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8일 배우 손예진이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액터스 하우스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음으로는 세 명도 낳았다. 그런데 워킹맘으로서 정말 쉽지가 않다."
아이를 재우고 새벽 3시에 지방 촬영을 위해 출발한다는 한 여배우의 고백. 베니스영화제의 히로인, 배우 손예진씨의 이야기다. 출산 후 복귀작 <어쩔수가 없다>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스타도 워킹맘의 삶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스포트라이트 없이 진짜 '어쩔수가 없는' 매일의 영화를 찍고 있는 일반 워킹맘들은 어떨까.
출장 잦은 아내, 가정에 관심 없는 엄마?
여러 지자체가 이해관계자인 회사에 다니는 워킹맘 A씨. 어느 해 특별히 외부 업무가 많았다. 각 지자체를 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한 해가 가득 찼고, 이동 시간은 무한정이었다.
그렇다고 '워킹맘'이기 때문에 해당 업무를 맡지 않겠다고 할 수 있을까? 이동 거리가 길고 미팅이 많은 업무는 솔로인 직원에게 배당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는 명백히 '예스'를 외칠 수 없다.
사실 문제는 회사가 아니다. 회사의 상사나 동료들은 이해관계 집단이기에 나의 사정을 마음속 깊이 공감하거나 배려할 이유가 없다. 조직 문화와 인지상정의 한국 정서상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한계는 명백하다.
그런데 가정은 어떠한가? 남편과 아내, 두 어른이 주축이 되어 아이를 돌보는 가정에서는 서로의 사정이 씨줄 날줄처럼 얽혀 있다. 한쪽 실밥이 나가면 다른 쪽 실타래가 엉키기 마련이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긴밀한 이해와 공감대가 높아야 한다.
하지만 A씨는 그해 외부 출장이 많은 업무를 맡으며 실밥이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등하원, 등하교를 책임져야 하는 기본적인 육아 업무에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 틈을 채워가던 남편의 참다못한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버는 돈에 비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네..."
A씨의 연봉은 남편보다 낮다. 결국 그녀는 연말 희망부서 조사에 내근이 주된 타 부서를 썼지만 마음속 갈등은 계속됐다. 현재 업무가 몸은 고됐지만 보람이 있었고, 오로지 육아 때문에 원치 않는 부서로 이동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A씨는 남편에게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출장 횟수만 좀 조정해 달라고 부서장에게 말해봐라" 정도로 마무리됐다. 결국 그녀는 제출했던 희망부서 신청서를 번복했다.
결론적으로 그녀가 희망부서에 희망하지 않는 부서를 쓰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그 한마디는 분명히 자존감과 일에 대한 근로 의욕을 한풀 꺾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롯이 그녀의 몫으로 묵묵히 받아들였던 육아에 대한 책임감과 만족감에도 그림자가 질 수밖에 없었다.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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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시계 사이에서
워킹맘 B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전공 분야에서 20년 넘게 경력을 쌓아온 그녀에게도 유일한 고민거리가 있다. 직장과 육아의 시계 중 어느 시계를 먼저 봐야 할지의 문제다.
회사 워크숍이 있던 날, 아이의 졸업식이 있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그녀가 맡은 큰 행사가 있던 날, 아이가 아팠다. 그녀가 택한 선택은 하루는 육아의 시계, 다른 하루는 회사의 시계를 먼저 보는 일이었다. 그 팀에서 두 시계 사이를 고민한 건 그녀가 유일했다. 다른 팀원들이 인사고과라는 목표 하나만을 두고 선택할 때, 그녀는 육아고과라는 무형의 평가대 위에도 서 있었다.
물론 그런 고민이 딱 그 이틀에만 한정된 건 아니었다. 1년 365일 중 두 개의 시계 사이에서 고민한 날은 상당했다. 그 고민에 지친 어느 날, 그녀는 결심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쌓아온 경력의 한 길을 포기하기로. 20년 넘게 전문성을 쌓아온 것을 내려놓고,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업무로 바꾸고자 했다. 본인이 휴가 등으로 공백이 생겼을 때 그저 누구나 그녀를 대체할 수 있도록.
그렇다면 독감 A형에 걸렸다가 일주일도 안 돼 아이가 독감 B형에 걸렸다는 소식에 눈물 흘리며 "도대체 왜 또 걸렸냐"며 아픈 아이를 탓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통계가 말해주는 것들
▲2025년 상반기 지역별고용조사 기혼여성의 고용 현황
국가데이터처
국가데이터처에서 발표한 '2025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기혼 여성의 고용 현황' 결과는 일과 육아 사이에서 경력을 축소하고 퇴사를 고민하는 워킹맘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 100명 중 약 21명이 경력 단절 상태라고 한다. 경력 단절을 겪은 여성들을 연령대별로 봤을 때, 30~34세 그룹이 가장 많은데(21.8%) 이 연령대가 첫 출산이 많은 시기라서 경력 단절이 집중되는 것으로 보인다.
자녀 연령별로 봤을 때는 영유아 자녀(0~6세)가 있는 워킹맘의 경력 단절률이 31.6%로 전체 평균(21.3%)보다 약 10%p나 더 높다. 아이가 어릴수록 일과 육아 병행이 더 어렵다는 의미다. 30대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는 이유 중 48.5%, 즉 절반 가까이가 '육아'를 꼽았다.
그렇기에 워킹맘 A씨가 연말 '희망부서'를 작성할 때 가장 고민했던 건 일과 육아 사이의 균형점이었을 것이다. 일도, 육아도 일부를 포기하고 희생할지라도 양쪽의 수레바퀴를 모두 굴릴 수 있는 '희망' 말이다.
이 두 명의 워킹맘 이야기는 모두 나의 이야기이자, 내 동료이자 선후배의 이야기다.
그녀들에게 다음 출산과 육아의 계획에 대해 묻는다면 어떨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손예진 배우처럼 '마음으로도 셋 낳을 생각'은 전혀 없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며 치르는 보이지 않는 수업료가 이미 너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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