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22 06:44최종 업데이트 25.12.2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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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번역기 기능의 발달 때문인지, 요즘은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서 말이 통하지 않는 것에 크게 걱정하진 않는 모양새다. 아예 살러 가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예전에는 외국으로 휴가를 간다고 하면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불편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한국에서라고 말이 잘 통했냐"는 농담을 하곤 했다.

아예 뼈가 없는 말은 아니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건 소통의 필요조건일 순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대화는 의사의 교환인데 수신이 제대로 안 돼서 동문서답을 하는 사람, 무슨 말을 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일방적으로 대화를 끌고 가는 사람이 태반이다. 점점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집에 누워서 드라마를 보는 이유다.

사실 원활한 소통을 위한 원칙은 간단하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 이해하고 맥락에 적합한 답을 하면 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결론부터 두괄식으로 간결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이것만 잘 지켜도 대화가 경로를 이탈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일상에서 사소한 잡담을 나누는 순간까지 이걸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자리, 가령 업무상 참석한 회의 자리 등에서는 이 원칙들을 기억하는 게 낫다. 이런 자리에서는 소통을 어떻게 하느냐가 곧바로 일을 잘하거나 못하는 문제와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업무상 대화가 늘어지는 건 업무 시간이 길어진다는 뜻도 된다.

어쩌면 생각보다 단순할지 모르는 이재명 대통령의 질타 이유

지난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KTV 캡처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사건이 얼마 전 발생했다. 사실 발생했을 때는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지,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할 사건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12일 사상 최초의 생중계 정부 부처 업무 보고를 받던 이재명 대통령은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질책했다. 이 사장이 이 대통령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눈에 띄는 호된 질책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분석을 이어갔다. 가장 많이 보였던 추측은 이재명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공사 사장이자 내년 지방 선거에서 인천시장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이학재 사장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장은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에서 국회의원 3선을 한 경력도 있다.

하지만 업무 보고 과정에서 답변이 시원치 않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출신이 여야인지를 따지지 않고 호된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는 그리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사안의 배경에 이 대통령의 다른 의도나 복잡한 의중이 깔린 것 같지도 않다. 내 생각에 이재명 대통령이 강한 질책을 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보고를 받고 질의응답을 하는 과정에서 이학재 사장과의 소통이 매우 원활하지 못했는데, 이건 전적으로 이 사장이 대답을 잘 못했기 때문이다.

이학재 사장의 응답이 잘못된 이유

왜 그런가. 당시 상황을 다시 돌아보자. 이학재 사장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질문은 아주 명료했다. 1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해외로 가져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외화 뭉치를 책갈피에 끼워서 나가면 공항 보안 검색에서 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이것이 사실인가? 보통 사람이 이 정도로 명료한 질문을 할 때는 같은 수준의 명료한 답을 기대한다. 즉, 사실인지 아닌지를 답하면 된다. '외화 뭉치를 아무리 책갈피에 끼워도 보안검색에서 모두 적발이 가능하다,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답을 하면 된다. 만약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냥 모른다고 말하거나 답을 할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된다.

왜 이렇게 답을 해야 할까. 그래야만 이야기가 그다음으로 넘어가고 결론을 내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들은 주장이 사실이 아니고, 외화 뭉치를 보안 검색으로 잡아내는 게 가능하다면, 관련하여 현황에 대해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하거나 연계된 다른 주제로 이동할 것이다. 잘 안 된다면 왜 안 되는지 이유를 파악하고 대안을 함께 고민하면 된다.

만약 이학재 사장이 관련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한마디 따끔하게 듣고 다음에 다시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이 사장은 어떻게 했는가. 처음에는 인천공항에서 주로 유해물질을 검색한다고 답하며 업무 소관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럼 외화반출은 단속을 안 하냐고 이 대통령이 재차질문하자 그건 아니고 적발한 사례가 있다고 답했다. 이어서 이재명 대통령이 다시금 명확하게 검색 가능 여부를 질문했지만 이학재 사장은 앞서 한 이야기를 반복하며 중언부언했다.

직장인으로서 공감이 되는 대통령의 짜증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결국 김민석 국무총리까지 나서 같은 질문을 재차 반복하자 이학재 사장은 "실무적인 거라서 정확하게 모른다"고 답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답을 했으면 대화는 순식간에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보고를 받아야 할 업무부처가 줄줄이 기다리는 가운데 이 사장의 답변은 대화를 쓸데없이 늘려 놓은 셈이 됐다.

물론 이학재 사장이 억울할 순 있다. 아마 이 사장은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외화 밀반출 감독은 관세청 책임이고 공항공사는 양해각서를 맺어서 검색하고 적발하여 세관에 넘기는 식으로 협업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 자신은 이 부분을 세세하게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별로 납득이 되는 설명은 아니다.

그와 별개로 정말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면 현장에서 가장 마지막에 했던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해야 했다. 자신은 모른다는 것 말이다. 그걸 말한 다음에 자신이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야만 그 사람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납득이 간다. 하지만 이학재 사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중언부언했다. 이재명 대통령 입장에선 "도대체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안 하고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이학재 사장에 대한 질책에 여러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다시 반복하건대 이건 무엇보다 이 사장의 소통능력, 잘못된 대답이 가져온 참사로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이 사건의 의미는 하나다. 일할 때 업무보고 당시의 이학재 사장처럼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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