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사진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신나리
새해를 맞이하며 하는 다짐 중 가장 흔한 항목은 아마도 건강이 아닐까 싶다. 내년에는 꾸준히 운동하겠다고 약속하고, 술을 줄이고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한다. 누군가는 매일 늦게 자고 빠듯하게 일어나는 고된 생활을 청산하고 하루 7시간 푹 자겠다고 결의를 다질지 모른다.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선물로 주고받고, 새 조깅화와 스포츠 의류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건강이란 무엇인가
의과대학을 비롯해 공식 교육 기관에서 사용하는 건강의 정의는 흔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다. 국제연합(United Nations)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가 구축되며 건강한 개인들이 모인 사회가 세계 평화의 기초라고 보았다. UN의 산하 기구인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에서 회원국들이 무려 1946년에 합의한 건강의 정의가 지금까지 널리 인용되는 건, 아마도 건강을 규정하는 이토록 포괄적 접근이 가지는 장점 때문일 테다.
하지만 저토록 이상적인 건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며, 각자가 인생에서 그토록 안녕한 순간은 얼마나 될까? 저명한 의사 연구자인 페트르 스크라바넥은 세계보건기구의 건강 정의가 "오르가슴 후나 약물을 했을 때나 느낄 만한 상태"라고 농담하곤 했다고 한다(출처:
셰이머스 오마호니 - 『병든 의료』, pp. 309-310). 건강에 대한 세계보건기구의 규정이 대단히 유토피아적 이상을 담고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혹자는 "건강이란 없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도저히 도달 불가능해 보이는 완전한 건강에 대한 강박으로 정상적인 삶을 의료화하며 모두를 잠재적 환자로 만드는 힘에 대한 비판이 담긴 말이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세계보건기구가 인류 모두의 천부적 권리라고 약속한 복된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실로 어렵고, 건강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수도 없다. 가령 작년 12월, 내란 이후 바쁜 연말 시간을 쪼개어 내란을 진압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 찬바람 속에서 민주주의를 외치고 밤을 지새우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내란성 불면과 집회 후 몸살의 건강 비용을 셈해 볼 수야 있겠지만, 건강에 해롭지 않아도 독재는 나쁘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 역시, 불건강으로 인한 삶의 제한과 가능성의 상실을 환기하는 효과가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말이다. 질병과 장애와 같은 몸의 상태는 계급이나 젠더, 학력과 유사하게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상의 조건일 뿐 그 자체로 한 사람의 삶을 규정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일상의 희로애락과 불안, 수면 부족과 과로를 모두 불건강의 위험 요인이라고 생각하며 피하고자 애쓰는 것이 건강한 삶이 되어서도 곤란하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는 심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정치 뉴스와 사회 문제를 외면한 채, 시시포스라도 된 것처럼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수명이 연장된다는 계단을 영원히 오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건강을 위한 공공 정책과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공공기관에 설치된 건강계단 이미지
이혁진
이처럼 복합적 의미가 있어서일까, 건강을 위한 공공 정책을 수립하기란 매번 쉽지가 않다. 예시를 들어보자.
뇌졸중과 심장질환(합쳐서 심뇌혈관질환이라고 부른다)은 한국인의 5대 사망원인 중 하나다. 이로 인한 사망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시에 치료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과 의료 인력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보다 앞단에선 당뇨와 고혈압과 같은 중증 질환의 위험 요인을 잘 관리해야 한다. 한 단계 더 앞에서 만성 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애초에 어떤 사람은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좀처럼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 열고 나가면 광안리 해변이 펼쳐지는 아파트에 사는 수영구민과 집 근처를 좀 걸어보려고 해도 좀처럼 안전하고 쾌적한 길이 나타나지 않는 사상구민들의 걷기 실천율에 차이가 나는 데에는 개인의 의지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보다 근본적이고 또 구조적인 요인을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이라고 부른다. 이 문제에 천착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건강에 개입하는 방식이 보다 상류(upstream)로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강은 단지 얼마나 열심히 운동하고, 무엇을 먹고, 술과 담배를 얼마나 절제하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인구집단의 건강이 어떤 동네에 살고 어떤 일자리를 가지고 있으며,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배분할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는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을 둘러싼 공공정책의 질문은 "사람들이 어떻게 건강에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가 아니라 "좋은 선택이 가능한 사회적 조건을 어떻게 만들지"로 바뀐다. 이 전환을 공중보건에서는 흔히 '상류로 이동하기(Moving upstream)'라고 부른다.
상류로 갈 수 있을까
건강의 상류 결정요인에 개입하는 일이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하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이는 별로 없다. 문제는 그것이 훨씬 어렵다는 데 있다. 한국인의 정신건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통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취업하면 의무적으로 회사 근처에 사택을 제공하도록 한다거나, 거주지에서 30분 이내 직장에만 취업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법을 만든다거나? 멀리서 사는 직원을 위해 근무시간을 매일 한 시간 줄여주거나? 퇴사가 복지가 될 수 있는 튼튼한 실업급여 제도를 만든다거나? 고민하면 할수록 무엇 하나 "말이 된다"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단 사실을 떠올리게 될 뿐이다.
반면, 조금 더 걷고 뛰자고, 오늘 먹는 밥에 콩을 섞어 보자고 이야기하는 일은 한결 쉽고 나도 금방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 당장 나의 의지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고, 지금 내가 직접 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영양잡곡 간편식을 택배로 시켜 냉장고에 쟁이는 것처럼 약간의 돈을 써서 개선을 구매할 수도 있다. 일주일에 세 번 헬스장에 나가는 것 보다 헬스장 3개월 장기권을 끊는 게 쉽고, 매일 스쿼트를 100개 하는 일보다는 한 달 오만원 하는 복합비타민을 사 먹는 게 더 쉽다. 개인 수준에서도 하류로, 대개는 쇼핑으로 떠내려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캐나다 공중보건청 산하 건강결정요인센터가 발행한 보고서의 공중보건개입의 하류 접근과 상류접근을 설명하는 삽화 그림
NCCDH
하류 접근의 한국 의료
한국에서는 의료 역시 이와 같은 '하류 접근(downstream approach)'에 적극 동참한다.
감기에 걸려 골골대지만 일이 바빠 병가를 낼 수 없나요? 점심시간에 1인실에서 쾌적하게 영양 수액을 맞고 회복하세요.
지나치게 오랜 시간 공부하며 집중력이 저하되고 초조하고 불안한가요? ADHD 치료제를 먹어봅시다.
빠르게 살을 빼고 체중을 유지해야 업무상 성과를 낼 수 있나요? 나비약과 갑상선 호르몬을 함께 먹어봅시다.약을 먹었더니 잠이 오지 않고 손이 떨리나요? 그럼, 수면제와 진경제를 함께 처방할게요.
경쟁적이고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키가 큰 아이로 키우고 싶으신가요?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혀 보시죠.
삶과 몸을 조건 짓는 상류 결정요인(upstream determinants)은 어쩔 수 없다며 내버려 둔 채 지금을 지탱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의료도 힘을 보태다 보면, K-의료의 독특한 모습이 완성된다. 구조적 문제야 어찌되었든 의료는 당장의 건강과 웰-빙에 복무한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몸의 상태란 게 그런 전투적 증강(enhancement)의 구현이라면 우리는 의학적 지식을 활용해 최적의 약효를 추구해 보겠습니다. 그야말로 K-Medicine의 굉장함이랄까. 근거기반의학을 신조로 삼는 국제적 학회들에 한국에서 이런 용도로 활용되는 비급여 의료서비스의 규모와 처방전을 샅샅이 보고한다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몹시 궁금하다.
내년에도 우리 함께, 모두의 건강을 위해 힘써봅시다
세계보건기구가 말하는 모두가 누려야 마땅한 온전히 안녕한 상태란 게 모두가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에서 최대의 성과를 내기 위한 기름칠 잘 된 기계 같은 몸을 준비시키자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건강이 인간의 권리라면 그 권리는 공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보편적이고 또 형평해야 한다. 무기고에 장비 갖추듯 각자가 채우고 관리하여 스스로 유지해야 한다면, 그 건강은 "권리(right)" 보다는 "자산(asset)"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건강을 모두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각자 나름으로 투자해 키워야 할 스펙으로 여기며 공공정책을 수립해서는 무척 곤란하다.
그러니 공적 영역과 공론장에서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건, 아무래도 자산보다는 권리 쪽의 건강이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역시 상류로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주간 근무시간이 88시간을 넘어서는 병원 노동자, 생계비가 부족해 N잡을 하면서도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학업을 병행하는 청년, 하루 통근 시간이 4시간을 넘어서는 워킹맘에게 왜 규칙적인 운동과 양질의 식단을 하지 않냐고 다그치는 건 무척 불합리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의 건강을 위해 어떤 미래를 상상해야 할까?
인간을 자산화, 도구화하는 권력을 거슬러 오른 후에야 상상할 수 있는 곳에 '상류'가 있다. 새해에는
건강사회구락부(Health Socialist Club)와 함께, 상류를 함께 상상할 동료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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