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06 16:58최종 업데이트 26.01.0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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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애도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제도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애도는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그래서 서울시의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는 시민의 조문과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서울시 공영장례지원·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1365 자원봉사 포털을 통해 시민의 참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2026년 새해를 맞이해, 더욱 많은 분이 '무연고 사망자' 장례 지원 자원 활동에 참여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자원활동가 '동글'의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동글(자원 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별명)이라고 합니다. 서울시 종로구에 거주 중이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공영장례 자원 활동을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1365 자원봉사 포털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당시 마포구에 살고 있었는데, 나눔과나눔 사무실이 마포구에 있어서 지역 추천으로 뜨더라고요. 근데 봉사하는 곳이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이라는 것을 보고 거리 때문에 고민을 좀 했어요."

- 고민을 하다가 '가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다른 자원 활동도 많이 추천 받았는데, '무연고 사망자' 장례 지원이라는 지금의 자원 활동이 가장 마음에 남더라고요. '왜 이렇게 마음에 남는 걸까?'라는 생각에 일단 신청을 먼저 했어요. 신청한 후에는 걱정을 좀 많이 했죠."

- 어떤 걱정이었을까요?
"옛날부터 '여자는 상주를 맡는 게 아니다' 같은 말을 많이 들었는데, 여성으로서 장례 현장에 간다는 게 혹시나 폐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나눔과나눔의 안내 전화를 받고 먼저 물어본 것도 '여성이 가도 괜찮은가요?'였어요. 나눔과나눔에서 전혀 상관 없고,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그 다음엔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네요. 그 외에도 '마음이나 감정적으로 힘들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동시에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고요."

뭘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자원봉사

- 처음 장례에 왔을 때 어땠나요?
"일단 정말 낯설었고요. 공영장례 빈소를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승화원에 처음 와본 것이었는데, 공간이 넓었거든요. 그래서 늦지 않으려고 엄청 뛰었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뛰어서 빈소를 겨우 찾아 들어갔는데, 빈소의 제단이 낯설게 느껴져서 예민하게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봉사를 온 것이니까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생각했고요."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빈소 '그리다'나눔과나눔

- 나눔과나눔은 봉사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잖아요? 그저 기다리는 시간이 많기도 하고요. 그 점이 당황스럽진 않았나요?
"뭘 안 시키셔서 처음엔 약간 당황했어요. 자원 활동이니 몸을 움직이거나,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빈소에 계속 오다 보니까 그냥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 처음 장례를 마치고 갈 때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처음 제가 장례 현장에 왔을 때 만난 고인은 자살한 분이었어요. 고인의 사별자 분이 오셨는데, 그 분을 통해 고인이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였다는 얘기를 들었지요. 그 때문에 생전에 조현병이 있으셨다고요. 그 말씀이 인상 깊게 남았는데, 집에 가는 길에 핸드폰을 보니까 그날이 자살 예방의 날이더라고요. 심지어 자살 예방의 날이라는 이유로 제가 강의 제안까지 받았었거든요. 그걸 잊고 있다가 '오늘이 자살 예방의 날이었고, 오늘 만난 고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라는 사실이 이어지면서, 제가 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던 것들을 한 번씩 다 일깨워준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매일 같이 '무연고 사망자'분들의 장례가 있다는 것, 그런 사실들이 인상 깊게 마음에 남아서 자원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형제복지원 사건은 당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근거해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 단속이라는 명분으로 3천 명 이상의 무고한 시민을 강제로 감금하고 강제노역, 폭행·살인 등을 저지른 인권유린 사건이다. 복지원 기록에 따라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이다.(부산시보 발췌)

- 그렇게 이어온 자원 활동이 어느덧 3년이네요?
"2025년에 이 자원 활동만 250시간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올해엔 300시간을 넘기는 게 목표예요."

※ '무연고 사망자' 장례 지원 자원 활동은 하루에 4시간의 자원 활동 시간을 부여합니다. 그렇게 계산했을 때 동글은 2025년에 약 62일을 나오셨네요.

고인의 살아있었음에 대한 증인

- 요즘은 어떠세요? 어떤 마음으로 오시나요?
"시간이 쌓이다 보니 승화원에서 뵙는 분들과 안부도 묻게 되었어요. '오늘은 또 어떤 분들을 만나게 될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장례 지원 자원 활동을 하면서 저는 우리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엄청 가까운 건 아니지만 은연 중에 이어져 있다는, 그런 공동체성을 느끼고 있고요. 또 고인분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면서 '이 자리에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해요. 저는 이것을 '살아있었음에 대한 증인이 된다'라고 표현하거든요. 비록 돌아가신 분들이지만, 위패나 영정을 보면서 그분이 얼마 전까지 살아계셨다는 것을 확인하는 거죠. 그런 것들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승화원에 있는 고양이들을 만나는 것도 저에게는 힐링이고요."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의 고양이들나눔과나눔

- 자원 활동을 하다보면 고인의 사별자 분들을 만나는 일이 생길 텐데요. 이 분들을 대하실 때 특별히 신경쓰는 것이 있나요?
"쉽게 말 걸지 않으려고 해요. 사별자 분들이 어떤 마음이실지 제가 알 수 없으니까요. 요즘 신경 쓰는 것은 우실 때 손수건을 건네는 거예요. 빈소에는 늘 손수건이 비치되어 있거든요."

- 공영장례에 대해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앞으로 이런 방향을 신경 쓰며 발전해갔으면 좋겠다 싶은 거요.
"장례식장에서 안내를 잘못해서 사별자 분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셨던 게 기억나요. 이 분야와 관계된 분들이 공영장례 절차에 대해 정확히 알고, 안내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공영장례 빈소에서도 관계자 분들의 안내가 조금 다른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 것 같아요."

- 부고 접근성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공영 장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겠네요. 혹시 이 인터뷰를 보고 자원 활동을 신청하시려는 분들에게 먼저 하신 분으로서 팁을 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아무래도 대기 시간이 길다 보니까,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을 작게나마 챙겨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책같은 읽을 거리도 좋겠네요. 그리고 좀 웃기긴 한데, 빈소에 오실 때 신발을 벗어야 되거든요. 너무 해지지 않은 양말을 신고 오시면 민망한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어두운 색에, 구멍 나지 않은 걸로 신고 오세요! 그리고 복장에 대해서 얘기하자면요. 완전 정장으로 입고 오시는 분들도 있고, 캐주얼하지만 어두운 색상으로 입고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복장에 대해서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 이 인터뷰로 공영장례를 처음 알게 되었거나, 자원 활동에 참여할 마음이 생긴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그 분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일단 편안한 마음으로 오셨으면 좋겠어요.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의 문턱을 낮추셔도 될 것 같습니다. 공영장례 빈소에 자주 오다 보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아지거든요. 이것 또한 살아가면서 필요한 배움이고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 얘기하긴 했는데, 공영장례 자원 활동은 보이는 것들을 해내는 것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마주하는 활동인 것 같아요. 예전에 '봉사 다니는 게 어떻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 하는 자원 활동은 당사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고 대답한 적이 있어요. 물론 사별자 분들이나 함께 하시는 분들이 고맙다고 해주시기도 하지만, 정작 제가 마음을 드리는 고인분들에게는 그 말을 직접 듣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활동을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고인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해요. 제가 자원 활동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생기고요. 그런 기쁨을 알아가시면 좋겠어요. 언젠가 제 친구가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너는 죽으면 마중 나올 사람이 많아서 좋겠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죽음 이후에 대해 든든한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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