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31 14:34최종 업데이트 25.12.3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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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명태균 공천개입, 통일교 청탁·뇌물 수수 의혹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김건희 씨가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 배우자의 신분을 이용해 고가의 금품을 쉽게 수수하고, 현대판 '매관매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각종 인사와 공천에 폭넓게 개입했으며 그로 인해 대한민국의 공적 시스템이 크게 무너졌음을 확인했다."

지난 29일 민중기 특검이 발표한 김건희 수사 결과입니다. 김건희가 저지른 악행은 일일이 열거하기 입이 아플 정도입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도 이른바 '사모총장' 의혹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습니다.

광범한 사모 정치의 폐해

현재 드러난 김병기 전 원내대표의 9가지 의혹 중 7개가 가족 관련입니다. 여타 정치인 비리 사건과 비교하면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특히 배우자가 구의회 부의장의 업무추진비 카드를 쓰고 다녔다는 대목에선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사실이라면, 해도 너무 한 갑질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정치인의 배우자가 말썽일까요? 저는 국회 보좌관 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현직에서 전직으로 넘어갈 무렵, <보좌의 정치학>이라는 보좌진 업무 지침서 비슷한 걸 썼습니다. 책을 읽은 의원이나 보좌진들이 저를 부릅니다. 공개 강의와 달리, 의원은 주로 보좌진을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하면 좋을지 자문했습니다.

보좌진은 조심스레 의원실 내부 문제를 털어놓으며 상의했습니다. 의원실 내부 문제라는 게 의원의 리더십 문제나 진로 선택이 4할, 사모의 공사(公私)에 걸친 업무 개입이 6할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모 정치'의 광범한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거의 모든 국회의원실이 사모 문제로 몸살을 앓게 되었을까요? 도대체 언제부터 대통령 배우자가 'V0'로 불리며 인사와 공천을 좌지우지하고 추접스럽게 뇌물이나 챙기는 권력자가 됐을까요?

원인은 정당의 실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공적 시스템인 정당의 실패가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김건희의 경우는 집권 여당의 실패가 불러온 결과입니다. 국회의원들 경우는 지구당의 실패가 가져온 결과가 되겠지요.

우선 윤석열의 배우자 김건희가 저렇게 된 이유입니다. 대통령에게 여당이란 우군이자, 부담(?)입니다. 국회에서 자신을 위해 야당과 대신 싸워줘야 하니 우군입니다. 그래서 수시로 당정협의를 합니다. 여기서 '정'은 대통령실(청와대)를 말합니다.

당과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서 미묘한 역할 차이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배라면 당은 평형수 역할입니다. 배가 너무 가벼우면 뒤집힙니다. 너무 무거우면 가라앉겠지요. 그래서 평형수를 상황에 따라 채웠다 뺐다 합니다. 대통령은 단임입니다. 하지만 당은 계속 선거를 치러야 합니다. 막말로 대통령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가면 그만입니다. 당은 다음 선거 때문에 그럴 수 없습니다.

윤석열은 이 평형수를 배에서 완전히 빼버린 대통령입니다. 윤석열의 정당 경험은 정확하게 2021년 7월부터 2022년 5월까지 길게 잡아도 10개월밖에 안 됩니다. 그조차도 은(恩)을 쌓기는커녕 원(怨)만 깊어진 시간입니다. 당 대표였던 이준석과 갈등과 화해를 거듭하다가 대통령이 되고선 바로 팽했습니다. 오죽하면 이준석은 '양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팔았다'라며 윤석열에 대한 저주를 쏟아붓기까지 했겠습니까. 김종인이나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나경원도 죄다 당했습니다. 특히 한동훈의 경우가 매우 특이합니다.

한동훈은 윤석열의 오른팔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를 술에 취한 대통령이 '내 앞에 잡아 와라. 총으로 쏴 죽이겠다'라고 할 정도로 증오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윤석열에게 국민의힘은 우군이 아닙니다. 윤핵관이 있지 않았냐고요? 그들은 평형수가 아닙니다. 그냥 호가호위하던 수하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윤석열은 정당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정당은 남대문시장보다 시끄럽고, 서촌 골목길보다 복잡한 곳입니다. 하지만 윤석열은 '내 덕에 너희들이 이겼지, 네들 덕분에 내가 이긴 줄 아나, 착각하지 말라 그래'라며 당을 무시했습니다.

이렇게 무시만 당하던 국민의힘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명색이 집권 여당입니다. 원래 여당이 되면 온갖 곳에서 민원이 쇄도합니다. 정당한 민원도 많고, 들어주면 안 되는 특혜성 청탁도 많습니다. 옥석을 가려 처리할 건 해줘야 다음 선거를 또 치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지역 발전 성과 없이 4년 뒤에 선거 나서면 대구경북에서조차 교체당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들도 새 정부에 부탁할 게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접촉 자체가 안 됩니다. 중간에 끼인 정진석 비서실장만 고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영부인 라인이 그나마 돌아간다더라, 누가 그 줄 잡고 공천받았다더니 이젠 자리도 얻고 영전도 했다고 하더라.'

김건희 등에 업힌 윤석열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가 지난 12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백대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체포방해 등 사건 결심공판에서 직접 최후 진술을 하고 있다. 그는 공소장이 '코미디'라며 무죄 취지로 주장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소문이 점점 더 퍼지면서 온갖 축축한 민원, 청탁에 투서까지 당을 통해서가 아니라 김건희에게로 바로 쏟아집니다. 진짜 권력자는 권력자를 움직이는 자입니다. 영부인 라인을 타야만 부탁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니, 당연히 김건희 권력이 윤석열보다 커집니다. 윤석열은 매일 술만 먹고 일은 안 했습니다.

반면 김건희는 열심히 사람 만나고, 누군가에게 지시하고, 피드백을 해주며 일을 했습니다. V1을 넘어선 V0가 됐습니다. 특검은 "영부인이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부정부패의 전형인 매관매직을 일삼으면서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렸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등에 업힌 건 김건희가 아니라 윤석열입니다. 이때쯤 한동훈이 어렴풋이 위기감을 느꼈을 겁니다. '이러다 당은 허수아비가 되고, 김건희가 전부 틀어쥐겠구나.'

그다음 일은 뻔합니다. 여후가 한신을 제거했을 때, 한 고조는 뒤늦게 알고 씁쓸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윤석열은 다릅니다. 집권 여당 대표를 자기 손으로 처단하겠다고 본인이 더 앙앙불락했습니다. 제 아내를 감싸고, 복심은 내쳤습니다.

이로써 국민의힘의 존재는 지워졌습니다. 여소야대이니 입법이나 정책 수립에서도 별 힘을 못 씁니다. 대신 영부인의 존재만 커집니다. 윤석열은 어디선가 '어떻게 보면 순진한 면이 있는 아내'라고 호명했습니다. 그 순진한 아내가 매일 쉼 없이 청탁을 받아와선 해결해 주느라 분주합니다. 뇌물을 받으며,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자기 사진을 올리며, 마포대교에 나가 현장지도를 하며...

대통령이 미친 것처럼 어느날 갑자기 계엄을 선포한 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국민의힘이 대통령을 제대로 붙잡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과 대통령은 상호의존적 관계여야 하는데, 대통령이 당을 걷어찼고, 당은 김건희에게 밀려 무기력하게 그냥 추종만 했기 때문입니다.

지구당 폐지와 사모의 권력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남소연

국회의원들은 어떨까요? 지난 20년간, 그러니까 2005년경부터 우리 정치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어쩌다 의원 배우자가 공적 영역에까지 발을 들여놓게 됐을까요?

두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소위 '오세훈법'이 통과된 게 2004년입니다. 오세훈 법의 핵심은 지구당 폐지였습니다. 당시 지구당은 '돈 먹는 하마'였습니다. 동시에 국민참여경선이 도입됐습니다. 2002년 노무현 경선부터 시작해 점점 확대되었습니다. 둘 다 당시로선 엄청난 개혁이었습니다. 어느 정당제도보다 정치자금을 줄이고, 어느 선거제도보다 국민의 참여 폭을 확대한, 민주적 관점에서는 단연 성공작입니다.

그러나 모든 제도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국민참여경선으로 룰이 결정되면, 비당원이라도 입당 원서를 내고 일정 기간 당비를 내면 투표권이 주어집니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마치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미리 준비해 두듯, 후보는 자기를 찍어 줄 지지자를 경선 전에 조직해 둬야 합니다. 경선 준비의 출발점입니다.

그렇게 해서 공천을 받는 데 성공해 현역 의원이 됩니다. 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에 입당시킨 자기 당원을 관리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거북선을 준비해야 합니다. 당원을 공조직, 거북선을 사조직이라 부릅니다.

자, 그런데 지역구에 지구당이 폐지되고 없습니다. 대신 지역위원회(민주당)나 당원협의회(국민의힘)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실은 못 둡니다. 그럼 '우리 지역구에 간판 달고 있는 저건 뭐냐?'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건 국회의원 사무실입니다. 의원 보좌진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역구 공약 사업 추진이나 행사 일정, 민원, 시청이나 시의회와의 대외협력 업무를 주로 담당합니다. 무엇보다 조직 관리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재선, 삼선이 됩니다. 공조직은 물론 사조직이 점점 커집니다. 대개 한 지역구에 동이 10개쯤 됩니다. 동당 100명 정도 공·사 조직원이 활동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들은 국회의원을 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의원은 여의도에 있지 지역에 잘 없습니다. 대신 사모가 늘 있습니다. 보좌진도 있고, 기초·광역의원도 있지만, 사모를 더 만나고 싶어 합니다. 어떤 부탁이나 민원이 있을 때는 더 그러합니다. 그래야 제일 힘 센 국회의원한테 직보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모 주변에 사람이 모입니다. 정보도 모입니다. 무언가를 부탁합니다. 전부 표인지라 사모는 도와줘야 합니다. 직접 할 수는 없으니, 보좌진이나 기초·광역의원들에게 '체크해 보라'라고 지시합니다. 의원보다 사모가 지역구 구석구석, 이 사람 저 사람 더 많이 알게 됩니다. 사모의 권력이 시나브로 커집니다. 3선쯤 되면 의원은 여의도에 더 묶입니다. 당직이나 국회직을 맡기 때문입니다. 지역구 관리를 전적으로 맡겨놓다시피 한 의원은, 사모에게 점점 더 미안해집니다.

국회의원은 어디 가면 예우라도 받습니다. 국회에 가면 행정부에 호통도 치고, 방송이나 언론을 타면 지지자들이 응원도 해줍니다. 하지만 사모는 사뭇 빚쟁이 신세입니다. 지역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전부 유권자입니다.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스트레스란 게 어디선가 풀어야 사람이 살 수가 있습니다. 어디에 풀겠습니까?

당원들의 공조직으로서 지구당 부활이 필요하다

국회의원들도 심각합니다. 지구당이 아니라, 의원 사무실이다 보니 사조직 관리가 풀뿌리 정치를 고사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사모 정치가 극성을 부립니다.

이제 한번 끊어줄 때가 되었습니다. 정당정부의 교과서적 원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업둥이' 후보는 위험합니다. 이제 누가 됐건 첫 선거를 대통령 선거로 치러 당선되는 일은 만들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윤석열 덕분에 국민이 비싼 수업료 내고 체험 학습 톡톡히 했습니다. 의정 활동을 경험하고, 선거를 치르며 민심의 심판을 받아 본 정당 정치인이 그래도 낫습니다.

당원 자격 부여를 더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악회 가면서 당원 수련회라고 했습니다. 그럴 게 아니라 제대로 정치 교육해야 합니다. 지구당 부활도 필요합니다. 지금은 후원제도가 비교적 투명하게 잘 운영됩니다. 돈 선거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사조직은 좋지 않습니다. 공조직으로서 당원의 풀뿌리 조직을 되살려야 합니다. 사무국장을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둘 게 아니라, 중앙당에서 임명하고 당원들이 낸 당비로 월급 주면 됩니다.

대통령 배우자든, 국회의원의 배우자든 그들이 권력자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가 사사로워집니다. 사사로우면 음습해지고, 음습해지면 반드시 부정부패부터 깃들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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