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24 13:58최종 업데이트 25.12.2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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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민주항쟁의 결과로 개정된 헌법은 현재 시대적 변화와 국민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민개헌넷은 시민사회가 제안하는 개헌의 방향과 내용을 쟁점별로 소개하고 필요성과 절차를 심도 있게 다룸으로써 국회의 개헌 논의를 촉구하고 시민 주도의 개헌 공론화를 이끌어내고자 합니다.[기자말]
1년 전 시민들은 내란을 막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장에 나왔다. 4개월 간 이어진 광장에는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빈민 등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함께 했다. 평등약속을 읽고 서로의 연대를 확인하는 광장에서 가장 많이 외쳐진 것이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한 세상을 바란다'는 사회대개혁의 요구였다.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舊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온라인 공론장 '천만의 연결'에서도 시민들이 뽑은 사회대개혁 과제 첫 번째가 '차별금지·성평등·인권·소수자 권리'였다. 물론 이들 과제는 현행 헌법하에서도 달성이 가능하긴 하다. 그럼에도 진정한 사회대개혁을 위해서는 헌법의 가치에 평등과 소수자 인권을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개헌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온라인공론장 천만의연결 결과리포트(2025. 5. 15.)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헌법은 실질적 평등을 구현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은 평등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할 때만이 자유롭게 의사를 드러내고 주권자로서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그렇기에 헌법 제11조는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이라는 세 가지 사유만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사유 외의 차별을 헌법이 허용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여러 차례 '사회적 신분'은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 특히 열등하다는 평가를 수반하는 것'이라고 폭넓게 해석한다.

그럼에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각 지자체 인권헌장, 인권조례 제정에서의 진통 과정에서 알 수 있듯 평등을 의도적으로 논란거리로 만드는 이들이 있다. 주로 보수개신교단체로 구성된 이들은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사유에 넣는 것을 반대하거나 이미 만들어진 조례에서도 해당 조항을 빼라고 요구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 개헌 추진 당시에도 각 지역 공청회마다 이들 단체들이 난입해서 평등권 조항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막아서고, 때로는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했다.

이들의 이러한 차별과 혐오선동은 역설적으로 헌법이 더욱 지금의 평등권 조항을 강화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당연한 민주사회의 원칙이 혐오에 가로막히지 않게, 포괄적 차별금지법 하나 17년째 못 만드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차별금지사유를 대폭 확대하여 평등권 조항에 열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2000년 이후에 개헌을 한 국가들은 상세한 차별금지 사유를 담은 헌법을 가지고 있다. 우리라고 왜 못하겠는가. 또한 단지 평등의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평등실현을 위한 조치를 할 의무 역시 헌법에 담겨야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헌법 제9조 제3항 국가는 인종, 성별, 임신, 혼인 상태,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피부색, 성적지향, 연령, 장애, 종교, 양심, 신념, 문화, 언어 및 태생을 포함한 하나 이상의 사유를 근거로 하여 누군가를 직간접적으로 부당하게 차별해서는 안 된다"

2025. 12. 18. 진행된 소수자 인권과 평등권을 위한 개헌 논의 토론회차별금지법제정연대

소수자 인권을 보장하는 헌법이 필요하다

헌법에 사회적 소수자를 언급하는 조항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한 제34조 정도이다. 그나마도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 '신체장애자의 보호'라고 하여 소수자 당사자의 권리 보장이 아닌 시혜와 복지의 관점만을 담고 있다. 38년 전 만들어진 낡은 헌법이 가진 명백한 한계이다. 노인, 청소년,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는 결코 사회 다수의 동정과 시혜를 받는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고 민주사회를 형성하는 동료시민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헌법은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먼저, 아동·청소년이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개헌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 국제인권규범에서 보장하는 '생존의 권리', '보호의 권리', '발달의 권리', '참여의 권리'와 '아동이익 최우선의 원칙', '비차별의 원칙', '아동의사 존중의 원칙'이 헌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또한 미성숙한 존재로 치부받고 권리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학생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교육의 목적을 '인권·민주주의·인격 발달로 재정의'하고, 학생의 인권을 교육권에 포함시켜야 한다.

노인의 권리를 신설하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반, 사회적 안전망이 현격히 부족한 상황에서 노인의 생존과 품위는 빈곤과 차별로 인하여 위협받고 있다. 노인이 자립적인 삶을 영위하고 품위를 지키며 차별받지 아니하고, 사회·문화적 권리를 충분히 향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행 헌법의 신체장애자라는 용어가 아닌 '장애를 가진 사람'의 권리가 헌법에 명시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보장하고 있는 장애인의 권리와 이를 실현해야 할 국가의 구체적인 책무가 헌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신체적·정신적 손상 그 자체가 장벽이 아니라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적·문화적 차별이 장벽임을 분명히 하고, 장애인의 노동권, 교육권, 이동권, 사회에 참여할 권리가 헌법에 담겨야 한다. 또한 신체의 자유를 신체와 정신의 온전성에 대한 권리로 확장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를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헌법 개정 역시 절실하다.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사유로 명시해야 하고,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혼인과 가족생활의 근거가 개인의 존엄과 평등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현행 헌법 제36조 제1항에서 '양성' 문구를 삭제하고, 혼인과 가족을 구성할 권리, 성적자기결정권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도 신설되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것은 사람의 권리여야 한다

지난 2024년 9월 28일 대구 중구 반월당네거리 인근 달구벌대로에서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기독교단체가 퀴어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조정훈

마지막으로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를 '사람'으로 변경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10조부터 제37조까지의 기본권에 관한 헌법 조항은 모두 권리의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미 한국은 다양한 출신국가와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어울러 살아가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고 국민의 권리만을 보장하는 헌법이 있는 한 이주민은 영원한 동등한 시민이 아닌 영원한 타자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존엄과 평등, 행복추구권, 신체를 침해받지 않고, 양심과 종교를 보장받으며, 표현하고 집회를 할 권리, 직업을 갖고 살고 싶은 곳에 거주하며 재산을 가질 권리, 사회보장 등을 통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이러한 권리들이 사람이 아닌 국민만의 것으로 한정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사람으로의 개헌은 이미 2017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안에서도 제시된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제는 국민국가를 넘어 모든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헌법은 38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살아 있는 현재의 규범이 될 수 있다.

[필자 소개]
박한희는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의 공동대표이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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