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28 19:23최종 업데이트 25.12.28 19:23
  • 본문듣기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에게 변호사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라며 "오히려 해로운 존재였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29세 때인 1975년에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2년 뒤 판사가 됐다가 1978년에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훗날 이 책을 통해 자기 자신도 그런 변호사였다고 고백했다.

자서전에서 그는 "큰 틀에서 보면 나는 적당히 돈을 밝히고 인생을 즐기는 그저 그런 변호사였다"라고 털어놨다. 1979년에 마산과 부산에서 박정희 정권에 맞서는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감옥에 끌려가고 시위 부상자들이 병원 응급실 입구에서 거부를 당할 때도 "나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다",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그런데 그는 "나는 그저 그런 변호사였다"라고 하지 않고, "큰 틀에서 보면" 그저 그런 변호사였다며 여지를 남겼다. 그는 "갈대처럼 살라"는 어머니의 조언들이 어려서부터 "지독히도 싫었다"라며, 변호사 개업 초기에도 마음속으로는 법조계 부조리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시절의 그는 '작은 틀에서 보면' 양심적인 변호사였다.

부림사건 변호인이 된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모습연합뉴스

그런 노무현의 양심을 자극해 새로 거듭나게 만든 것이 전두환 정권 초기의 대표적 조작 사건 중 하나인 부림사건이다. "내 운명을 바꾸었던 그 사건을 만나고 나서야 나는 판사로 변호사로 사는 동안 애써 억눌러 왔던 내면의 소리를 진지하게 듣게 되었다"라고 <운명이다>는 말한다. 부산시가 발행한 <부산민주운동사>는 "부림사건은 1981년 9월 부산 지역에서 민주인사를 대대적으로 검거한 사건"이라고 한 뒤 이렇게 기술한다.

"이 사건은 10·16 부마민주항쟁으로 구속된 후 석방된 사람들과 이후 1980년과 1981년 부산대에서 있은 시위 사건의 배후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의 전민노련과 전민학련과 연관지어 대대적인 검거를 단행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전두환정권 초기의 저항세력에 대한 전국적인 일제 검거 사건이었으며 정권 초기의 불안정 요인에 대한 사전정리 작업이었다."

'부산 학림'의 줄임말인 부림(釜林)은 조선시대 사림파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15~16세기에는 개혁적 선비들이 사림(士林)으로 불렸다. 이와 비슷하게 공안기관이 운동권 학생들을 학림으로 부른 시절이 있다. <항도부산> 2020년 제40호에 실린 정승안 동명대 교수의 논문 '198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과 부림사건의 현재적 의미'는 학림과 부림이라는 용어의 출현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전민학련이라는 대학생 단체가 첫 모임을 (서울) 대학로에 있던 학림다방에서 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말로, 경찰이 숲처럼 무성한 학생운동조직을 지칭해서 붙였던 명칭이다. 이 학림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발단이 되어 부림사건이 시작된다."

이 사건으로 끌려간 22명은 부산의 노동자·학생·교사들이다. <운명이다>에는 그중 일부인 "이호철·장상훈·송병곤·김재규·노재열·이상록·고호석·송세경·설동일"이 거명돼 있다.

이들은 양서를 읽고 교양을 늘리자는 취지로 구성된 양서조합의 회원들이다. 이 모임이 반국가단체로 둔갑되고 이들의 독서 토론이 정부전복 음모로 포장됐다. <부산민주운동사>는 이들이 1981년 9월 7일 및 10월 15일과 1982년 4월 및 그 무렵에 순차적으로 구속됐다고 알려준다.

피의자나 피고인은 물론이고 변호인까지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이 공안사건이 '큰 틀에서 보면 그저 그런 변호사'에게 맡겨진 이유가 있다. <운명이다>는 "나는 어쩌다 보니 이 사건에 손대게 되었다"라며 "당시 부산에서 지속적으로 인권운동을 한 변호사는 이흥록·김광일 두 분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이어 "검사가 김광일 변호사까지도 사건에 엮어 넣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김광일 등은) 변호를 맡을 수가 없었다"라고 알려준다.

'작은 틀'에서 보면 양심적이었던 35세의 변호사는 "손이 모자란다는 하소연을 듣고만 있을 수 없어서" 사건을 맡게 됐다. 사건 수임 뒤 그는 피고인 접견을 위해 별생각 없이 구치소를 찾아갔다. 잠시 뒤 그는 "상상치도 못한 엄청난 충격"을 접한다. 그는 그때를 이렇게 떠올렸다.

"얼마나 고문을 받았는지 초췌한 몰골을 한 청년들은 변호사인 내가 정보기관의 끄나풀이 아닌지 의심하는 기색이었다. 그들은 모두 영장 없이 체포되었고, 짧게는 20일, 길게는 두 달 넘게 불법 구금되어 있으면서 몽둥이 찜질과 물고문을 당했다. 그들이 그렇게 학대받는 동안 가족들은 딸아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발톱이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운명이다>는 "이들이 실제로 한 일은 사회과학 책을 읽는 독서모임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정부를 비판한 것이 전부였다"라고 알려준다. 또 "개업식 축하모임, 돌잔치, 송년회를 한 것이 범죄사실로 둔갑했고, 계엄법과 국가보안법, 집시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었다"라고 기술한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반국가단체를 만들어 정부전복을 획책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려니 불법 수사와 가혹행위가 동원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몸이 시퍼렇고 발톱이 새까만 피고인의 변호인 접견을 허용한 사실은 그런 불법을 당연시했던 당시 공안기관들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을 맞닥트린 노무현은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졌다"라며 "사실과 법리를 따지기도 전에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라고 그때의 가슴 떨림을 기억했다. 이는 그가 운동권 학생들이 탐독하는 서적을 고시 공부하듯 파고드는 계기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인 <문재인의 운명>은 "노 변호사는 변론을 위해 수십 권의 서적을 깡그리 독파했다"라고 말한다.

33년 만에 밝혀진 진실

2014년 9월 25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웃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진걸, 고호석, 설동일, 최준영씨.정민규

이 사건에서는 수사 과정뿐 아니라 재판 과정도 부정으로 얼룩졌다. 피고인들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 변호인을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 <운명이다>에 따르면, 노무현이 법정에서 공안기관의 불법행위를 폭로해 방청석을 울음바다로 만들자, 다음날 검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검사는 "부산에서 변호사 한두 명 죽였다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 될 줄 아시오?"라며 노골적인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방청석이 울음바다가 됐을 때 표정이 일그러진 것은 검사 한 사람이 아니었다. "검사뿐만 아니라 판사도 표정이 일그러졌다"라고 노무현은 그 순간을 기억했다. 재판장도 검사와 한편이었다. 재판장은 자기 방에서 노무현에게 "그놈들 말하는 거 좀 보시오"라며 "완전히 빨갱이들 아닙디까?"라며 본색을 드러냈다.

피고인을 '그놈', '빨갱이'로 부르는 재판장이 사건을 공정하게 판단할 수는 없었다. "재판장은 피고인 전원에게 징역 3년, 5년, 7년씩 마구잡이 유죄선고를 내렸다"라고 <운명이다>는 말한다. 상급 법원 법관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982년 10월 27일자 <동아일보> 11면은 이날 대법원이 상고기각결정을 내렸다면서 징역 1년 6월에서 6년 사이에서 형량이 확정됐다고 보도했다.

독서모임을 중대 공안사건으로 비화시킨 부림사건의 진실은 '이것이 조작 사건'이라는 점이다. 이 진실은 사건 당시부터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사법적으로 확인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변호인 노무현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대한민국 국가는 그 진실을 받아들였다. 노무현 서거 5년 뒤인 2014년 9월 25일의 일이다.

재심을 담당한 대법원은 검찰이 제시한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로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범죄가 될 수 없는 것을 범죄로 꾸미고, 범죄를 입증할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부산 시민들을 "그놈들", "빨갱이"로 몰았던 전두환 정권과 공안당국의 악행은 사건 조작 33년 뒤에야 대한민국 국가에 의해 공식 확인됐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