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조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11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 질의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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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이달 16일 출범시킨 한미공조회의(대북정책 정례협의,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 후속협의)는 문재인 집권기의 한미워킹그룹의 재판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남북관계를 제약해 한반도 긴장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파생시켰다.
이 때문에 통일부가 공조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주한외교단 등을 상대로 별도의 대북정책 설명회를 가짐에 따라, 노무현 정부 때의 '자주파 대 사대파' 대결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데 자주파·사대파라는 표현은 널리 정착되긴 했지만, 당시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주파에 끌린 노무현 대통령, 하지만...
자주파로 불린 사람들이 기존보다 나은 방향을 지향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대미자주 노선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이 그룹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중시했다. 이들은 결코 한미동맹을 전복하려 하지 않았다. 이들도 그 동맹의 틀 안에서 움직였다.
자주파라는 용어를 썼으면 그 반대편에 사대파를 놓는 게 이치에 맞다. 고려시대 자주파의 대표주자인 묘청의 정적은 김부식이다. 김부식을 사대파라고 부르지 동맹파로 부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노무현 집권기를 지칭할 때는 사대파 대신 동맹파라는 단어가 쓰인다.
자주파라는 표현은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쪽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는 측면이 있는 반면, 동맹파라는 표현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쪽에 대한 폄하 가능성을 예방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용어들이 노무현 정부를 비토하는 쪽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은 정부 출범 1주년을 앞둔 2004년 1월 16일의 국정홍보처 보도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이는 두 용어에 대한 노무현 측의 불편한 시각을 보여준다. 보도자료는 "자주파 대 동맹파의 이분법으로 몰아가는 건 잘못"이라며 "참여정부는 한미동맹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협력적·균형적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노무현 정부가 기용한 그룹이 자주파다. 자주파와 동맹파는 의견 차이가 있었을 뿐, 크게 보면 한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중에서도 자주파에 심정적으로 끌렸다고 할 수 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의 인터뷰를 담은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는 노무현이 이라크 파병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비전투병력 파견으로 충족시킨 일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과정에서 참모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했다"라며 다음과 같은 노무현의 발언을 들려준다.
"나는 그 이종석 차장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지요. 나 혼자였으면 그렇게 감당할 수 없었던 일인데, 신중하고 충성심이 있는 참모가 정말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2006년 2월에 통일부 장관을 맡은 이종석은 자주파·동맹파 용어가 회자되기 시작한 2003년 하반기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었다. 자주파의 핵심으로 꼽히는 그에 대한 노무현의 평가에서도 느껴지듯이, 노무현과 이 그룹 사이에는 호의적인 기류가 존재했다.
반면, 동맹파와는 그렇지 않았다. 이 점은 2003년 말에 외교통상부 북미국 직원들의 사석 발언에서도 나타난다. 김도현 북미국 서기관의 투서와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의 진상조사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미국 내의 일부 동맹파들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폄하를 서슴지 않았다. 당시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사석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의 '김정일 호감세력이 대통령 지지세력'이라는 발언이 맞는 게 아니냐?"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이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통령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 그러면 대통령은 과학기술부와 해양수산부나 관리하면 될 것이다."
"NSC의 젊은 보좌진은 탈레반 수준이다."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8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냈다. 노무현은 해양수산부에 더해 과학기술부 정도만 관리하고 외교관계나 대북관계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폄하 발언이 나온 것은 그 때문이다.
노무현과 심정적으로 가까웠던 자주파는 대외정책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서 노무현은 이라크 파병 문제과 관련된 자주파의 공로를 이렇게 회고했다.
"보수진영에서는 적어도 1만 명 이상을 전투병으로, 전투부대로 보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안에서도 생각이 두 쪽으로 쫙 갈라져 있었죠. 안보팀에서는 1만 명 이상 보내자는 거고, 다른 쪽에서는 안 된다고 했고 ······. 결국 전투병인데 비전투 임무로 3천 명을 보내게 된 것이지요."
그렇지만 노무현의 대외정책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친 쪽은 그를 폄하하는 동맹파였다. 비전투 임무의 파병으로 결정되긴 했지만, 결국에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파병이 단행됐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명분 없는 전쟁에 동참한 일로 인해 노무현 지지층에서는 균열이 일어났다. 위 책에도 언급됐듯이,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 "노무현 찍은 내 손가락을 자르겠다" 같은 비판이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노무현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줬다. 작게 보면 자주파의 승리이지만, 크게 보면 동맹파의 승리였다.
기울어진 운동장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 시내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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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파는 대통령과의 심리적 관계 여하에 관계없이 상당한 자율성을 누렸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동북아기동군으로 확대하는 전략적 유연성 협상 때는 대통령 재가도 없이 미국에 덜컥 선물을 해준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06년 8월호 월간 <말>에 실린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립은 실재했나'라는 기사는 "전략적 유연성 협상 과정에서 북미국 쪽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미국 측에 양해각서를 전달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고 한 뒤 이렇게 설명했다.
"2003년 10월, 당시 위성락 북미국장은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겠다는 내용의 교환각서 초안을 대통령이나 NSC에 보고하지 않은 채 미국 쪽에 전달했고, NSC는 2004년 3월에서야 이 사실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같은 보도에 대해 2006년 10월 당시 위성락 주미대사관 정무공사는 "누명을 쓴 거다"라고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반론했다.)
동맹파의 파워가 훨씬 강했다는 점은 용산기지 이전협상 때도 나타났다. 2003년에 진행된 이 협상의 쟁점은 협상을 국회 비준으로 마무리할 것인가 아니면 국회 비준이 필요 없는 소파(SOFA) 문서로 처리할 것인가, 용산기지 환경오염 처리비용을 미국이 부담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이 부담할 것인가였다.
결국, 포괄협정에 대해서만 국회 비준을 받고 세부적인 이행협정은 소파 문서로 처리하며, 인간 건강에 대한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협을 초래하는 중대 오염이 입증될 때 미국이 처리비용을 부담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이전협상의 구체적 내용에 관해서는 국회 비준을 받을 필요가 없고, 오염 비용을 실질적으로 한국이 부담하는 쪽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위 월간 <말>은 "오래도록 질질 끌어온 용산기지 이전협상은 2003년 무렵 실무라인에서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는데, 미국과의 협상을 주도했던 외교부 북미국 라인에서는 이를 소파 문서로 처리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기지 이전과 관련해 미국의 희망사항이 거의 그대로 실현되는데도 동맹파가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노무현 집권기에 자주파가 거둔 성과는 작고 동맹파가 거둔 실적은 크다. 운동장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결과다. 진정한 의미의 대결이 벌어지기 힘든 당시 상황을 반영한다.
그래서 자주파와 동맹파를 대등하게 놓고 노무현 집권기를 해석하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한미동맹 지상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의 문제점이 가려질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관계를 놓고 고민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구체적 실천으로 나아가 한미동맹의 틀에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노무현 정부가 대미자주냐 대미사대냐를 놓고 공식적으로 정책적 고민을 한 일도 없다. 실제로 발생한 것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중시하는 그룹이 한미동맹 지상주의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거는 일이었다. 자주파 대 동맹파의 관점에 매몰되면 그 시기에 양쪽의 대결이 팽팽했던 것 같은 착오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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