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05 15:23최종 업데이트 26.01.0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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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부터 늦잠을 잤다 (AI 생성 이미지)챗GPT

이 글을 쓰는 지금은 2026년 1월 2일 금요일 저녁 8시다. 전날 세운 계획대로라면 지금까지 매주 그래왔듯 오늘 아침에 2026년 첫 수영 수업을 다녀왔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1월 5일 월요일에 배치될 이 칼럼 원고를 오전 중에 완성했을 것이다. 그리고 새해의 기분을 만끽하며 외출에 나선 다음 평소보다 비싼 외식을 하고 카페에 앉아 새 다이어리를 꾸미기 시작했을 것이다. 작년 연말에 미리 주문해둔 아직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2026년을 위한 다이어리 말이다. 물론 이 모든 일을 집에서 해도 상관없다. 굳이 밖에서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데 이 정도 유난을 떨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계획대로라면 이 모든 일정은 아침 7시에 시작해야 했으나 나는 오후 12시 30분에 눈을 떴다.

망한 것이다. 새해 첫날의 첫 계획부터 말이다. 휴대폰 알람 덕분에 아침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졸린 눈을 떴을 때, 침대 밖은 너무 추웠고 그 와중에 극심한 한파가 몰아칠 예정이니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라는 재난알림 문자도 와있었다.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씨에 꾸역꾸역 수영장까지 가서 물에 뛰어드는 건 누가 봐도 미친 짓이다. 미친 짓을 하는 데는 무수한 이유가 필요하지만 하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변명이 필요가 없다. 10분 단위로 맞춰진 알람들을 모조리 꺼버리고 눈을 감을 명분은 충분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딱 수영 수업 시간, 그 시간만큼 자고 일어나서 모든 걸 시작하자. 평소에도 출근을 하려면 대충 그 시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가.

2026 새해 첫 일과가 계획부터 틀어졌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아주 보란 듯이 내 등을 쳤다. 근사하게 한 해를 시작하는 계획이 초장부터 망가졌다. 12시 30분. 계획대로라면 그 시간에 이미 나는 새해 첫 수영 수업을 다녀와서, 새해 첫 칼럼을 완성하고 점심을 먹을 식당을 정하고 집 밖을 나서야 했다. 복잡한 감정이 머리를 스쳤다. 일단은 당황스러웠다. 세워둔 계획이 틀어졌으니 당연하다. 그리고 이후에는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성인들이 느낄 만한 마음이 찾아왔다. 자괴감, 수치심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 같은 것들 말이다. 나이를 그만큼 먹고도 아직까지 늦잠을 자느라 계획을 그르쳤다니. 그것도 새해 벽두부터. 사람이 해가 바뀐다고 갑자기 바뀔 리도 없는데 어쩌면 나는 원래 이런 인간이었던 게 아닐까. 가만 작년에 나는 어떤 삶을 살았지?

하지만 아직 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1월 2일의 4분의 1이 막 지났다. 새해 첫 일과의 4분의 3이 남았다.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계획을 수정했다. 지금부터 열심히 칼럼을 쓰고 늦지 않게 편집부에 송고를 하고 그 다음에는 저녁을 먹으러 나서자. 평소보다 조금 사치스러운 저녁 말이다. 그 사이에 적당히 스트레칭을 하고 빼먹은 수영은 그걸로 대체하자. 그리고 카페에 가서 다이어리를 완성하자. 그러면 된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겨우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계획에도 아주 명확하고 큰 문제가 있었다. 2026년 첫 칼럼의 주제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올해 첫 칼럼이다. 대충 아무 주제나 잡아서 얼렁뚱땅 연재를 때우고 싶지 않았다.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이 어려운 이유

꾸준히 글 쓰는 일은 어렵다연합=OGQ

사실 칼럼을 격주에 한 편을 쓴다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 일처럼 보일지 모른다. 2주에 원고 하나를 만드는 셈이니까.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우선 나는 칼럼 쓰는 것 외에도 생업이 따로 있다. 겨우겨우 마감을 넘긴 후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가도 생업에 치이다 보면 다시 마감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감만 명확히 있다면 글을 쓰는 게 아주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세상이 내 연재 주기에 맞춰서 글감을 툭툭 뱉어주지 않는다. 어떤 시기에는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글로 다뤄야 할 일이 넘쳐난다. 그만한 깊이가 있는 일들. 하지만 어떤 때는 사회에 사건·사고가 아무리 넘쳐도 칼럼으로 쓸만한 게 전혀 없을 때도 있다. 가령 작년에는 순전히 타이밍 탓에 칼럼으로 다루지 못했지만 할 말이 정말 많았던 사건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사람들 앞에서 '아 제발, 일주일만 있다가 터졌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외쳤다가 한 소리를 듣기도 했다.

"방금 한 말, 진짜 불경하다는 거 본인도 알죠?"

2025년 연말은 정말 시끄러웠다. 연예계부터 정계까지. 심지어 해가 넘어가는 순간까지 그랬다. 아마 내가 11월 말에 구설에 휘말렸던 연예인 이름을 이야기하며 '혹시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세요?'라고 물으면 아마 대다수는 기억을 못 할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이유로 한숨을 쉰다. 대부분 세상의 나쁜 일들, 특히 공인의 비위와 비리는 문제의 심각함과 별개로 대체로 내용이 전형적이다. 그래서 그걸 다루는 것만으로도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글감을 감별하는 것도 글쓴이의 덕목이다. 가끔 일 때문에 구독하는 칼럼을 보면 별거 아닌 거 같은 사건을 놓고도 뜻밖의 의미와 통찰을 발견해내는 글쓴이도 있다. 그럴 때는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아, 너무 맞는 말인데... 이 칼럼 못 본 척하고 그냥 내 생각인 척 글로 써버릴까..."

엉망진창 얼렁뚱땅이어도 할 수 있는 한 나아가기를

당연하지만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양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각종 사회 문제를 가지고 글을 쓰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영원히 묻히는 잘못이란 없다. 아니 그런 종류의 잘못도 있긴 한데, 대부분은 묻을 만한 능력이나 자원을 가진 사람들이 저지르는 게 그렇다.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들에겐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자기가 반칙을 했다는 걸 혼자만 알고 속으로 묵히는 것도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저지른 부정에서 마음 편히 이익을 얻기는커녕 그 무게에 짓눌려 홀로 괴로워하길 반복한다. 세계문학전집에 속한 이야기 중 태반이 그렇다. 그러니 부정행위도 감당을 못하겠다면 근처에 가지 않는 게 맞다.

그리하여 2026년 1월 2일 오늘은 아무것도 계획대로 된 것이 없다. 나는 계획한 시간보다 훨씬 늦은 오후 12시 30분에 눈을 떴다. 이후 두 시간 동안 글감을 고민했지만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마침 어제 새벽까지 플레이 하던 엔딩을 목전에 둔 게임이 떠올랐고 어제 먹다 남은 저녁을 대충 끼니로 삼으며 게임을 했다. 그리고 잠시 이불 정리를 한다는 게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고, 자정이 가까워지는 지금에서야 원고의 마지막 문단을 쓰고 있다. 그렇게나 '특별한 글감'을 고민했던 2026년 새해 첫 칼럼의 원고 말이다. 아마 이 칼럼은 1월 5일 월요일에 배치될 것이다. 운이 좋다면 그날은 오늘과 다르게 많은 일들이 계획대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많은 일들이 엉망진창 얼렁뚱땅으로 굴러갈 것이다. 나의 것도 다른 사람의 것도. 하지만 하고자 한다면 시기와 형태가 어떻든 완료는 된다. 지금 이 원고와 나의 하루처럼 말이다.

2026년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기를 바란다. 어떻게 한 해를 시작했고 올해 무엇을 마주하건 움츠러들거나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할 수 있는 한 뚜벅뚜벅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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