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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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재일한국인(재일조선인)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를 보면서도 비슷한 질문이 떠올랐다. <국보>가 보여주는 예술의 경지, 영혼과 몸의 공력이 들어간 예술의 경지에 몸이 없는 AI는 이를 수 있을까? 설령 AI가 휴머노이드 로봇에 장착된다고 하더라도 그게 가능할까?
<국보>는 일본에서 22년 만에 실사영화로서 1천만 관객을 넘는 흥행을 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일본의 전통 예술인 가부키(歌舞伎)를 소재로 삼는다. 이런 소재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게 뜻밖이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가부키의 역사와 온나가타(女形)를 소개한다. 온나카다는 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 남성 배우를 가리킨다. 1620년대 풍기 문란을 우려해 여성 배우의 출연이 금지되면서 남성 배우가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다.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난 키쿠오(요시자와 료)는 어떤 일로 부모를 잃는다.
우연히 그의 재능을 알아본 가부키 명문가의 한지로(와타나베 겐)는 키쿠오를 수습생으로 받아들인다. 키쿠오는 한지로의 아들인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와 우정을 나누며 배우로 성장한다. 두 젊은이가 보여주는 혈통(슌스케)과 재능(키쿠오)의 갈등은 많은 문학과 영화의 소재였기에 그것이 특별하지는 않다. 영화는 가부키의 주요 공연을 섬세한 촬영으로 화려하게 보여주는 재미를 주지만, 더 중요한 건 키쿠오와 슌스케가 10대부터 수십 년에 걸쳐 이뤄 가는 인연의 전개, 몸의 예술인 가부키의 대가가 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다시 말해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소설의 하위 장르(sub-genre) 중에 예술가 소설(Künstlerroman, the novel of artist)이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등이 그런 작품이다. 이 소설들은 젊은 예술가의 모습을 그린다. 당연히 예술가가 되려는 청년이 느끼는 예술과 삶의 관계, 예술가가 되고 싶은 청년의 욕망과 그것을 가로막는 힘들(사회 제도, 이데올로기, 종교, 정치적 억압 등) 사이에 생기는 충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고독감 등을 다룬다.
<국보>에도 비슷한 주제가 나온다. 하지만 영화가 다루는 시대가 훨씬 길다. 가부키 전수를 하는 두 젊은이의 삶을 10대(1960년대)부터 60대(2010년대)까지 다룬다. 50여 년에 걸친 시대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키쿠오와 슌스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의 상처를 몸과 영혼에 새기고 다시 가부키의 세계로 돌아온다.
진정한 예술의 힘

▲영화 <국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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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나는 AI가 인간의 사유와 글쓰기를 급격히 잠식해 가는 현실에서 인간이 쓰는 글의 고유성은 기계(AI)가 갖지 못한 몸으로 쓰는 글의 힘에서 나올 거라고 썼다. 나는 그걸 몸으로 쓰는 글만이 지닌 정념이라고 표현하겠다. 몸이 없는 AI가 멋지게 조립한 글이 그런 정념을 가질 수 있을까? 글의 예술인 문학이 아니라 가부키같이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은 더욱 그럴 것이다. 영화에서는 마음과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몸의 움직임을 질타하는 스승들의 모습이 나온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네 춤에서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해도, 기예를 닦아도, 감정이 담기지 않은 춤, 영혼이 담기지 않은 글은 표가 난다는 뜻이다.
<국보>에서 키쿠오는 악마와 거래해서라도 최고의 가부키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숨겨 놓은 아내, 딸도 버린다. 그렇게 해서 최고의 배우, '인간 국보'(일본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된다.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최고의 예술이 삶을 대체할 수 있는가? 영화에서는 자신을 버린 주인공을 질타하는 딸이 하는 말이 나온다. 삶과 예술의 선택지에서 예술을 선택한 아버지에 대한 비난이다. "당신을 아버지로 생각한 적 없지만, 당신의 가부키를 보면서 다른 삶으로 끌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에는 박수를 쳤다." 이게 예술의 힘이다. 때로 예술은 삶을 초월하거나 삶에서 도망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삶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냥 돌아오는 게 아니라 몸과 영혼에 새긴 삶의 가르침이 관건이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인상적이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예술은 삶의 모방이 아니다. 현실의 삶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현실의 삶이 아무리 추하고 끔찍하고, 지금 우리가 목도하듯이 인간 말종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도, 예술은 현실에서 사라진, 현실에서 감춰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가 예술을 찾는 이유다. 그리고 그런 예술의 힘은 인간의 몸과 그 몸에 배어 있는 수많은 정념을 버릴 수 없는 한, 다시 김수영이 말한 온몸으로 쓰는 글쓰기, 온몸으로 행위를 하는 예술에서 나올 것이다. <국보>가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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