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을 앞두고 2025년 5월 22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기본사회 구상을 발표했다.
이재명 페이스북 갈무리
취임사: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
그러나 대선에서 승리한 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전임 정부가 초래한 혼란을 극복하고, 무너진 나라를 재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히는 한편,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넘어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구별 없이" 활용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지원을 통해 미래를 주도하는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히며, "개인도, 국가도 성장해야 나눌 수 있다"라고 천명했다.
이러한 취임사는 그간의 혼란을 넘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 메시지였지만, 이재명 정부가 구상한 '기본사회'의 철학과는 결이 다른, 전형적인 '선(先)성장 후(後)복지' 논리에 더 가까운 것이란 해석을 낳았다.
물론 이 대통령은 같은 연설에서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의 조건이 보장되는 나라, 두터운 사회안전매트로 위험한 도전이 가능한 나라여야 혁신도 새로운 성장도 가능하다"거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성장 중심의 발전 전략을 대전환해야 하며, 균형 발전과 공정 성장 전략, 공정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하는 등 전통적인 민주당 노선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임사의 전체 기조는 성장 전략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확신에 차 있었던 반면, 분배 전략에 대해서는 모호하고 수사적인 표현에 그쳤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이후 여러 차례의 연설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반복되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 중심의 정책 방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 복지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무게 실리지 못한 123개 국정과제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재명 정부도 별도의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다. 이 경우, 인수위원회의 역할을 대신하는 '국정과제위원회'가 마련한 국정과제 보고서가 사실상 인수위 보고서의 기능을 한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위원회는 300여 회에 이르는 업무보고, 700여 회의 분과별 회의, 그리고 1만 3천여 건의 국민 제안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보고서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보고서는 정권 초기에 국정운영의 기본 지침이 될 뿐만 아니라, 청와대가 진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예산을 배정하는 데도 기준이 되기 때문에, 임기 내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문서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번 정부에서 보여준 청와대의 태도는 과거 정부들과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국정과제 보고서를 바탕으로 예산까지 반영해 수립하는 실행 로드맵, 즉 '국정과제 이행계획서'는 기존 정부에서 항목별로 2~7쪽 분량이었던 데 비해, 이번에는 모두 1쪽으로 규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내용이 삭제되어 문서 자체가 지나치게 단순해졌고, 정부가 예산을 배정하거나 실행 의무를 지는 핵심 내용들도 대부분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국무회의에서 해당 보고서가 최종 의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치적 중요성이 축소되었으며, 임기 내 정부 활동의 실질적 지침서로서의 구속력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만약 이러한 평가가 사실이라면, 이재명 정부가 앞으로 어떤 국정 과제를 추진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는 근거 자체가 희박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 중 5대 국정목표
문화체육관광부
'경제로 복지를 만들기'와 '복지로 경제를 만들기'
복지정책에 주목하는 사람으로서 이재명 정부의 지난 7개월은 궁금증과 답답함으로 요약된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정부가 어떤 복지정책을 추진하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취임 30일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차별금지법 등 소수자를 위한 입법 의지를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중요한 과제이기는 하나, 민생과 경제가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에는 경중선후가 있는데, 급한 일부터 먼저 하자는 입장"이라는 답변이 있었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정책은 나오는 것일까? 지금까지 기대했지만 복지 비전과 관련해 대통령의 이렇다할 언급도 없었고, 향후 계획 등에 대한 정보도 부족한 상황에서 복지계의 불안과 불만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단순히 '경중선후'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두터운 사회안전매트로 위험한 도전이 가능해야 혁신도 새로운 성장도 가능하다", "성장하는 나라를 만들겠다. 그 결과를 나누는 공정성장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 불균형 발전전략은 한계에 와 있다. 불평등, 양극화가 성장을 가로막는다. 이제 성장, 발전 전략을 대전환해야 한다"와 같은 언명들이 반복된다. 경제와 복지의 관계를 균형 있게 강조하는 듯하지만, 결국 '복지의 가치는 경제를 위한 것', '복지의 전략은 경제를 통해서'라는 논리가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통합돌봄정책위원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5.12.22
연합뉴스
경제의 렌즈로 복지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사회정책의 근본적인 개혁안이 나오기는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경제 분야는 확실한 목표와 전략이 수립되고 대규모의 전략적 예산이 투입되지만, 사회정책은 고유의 목표도, 전략도 없이 단편적 정책들이 나열되게 된다. 예산의 총액은 많을 수는 있지만, 소위 '야마'는 없다. 국정운영에서 사회정책은 이렇게 주변부화하고 있다.
복지의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성장을 하는 목적은 두터운 사회안전매트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성장의 결과를 공정하게 나누어야 다음 단계의 성장이 가능하다."
"성장발전전략을 대전환하기 위해 분배의 구체적 전략을 세우겠다."
이런 연설을 들을 수는 없는 것일까? 경제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복지를 통해 경제를 보는 관점만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시각을 대칭적으로 배치하고 국정을 균형 있게 들여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자. 한국에서 집권당이 교체되고 정부가 바뀐다고 정책이 얼마나 변했던가? 냉정하게 말해 이재명 정부의 사회정책은 윤석열 정부와 정책과 얼마나 다른가. 또는 윤석열 정부의 사회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얼마나 달랐던가. 경로의존성은 이재명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권은 바뀌는데 왜 정책은 변하지 않을까? 근본적인 원인은 정당 발전의 지체로 정당이 정책을 주도하지 못하는 데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개발독재 시절 정당은 정당답게 발전할 수가 없었다. 첫 집권 시기에 민주당은 충분한 이념과 정책 능력을 갖춘 상태가 아니었기에. 외환위기의 극복 과정과 국정운영을 관료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사정은 보수당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양대 정당 모두가 부족한 정책 능력을 청와대와 국회에 배치되어 있거나 (형식상 퇴직하고) 잠시 정당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에게 크게 의존한다. 결국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경로가 되어 버린 '박정희 모형'
박정희 정부는 '정부의 역할'과 '보건복지 제도'의 초기 모형을 형성했다, 경제성장 위주의 정부 역할, 낮은 세입과 낮은 세출의 작은 정부와 큰 시장, 조세 방식이 아닌 사회보험 방식의 사회보장, 정부의 보건복지 서비스 제공자(service provider) 역할 기피 등 중요한 경로가 이때 설정되었다. 그 이후 어떤 정부도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도 '박정희 모형'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재명 정부에서 경로 탈출이 가능할까? 시도한다면 "현행 (사회보험형) 복지제도는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것이고 그 한계가 분명하다.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라는 지난해 5월 22일의 '기본사회' 구상이 실마리일 것이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이런 개혁을 구체화한다면 엄청난 공헌을 하는 것이다. 이런 언급을 한 대통령(후보)은 이재명이 유일하다.
일머리와 송곳 질문, 그리고 '계획'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일머리가 좋다는 평을 받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쿠데타 시도와 탄핵으로 국정의 위기가 극에 달하고, 대외적으로 트럼프의 관세 압력이 겹치는 상황에서 판단력 좋고 추진력 강한 대통령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무회의 등 대통령이 주재하는 각종 회의에서 송곳 질문이 이어지면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강해지고 정부 각 부분에 큰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정부마다 특징이 있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이재명 정부의 특징은 대통령의 뛰어난 '일머리'다. 부지런하고 장악력과 추진력이 좋아서 일 처리가 빠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로 인해 성공한 부분이 많다. 문제라면 국정의 동력이 너무 많이 대통령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내각의 장관들보다 대통령과 주변의 참모들이 주로 보이고, 미리 준비된 계획보다는 대통령의 현장 지시로 일이 돌아간다. 이런 방식을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5년을 이렇게 국정이 운영되는 것도 좋은 일만은 아닐 수 있다.
현장 지시의 이행 가능성은 사안의 복잡성에 반비례한다. "산재 사망을 없애라"는 지시는 사이다처럼 시원했으니 쉽게 줄지는 않는다. 복합한 원인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일임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 통제를 해제하라"는 지시는 이튿날 해결되었다.

▲이재명 대선 후보는 2022년 대선 기간 동안 탈모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관련 홍보 캠페인을 펼쳤다.
이재명 유튜브 갈무리
"대머리 치료를 건강보험에서 급여하라"는 지시는 찬성도 반대도 하기가 어렵다. 지시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겠으나, 이게 건강보험 급여 확대의 핵심 문제일지 고민이 된다. 대머리로 고통을 받는 당사자들조차 의견이 엇갈린다. "잔인한 신청주의를 폐지하라"는 지시는 신청주의의 잔인함에 앞서, 신청해도 급여를 받을 수 없는 복지의 부족이 선행되는 문제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하물며 저출산 대책은 어떤가? 주택, 보육, 교육 등도 문제지만, 길고 불규칙한 노동시간, 가사 노동의 분담 등 자본과 노동, 젠더, 복지, 문화 등 사회 전반의 문제가 겹쳐 있다. 고령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의 해결은 '일머리'만으로 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정책치고 단독으로 가능한 일은 없다. 여러 부처에 걸친, 여러 정책의 패키지가 장기간에 걸쳐 기획되어야 한다. 미래에 일어날 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의 원인을 탐구하고, 해결 방안을 선제적으로 계획해야 깊이 있는 개혁이 가능하다. 아니면 현안 대응이 반복될 뿐이다. 계획이 필요 없는 정책은 '소확행' 형태의 단발성, 소규모 정책뿐이다. 경제만 기획과 전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복지도 그 이상 복잡한 기획과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 난감한 것은 그런 기획을 담당한 주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전망 또는 기대
이재명 정부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는 더 기다려 보아야 할 것 같다. 지금처럼 국정 전반을 지도하면서 '일머리 있게 잘해' 나갈 수도 있고, '문재인 케어'와 같이 중요한 사회정책 몇 가지를 뽑아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선후경중'에 따라 경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사회정책의 개혁을 준비하고 추진할 수도 있겠다. 김대중의 '생산적 복지', 노무현의 '비전2030', 문재인의 '포용복지'가 모두 정권 출범 후에 준비를 시작한 전례들이다. 한가지 가능성은 대선 전 약속한 '기본사회위원회'를 구성하여 사회정책의 틀을 고민해 보는 것인데 그것도 불투명하다. 과연 어느 길을 갈 것인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김용익 /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본인
필자 소개 : 김용익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고령화 및 미래사회 위원장, 청와대 사회정책 수석비서관, 19대 국회의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등을 거치면서 많은 보건복지정책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재)돌봄과미래 이사장으로 지역사회돌봄을 전국민에게 보장하려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의료관리학>, <복지의 문법>, <김용익의 돌봄이야기>, <김대중 대통령의 복지노동개혁>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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