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모습
연합뉴스
그런 노무현의 양심을 자극해 새로 거듭나게 만든 것이 전두환 정권 초기의 대표적 조작 사건 중 하나인 부림사건이다. "내 운명을 바꾸었던 그 사건을 만나고 나서야 나는 판사로 변호사로 사는 동안 애써 억눌러 왔던 내면의 소리를 진지하게 듣게 되었다"라고 <운명이다>는 말한다. 부산시가 발행한 <부산민주운동사>는 "부림사건은 1981년 9월 부산 지역에서 민주인사를 대대적으로 검거한 사건"이라고 한 뒤 이렇게 기술한다.
"이 사건은 10·16 부마민주항쟁으로 구속된 후 석방된 사람들과 이후 1980년과 1981년 부산대에서 있은 시위 사건의 배후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의 전민노련과 전민학련과 연관지어 대대적인 검거를 단행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전두환정권 초기의 저항세력에 대한 전국적인 일제 검거 사건이었으며 정권 초기의 불안정 요인에 대한 사전정리 작업이었다."
'부산 학림'의 줄임말인 부림(釜林)은 조선시대 사림파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15~16세기에는 개혁적 선비들이 사림(士林)으로 불렸다. 이와 비슷하게 공안기관이 운동권 학생들을 학림으로 부른 시절이 있다. <항도부산> 2020년 제40호에 실린 정승안 동명대 교수의 논문 '198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과 부림사건의 현재적 의미'는 학림과 부림이라는 용어의 출현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전민학련이라는 대학생 단체가 첫 모임을 (서울) 대학로에 있던 학림다방에서 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말로, 경찰이 숲처럼 무성한 학생운동조직을 지칭해서 붙였던 명칭이다. 이 학림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발단이 되어 부림사건이 시작된다."
이 사건으로 끌려간 22명은 부산의 노동자·학생·교사들이다. <운명이다>에는 그중 일부인 "이호철·장상훈·송병곤·김재규·노재열·이상록·고호석·송세경·설동일"이 거명돼 있다.
이들은 양서를 읽고 교양을 늘리자는 취지로 구성된 양서조합의 회원들이다. 이 모임이 반국가단체로 둔갑되고 이들의 독서 토론이 정부전복 음모로 포장됐다. <부산민주운동사>는 이들이 1981년 9월 7일 및 10월 15일과 1982년 4월 및 그 무렵에 순차적으로 구속됐다고 알려준다.
피의자나 피고인은 물론이고 변호인까지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이 공안사건이 '큰 틀에서 보면 그저 그런 변호사'에게 맡겨진 이유가 있다. <운명이다>는 "나는 어쩌다 보니 이 사건에 손대게 되었다"라며 "당시 부산에서 지속적으로 인권운동을 한 변호사는 이흥록·김광일 두 분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이어 "검사가 김광일 변호사까지도 사건에 엮어 넣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김광일 등은) 변호를 맡을 수가 없었다"라고 알려준다.
'작은 틀'에서 보면 양심적이었던 35세의 변호사는 "손이 모자란다는 하소연을 듣고만 있을 수 없어서" 사건을 맡게 됐다. 사건 수임 뒤 그는 피고인 접견을 위해 별생각 없이 구치소를 찾아갔다. 잠시 뒤 그는 "상상치도 못한 엄청난 충격"을 접한다. 그는 그때를 이렇게 떠올렸다.
"얼마나 고문을 받았는지 초췌한 몰골을 한 청년들은 변호사인 내가 정보기관의 끄나풀이 아닌지 의심하는 기색이었다. 그들은 모두 영장 없이 체포되었고, 짧게는 20일, 길게는 두 달 넘게 불법 구금되어 있으면서 몽둥이 찜질과 물고문을 당했다. 그들이 그렇게 학대받는 동안 가족들은 딸아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발톱이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운명이다>는 "이들이 실제로 한 일은 사회과학 책을 읽는 독서모임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정부를 비판한 것이 전부였다"라고 알려준다. 또 "개업식 축하모임, 돌잔치, 송년회를 한 것이 범죄사실로 둔갑했고, 계엄법과 국가보안법, 집시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었다"라고 기술한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반국가단체를 만들어 정부전복을 획책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려니 불법 수사와 가혹행위가 동원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몸이 시퍼렇고 발톱이 새까만 피고인의 변호인 접견을 허용한 사실은 그런 불법을 당연시했던 당시 공안기관들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을 맞닥트린 노무현은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졌다"라며 "사실과 법리를 따지기도 전에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라고 그때의 가슴 떨림을 기억했다. 이는 그가 운동권 학생들이 탐독하는 서적을 고시 공부하듯 파고드는 계기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인 <문재인의 운명>은 "노 변호사는 변론을 위해 수십 권의 서적을 깡그리 독파했다"라고 말한다.
33년 만에 밝혀진 진실

▲2014년 9월 25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웃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진걸, 고호석, 설동일, 최준영씨.
정민규
이 사건에서는 수사 과정뿐 아니라 재판 과정도 부정으로 얼룩졌다. 피고인들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 변호인을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 <운명이다>에 따르면, 노무현이 법정에서 공안기관의 불법행위를 폭로해 방청석을 울음바다로 만들자, 다음날 검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검사는 "부산에서 변호사 한두 명 죽였다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 될 줄 아시오?"라며 노골적인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방청석이 울음바다가 됐을 때 표정이 일그러진 것은 검사 한 사람이 아니었다. "검사뿐만 아니라 판사도 표정이 일그러졌다"라고 노무현은 그 순간을 기억했다. 재판장도 검사와 한편이었다. 재판장은 자기 방에서 노무현에게 "그놈들 말하는 거 좀 보시오"라며 "완전히 빨갱이들 아닙디까?"라며 본색을 드러냈다.
피고인을 '그놈', '빨갱이'로 부르는 재판장이 사건을 공정하게 판단할 수는 없었다. "재판장은 피고인 전원에게 징역 3년, 5년, 7년씩 마구잡이 유죄선고를 내렸다"라고 <운명이다>는 말한다. 상급 법원 법관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982년 10월 27일자 <동아일보> 11면은 이날 대법원이 상고기각결정을 내렸다면서 징역 1년 6월에서 6년 사이에서 형량이 확정됐다고 보도했다.
독서모임을 중대 공안사건으로 비화시킨 부림사건의 진실은 '이것이 조작 사건'이라는 점이다. 이 진실은 사건 당시부터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사법적으로 확인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변호인 노무현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대한민국 국가는 그 진실을 받아들였다. 노무현 서거 5년 뒤인 2014년 9월 25일의 일이다.
재심을 담당한 대법원은 검찰이 제시한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로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범죄가 될 수 없는 것을 범죄로 꾸미고, 범죄를 입증할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부산 시민들을 "그놈들", "빨갱이"로 몰았던 전두환 정권과 공안당국의 악행은 사건 조작 33년 뒤에야 대한민국 국가에 의해 공식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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