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산재사망 배달노동자 추모 행진에 참가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을 비롯한 배달 노동자들이 지난 8월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산재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며 약식 추모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임금입니다. 맥도날드 배달노동자는 최저임금에 더해 건당 400원의 성과급을 받습니다. 회사는 배달을 마치고 매장에 늦게 오는 라이더를 질책할 수 있지만, 매장 밖 배달과정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빨리 배달해 버리고 한참을 쉬고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죠. 이 때문에 자발적으로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건당 임금을 도입합니다.
고작 400원으로는 노동자의 노동의욕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배달기업들은 고정급을 모두 없애고 건당으로만 임금을 받는 '건당 노동자'들을 탄생시켰습니다. 회사는 더 이상 배달 노동자에게 빨리 배달하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건당 배달료를 낮게 주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달리면 됩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억지로 등 떠밀어 일을 시킬 필요가 업습니다. 평소보다 높은 금액을 주면 노동자가 알아서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합니다.
그래서 쿠팡은 물류센터에 묶어두고 일을 시켜야 하는 물류센터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계약해 최저임금으로 일을 시키고, 물류센터 밖에서 최대한 빠르게 배달을 해야 하는 택배, 음식배달노동자에게는 특고 플랫폼 노동자로 계약하고 건당임금을 지급합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으로 쿠팡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고 익힌 '노동윤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터는 매일 얼굴을 마주치고 인사하는 동료가 존재합니다. 특히 같은 장소에서 집단적으로 일하는 사업장에서 설렁설렁 일했다가는 회사생활이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일용직,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이런 노동윤리도 붕괴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떠날 일자리라면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노골적으로 한 번 쓰고 버리겠다는 의도를 가진)고용주와의 신의를 지킬 필요도 없습니다. 알바 노동자들이 일이 힘들어 연락 없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일명 '추노'현상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합니다. 김범석이 숨이 막히도록 촘촘한 노동자 통제 시스템을 만들어놓고도 시급제노동자를 믿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싶은 일자리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쿠팡이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아동노동,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 등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극심해 노동자가 일찍 죽어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붕괴되기 시작할 때,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노동법입니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의 골간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사업주가 일을 하는 개별노동자에게 보장해야 할 임금·노동시간·휴게시간을 규율한 근로기준법,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해 집단적 힘으로 사업주와 협상할 수 있게 한 노조법, 사업주와 국가가 연대해 만든 연금·건강보험· 산재보험·고용보험 등의 사회보험입니다. 그런데 쿠팡은 이 모든 법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쿠팡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우리사회에 던져진 어렵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마침 정부여당이 답을 내놓았습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정부여당 주도로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고 플랫폼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표준계약서 작성, 괴롭힘 금지, 보수 지급 보장 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모두 기존 노동법에 있는 내용으로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벌칙 조항입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엔 처벌조항이 없습니다. 좋은 말을 써놓은 겁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쿠팡에서 일하는 택배 배달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요? 노동법을 무너트리는 쿠팡을 규제할 수 있을까요? 변화하는 새로운 노동통제에 대응할 수 있을까요? 산재은폐, 퇴직금 미지급 등 기존 노동법조차 무시하는 쿠팡에게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지키라고 강제할 수 있을까요? 쿠팡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쿠팡은 2021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상장 신청 서류를 제출하면서 "쿠팡 플렉스·이츠 배달원을 독립계약자로 분류하는 것이 법령과 법적 해석에서 어려워진다면 이를 방어·해결하는데 드는 비용은 당사의 사업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라며 플랫폼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시키는 것을 가장 큰 사업적 리스크라고 명시했습니다. 쿠팡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쿠팡을 규제하겠다는 어떤 정치인도 시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훈님, 지금까지 보낸 편지 내용의 대부분은 노동문제였고 마지막 편지도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노동 문제를 모두 모아보면 쿠팡이 나옵니다. 대한민국 노동의 모든 문제를 쌓아놓은 물류창고가 쿠팡입니다. 이 편지만큼은 이재명 정부와 여당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아니라 노동법의 확대 적용만이 쿠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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