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이 며칠 남지 않은 광화문 거리풍경
여운규
올해를 마무리하며 <집밥 혼밥>의 연재도 일단 마치기로 했다. 1년을 계획한 일이었고 딱 그만큼을 채웠으니 후회는 없다. 그동안 시민기자라는 과분한 이름 아래 뉴스 기사와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람도 있었고 배운 점도 많았다.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고, 음식 만드는 일에도 관심은 있었지만 결코 동네방네 자랑할 만한 수준은 못 된다. 그저 주방과의 거리가 좀 있어 보이는 중년 남성이 서툴게나마 끼니가 될 만한 음식을 별 도움 받지 않고 만들어내는 모습이 나쁘지 않다는 정도였을까. 가족이 먹을 음식을 직접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척 보람 있는 일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고, 가족과 함께하는 기쁨을 조금 더 나누고 싶은 생각에서 시작한 글쓰기였다.
그러면서 새삼 느낀 것은 매일의 끼니를 묵묵히 책임지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 주부들, 그리고 그것을 업으로 삼는 많은 분들에 대한 감사였다. 그간의 일상이 얼마나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 위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내가 음식을 만들어 보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이었다.
내년이면 직장 생활 30주년이 된다. 이 땅의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중에서도 점심시간의 바뀐 풍속도가 내게는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변화였다.
점심을 먹는 일이 업무의 연속이던 때가 있었다. 밥 먹으러 갈 때도 부서 단위로 움직였고, 메뉴 결정은 윗분들이 했으며, 신입들은 식당 자리를 잡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렇게 둘러앉은 테이블에서도 위계는 작동했고, 놀라운 속도로 뜨거운 국물을 마셔대는 상사들 틈바구니에서 막내 여직원은 밥을 반도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내려놓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과 적응할 수 없는 스피드에 곤란을 겪던 신참들도 몇 년 뒤면 10분만에 국밥을 훌훌 퍼먹고는 또 커피 한잔 마시러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던 점심시간이 지금은 혼밥 기본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코로나가 결정타였다. 집단은 해체되고 개인을 돌아보는 쪽으로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변화를 겪었다. 그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건,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뜻과 비슷했다. 처음에 혼밥 논쟁이 불거졌을 때, 혼밥족을 뭔가 모자라는 사람 취급하는 글도 읽은 적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논쟁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예전에도 가끔 혼밥을 즐기던 나였지만, 갑자기 일상이 되자 살짝 당황스럽긴 했다. 개별적인 점심 약속을 잡는 것도 하루이틀이었고, 결국은 고로 상처럼 오늘은 무엇을 먹나 하면서 홀로 사무실 근처를 헤매다니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이게 또 익숙해지니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고독한 미식가>에서 말하듯 직장인의 점심이란, "시간이나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잠깐 동안 자유를 느끼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결국 혼자 밥 먹는 시간은 나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먹고 싶은 것을 내 스스로에게 대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은 복잡해지고 노년은 갈수록 불안해지는데, 이럴 때일수록 내 자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내가 바로 서야 다른 사람도 배려할 수 있는 거니까. 혼술도 마찬가지다. 혼밥에 익숙해지면서 혼자 가볍게 한 두 잔의 술을 기울이는 일에도 나름의 멋과 운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건축 디자이너이자 홀로 마시는 술 한 잔의 가치를 누구보다 아름답게 표현하는 '차다'님의 글 한 자락을 소개하면서 이 시리즈를 마치고자 한다.
"홀로 있음에 익숙해지고 만족할 수 있을 때에 타인과의 관계 또한 굳건히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다.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자유이기도 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