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남소연
이쯤 되면 쿠팡이 이토록 막 나갈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미국 기업이라는 정체성과 미국 정계라는 뒷배경도 한몫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또 정계, 언론계, 법조계를 망라하는 대관 조직의 역할도 그들에게는 믿는 구석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라고 할 수 없어 보인다. 사상 최대의 매출을 만들어주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켜 준 한국의 소비자들이 쿠팡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계산이 그들에게 신념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정보 유출 사태가 있기 전에도 쿠팡은 장시간 야간 근무 등 과중한 업무로 인한 사망 사고가 끊이질 않았고 이때마다 유족을 회유하고 대관 조직을 이용해 입막음하는 데 급급했다, 노동단체, 시민단체, 소비자의 개선 요구는 번번이 찻잔 속 태풍에 머물렀고 시간이 지나면 쿠팡은 또다시 매출 기록을 경신했다.
정부가 법대로 정보 유출 기업을 조사하고 제재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고 소비자인 국민도 쿠팡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기업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버려질 수 있다는 매서운 경고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 됐다.
쿠팡 정보 유출 사태를 접하면서 일부에서는 정부의 대응이 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더 나아가 기업 규제가 커지면 경제 성장에 저해되고 결국은 거기에 몸담고 살아가는 물류 노동자나 새벽 배송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이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기업이 소비자의 개인정보와 안전을 내팽개치는데 소비자가 기업을 걱정하고 결국 소비자의 손해로 이어지리라 우려하는 건 앞뒤가 뒤바뀐 모순적 발상이다. 대한민국에서 먹고사는 기업에 올바른 역할을 기대하는 국민이라면 당연히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너 일가의 갑질과 기업의 반사회적 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그때마다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다. 기업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결기는 넘쳐나지만 지나고 보면 기업에 따끔한 회초리가 된 적은 많지 않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국민 공분이 크다. 정부와 국회도 어느 때보다 높은 조사와 제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쿠팡이 진실과 사과, 책임 있는 보상,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없지 않다. 기업 불매가 대통령 탄핵보다 힘들다는 농담이 단순히 농담으로 그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일까

▲김광석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이 12월 26일 오전 쿠팡CLS 본사 앞에서 열린 쿠팡 로켓배송 택배노동자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전선정
"저렴한 상품이 있으려면 저렴한 노동이 있어야 하고, 저렴한 노동이 있으려면 저렴한 국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국가는 우리 아버지들이 건국한 국가도 아니고, 우리 아들들이 지켜나가고자 하는 국가도 아니다."
미국의 25대 대통령인 윌리엄 매킨리가 남긴 말이다. 쿠팡이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리며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건 저렴한 상품과 빠른 배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저렴한 상품과 빠른 배송은 잠시의 휴식도 가질 수 없는 힘든 노동과 과로사가 이어진 새벽 노동이 바탕이 되었다.
쿠팡의 정보 유출 사태 앞에서 소비자인 국민은 무엇에 분노하고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가 됐다. 윌리엄 매킨리의 지적처럼 저렴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저렴한 상품에 길들여진 소비가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2025년을 보내고 2026년이 왔지만, 해가 바뀐다고 세상이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새해에는 내가 주문한 제품을 새벽에 배송하다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편리를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강요하는 사회는 '우리 아버지들이 건국한 국가도 아니고, 우리 아들들이 지켜 나가고자 하는 국가도 아니다'.
소중한 개인 정보 유출도 화나는 일이지만,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사과보다 대관 조직을 앞세워 무마하려던 기업의 반인륜적 행위는 쉽게 용서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가 열심히 일한 기록을 남기지 말라." 2020년 10월 쿠팡 칠곡 물류센터 노동자가 과로로 숨진 직후, 김범석 의장이 임원에게 지시한 내용이라고 알려졌다. 김범석 의장과 쿠팡, 참 무서운 사람이고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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