한 기존 방식의 발전 시설도 있습니다.

호남에 반도체 산단을 조성한다면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원을 조합하고, 에너지 저장 장치(ESS)와 기존 전력망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그리드 기술 등을 통해 변동성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방식으로 재생에너지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여기에 이 의원이 이야기한 녹색 프리미엄·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구매를 통해 재생에너지 100%(RE100)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겁니다.

애초에 필요한 전기를 구할 방법이 없는 용인은 재생에너지가 풍부하면서도 보완 가능한 자원과 기술이 갖춰진 호남의 비교 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4 '지반'?] 토목 기술의 발전 간과
넷째, 새만금엔 정치권이 말 안 하는 치명적 약점이 있습니다. 엔지니어들이 꼽는 결격 사유는 '지반'입니다. 반도체 노광 장비는 나노 단위 작업을 하므로 미세 진동에 극도로 민감합니다. 새만금은 갯벌을 메운 매립지라 지반이 무릅니다. 깊은 곳까지 파일을 박는 난공사가 필요하고, 이는 공사비 폭등과 공기 지연을 부릅니다.

반도체 팹을 지을 부지의 지반 상태는 주요한 고려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그걸 치명적 약점이라고 주장하는 건 토목 기술의 발전을 간과한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팹은 넓은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매립지나 연약지반 위에 지어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대만의 타이난 과학단지는 매립지 위에 조성이 되었으며, 일본의 구마모토는 지진으로 인한 지반 침하의 우려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반도체 강국 싱가포르의 팹들은 해안가 모래사장이었던 곳에 있지만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해안가 연약지반 위에 세워진 마이크론 팹의 모습. 반도체 팹을 건설하는 기술은 이미 지반의 상태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마이크론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반도체 팹을 지을 때 이 의원의 주장대로 연약지반에만 "깊은 곳까지 파일을 박는 난공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반도체 팹이라면 지반 조건과 관계없이 파일 기초, 매트 기초, 진동 차단 구조를 전제로 설계해서 진동을 방지하기 때문에 지반의 상태에 상관없이 입지로 선택이 가능한 것입니다.

설령 간척지 특성상 연약 지반을 보강하기 위한 추가 공사가 필요하다고 해도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반도체 팹의 전체 투자 규모에 비하면 지엽적인 수준에 불과합니다. 연약 지반이 치명적 약점이라는 말은 해안가에는 염분이 많아서 반도체 팹을 못 짓는다는 용인 지역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호남 불가를 주장하기 위한 핑계로 침소봉대한 것에 불과합니다.

[#5 '배터리 메카'?] 반도체 팹 최적지
다섯째, 새만금을 홀대하자는 게 아닙니다. 새만금은 넓은 부지와 항만이 있어 원료 수입·제품 수출이 중요한 이차전지와 데이터센터의 최적지입니다. 이미 10조 원 이상의 배터리 투자가 발표되어 클러스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새만금은 배터리의 메카로, 용인은 반도체의 심장으로 이것이 서로 사는 길입니다.

"넓은 부지와 항만이 있어 원료 수입·제품 수출이 중요한 이차전지와 데이터센터의 최적지"라면 그곳은 반도체 팹에도 최적지란 이야기입니다. 광활한 부지, 원활한 용수 공급, 수출입에 쉬운 항만 조건은 반도체 산업이 요구하는 핵심 인프라와 일치합니다. 두 산업을 무리하게 나누어 하나는 수도권, 하나는 지방으로 못 박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호남에 비교하자면 용인은 넓은 부지가 없어서 멀쩡한 산을 깎아야 하는 등 이 의원이 말한 입지 조건과도 거리가 멉니다.

[#6 '시간은 돈'?] 오히려 호남이 유리
여섯째, 시간은 돈입니다. 하루 70억 원입니다. 글로벌 기준으로 반도체 팹 건설이 하루 지연될 때마다 약 70억 원의 기회비용이 발생합니다. 지금 계획을 원점으로 돌리면 인허가 절차만 3~5년을 다시 밟아야 합니다. 그 사이 TSMC와 인텔은 2나노, 1.4나노를 선점할 것이고, 대한민국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습니다.

사업 진행을 위해 필요한 시간을 따지자면 오히려 호남이 유리합니다. 2019년에 시작한 용인 SK하이닉스 클러스터는 용수 확보와 전력망 구축 문제, 토지 보상 등으로 인해 6년이 지난 이제야 첫 삽을 떴습니다. 지역 이기주의나 행정적 갈등이 없는 호남권 RE100 반도체 산단은 오히려 수도권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이 의원의 주장대로 "시간이 돈"이라면, 갈등 구조가 뻔히 보이는 수도권 대신 반도체 사업에 대해 적극적 지원이 가능한 호남 지역을 찾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7 '반도체 철도'?] 새로운 생태계 확장
일곱째, 지금 필요한 건 '쪼개기'가 아니라 '연결'입니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용인을 새만금으로 떼어내는 게 아닙니다. 동탄역을 중심으로 평택, 화성, 용인, 이천을 고속으로 잇는 '반도체 철도'를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사와 원삼의 반도체 산업단지는 동탄역 광역비즈니스콤플렉스의 업무지원 기능, 동탄2신도시의 우수한 주거환경과 시너지를 내며 세계 최고의 반도체 생태계로 완성될 것입니다.

이 의원은 용인 중심의 "반도체 철도"를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이지만 결국 수도권에 반도체 팹과 소부장 업체들을 지금처럼 계속 모아가자는 말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반도체 생태계의 완성은 기존 거점의 연결이 아니라, 새로운 거점을 확보해 국가적 리스크를 분산하고 재생에너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있습니다. 호남 RE100 반도체 산단은 반도체 클러스터의 "쪼개기"가 아니라 새로운 생태계로의 확장입니다.

이준석 의원의 말대로 반도체는 과학으로 지어야 합니다. 그 과학의 범위에는 반도체 공학뿐만 아니라 에너지 공학, 도시 공학, 그리고 국가적 전략산업의 리스크 관리까지 포함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은 과학적 검토를 통해 호남권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자고 하는데, 이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셈법으로 용인을 고집하고 있는 겁니다. 생각의 범위가 지역구를 넘어서지 못하는 이준석 의원에게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더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