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의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 스틸컷
㈜마운틴픽쳐스
로마의 살레시오회 총본부는 1980년 이래로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런데 살레시오회는 아프리카 동부인 케냐와 탄자니아에는 신학생 선교체험을 장려하면서도 그 이웃 국가인 수단에는 선교체험을 허용하지 않았다.
수단은 영국·이집트의 공동 지배에서 벗어난 1956년 1월 직전부터 남북 내전에 빠졌다. 그 결과, 1972년에 남수단의 자치권이 인정됐다. 그랬다가 1983년에 제2차 내전이 발발해 200만 명의 희생자를 낸 끝에 2011년에 남수단공화국이 독립했다.
1999년 당시는 제2차 내전 와중이라 신학생의 선교체험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태석의 머릿속은 남수단 톤즈라는 아프리카 최대 오지 구역으로 가득 찼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책가방 대신 넓적한 돌을 들고 등교해 그것을 깔고 수업을 듣는다', '의사가 없어서 치료가 힘들다', '한센병 환자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그를 끌어당겼다. 결국 그는 어렵사리 허락을 받아 일주일간 그곳에서 선교 체험을 하게 됐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살레시오대학을 수료하고 서울 구로3동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해인 2001년에 그는 톤즈에 부임했다. 그가 원했던 의사의 길은, 진료비 수납이 거의 불가능한 이 지역에서 39세인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톤즈 땅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흙과 대나무로 지어진 세 칸짜리 움막"(위 탁동화 논문)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 진료소의 유일한 의사인 그는 100킬로미터를 걸어오고 이삼 일간 밤새워 걸어온 환자들을 치료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보통 300명 이상, 나중에는 150명 정도를 진료했다고 한다.
개업하자마자 '대박'을 터트린 이 '개원의'는 쇄도하는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직접 설계하고 직접 짓는 방식으로 병원 건물을 건축했다. 처음에는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병원을 짓고, 다음에는 남수단 남쪽인 케냐에서 시멘트를 사 오고 강가에서 모래를 퍼온 뒤 그것으로 벽돌을 만들어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만들었다.
병원 손님의 절반은 말라리아 환자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한밤중에 단잠을 깨우는 환자, 총상 입고 찾아온 환자들을 한 번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를 그곳에 오게 만든 한센병 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병원에서는 '응급실 위기', '응급실 뺑뺑이'가 있을 수 없었다.
의사이자 신부였던 그는 교육자 역할도 병행했다. 그곳에 학교를 세우고 중고교 과정을 개설했다. 얼마 뒤 이 학교는 남수단에서 가장 실력 있는 학교가 됐다. 인간의 몸을 치료하고 영혼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신과 의식을 충만케 하는 일에도 헌신했던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의사는 철학적이고 종합적인 직업이었다. 그것은 전문직은 아니었다.
그는 내전 중이라 총과 칼을 갖고 노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이들을 조직해 밴드를 만들었다. 그 자신도 기타를 치고 작곡을 했다. 이런 의사가 되기 위해 28세 때 전공의시험을 그만두고 먼 길을 돌았던 것이다.
46세 때인 2008년에 휴가차 귀국한 그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가 2010년 1월 14일에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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