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미 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에 항의하는 한 시위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 모형을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영국이 주도하던 과거의 제국주의시대에는 최혜국 대우 규정이 약소국 침탈의 핵심 도구가 됐다. 약소국이 다른 특정국에 부여한 상업상의 최고 대우를 자국도 자동적으로 누리게 해달라는 이 규정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요인이 됐다.
트럼프가 꿈꾸는 향후의 서반구 국제질서에서는 최혜국 규정 같은 것도 필요 없다. 다른 나라가 부여받은 최고 대우를 미국도 누리게 해달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다. 서반구 밖의 강대국이 서반구에서 특혜를 누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이곳에서 미국만이 홀로 최고의 대우를 받겠다는 발상이 트럼프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향후의 서반구 정책은 "비(非)반구 경쟁자들이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면서" 미국과 서반구의 연계를 긴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힌다. 중국 같은 '비'서반구 국가의 역내 영향력 확장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우리는 (서반구의)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자신들의 최우선 파트너로 인식하기를 희망하며, 우리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타국과의 협력을 단념시킬 것"이라고 다짐한다. 비서반구 강대국과 역내 국가들의 협력관계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이처럼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최혜국 대우가 필요 없는, 미국의 서반구 독점을 선포한 셈이다.
그런 방침이 중국의 이익만 해치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우리의 반구를 성공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을 거론하는 대목에서 "우리의 모든 대사관들은 그곳 국가의 주요 사업 기회, 특히 주요 정부 계약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뒤 "우리는 이 지역에서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는 외국 기업들을 몰아내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국 기업들의 중남미 사업에도 지장을 주는 언명이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4일, 교황 레오 14세는 마두로 납치에 우려를 표하면서 베네수엘라의 주권을 보장해 줄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서반구 전략은 교황의 우려를 무시하는 쪽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과거의 유럽제국주의국가들이 했던 것보다 훨씬 강도 높은 서반구 정책을 내놓았다. 이는 이곳 국가들의 주권을 무시하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트럼프의 전략은 서반구 국가들을 미국의 51번째 주, 52번째 주 등등으로 편입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지구의 절반을 독차지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의 서반구 정책과 관련돼 언급되는 먼로주의의 트럼프 버전은 이 나라가 세계제국 지위를 버리고 서반구 국가로 은퇴하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만만한 서반구를 발판으로 훨씬 강력한 제국으로 거듭나겠다고 나서는 것에 더 가깝다. 트럼프는 노쇠해진 자기 나라를 너무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서반구 국가들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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