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이오와주 데모인 박람회장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집회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조심스럽게 변해 온 기록을 불편해하는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과, 흐름 자체를 멈추려는 것은 다르다. 강이 너무 빨리 흐르면 둑을 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강물의 흐름 자체를 막으려 하면, 강은 썩는다.
이번 결정은 변화의 속도를 늦춘 것이 아니다.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조용히 지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원래 이랬다"는 기준을 세웠다. 이것이 정말 중립일까. 아니면 특정 시점을 정상 상태로 고정하려는 선택일까.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이런 선택이 흔히 '중립'이나 '중도'라는 말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민감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불편한 문제는 다음으로 미루는 태도는 언제나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반복될수록,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특정 시점에 묶인다.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흐름 자체가 지연되는 것이다.
이런 지연은 우연이 아니다. 큰 소리로 과거를 외치지 않아도, 변화를 말하지 않겠다는 선택만으로도 시간은 뒤로 끌려간다. 그래서 극단은 언제나 앞에서 달려오지 않는다. 중립처럼 보이는 리듬을 타고, 조용히 사회의 속도를 바꾼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바로 그 리듬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방식의 특징은 소리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로 돌아가자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상식, 전통, 중립 같은 말이 앞에 선다. 그러면 시간 속에서 어렵게 바뀌어 온 변화는 배경으로 밀리고, 사람들은 지금의 질서를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 '중립'이나 '중도'라는 표방은 단순한 거리두기가 아니라, 판단을 미루는 태도로 작동한다. 그 결과 무엇을 고칠지에 대한 싸움에서 손을 놓은 자리가 생기고, 그 자리는 곧 변화를 멈추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미 바뀐 것까지 되돌리려는 수구적 흐름이 차지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불편한 기억을 안고 가는 체제다. 완벽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고쳐가며 유지된다. 그 과정을 기억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통합을 위한 배려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시간을 멈춘 상태일 뿐이다. 흐름을 멈추면 갈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형태로 쌓인다.
건국 250주년은 과거를 미화하는 자리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걸어왔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어야 할 것이다. 조심스럽게 변해 온 기록을 남기는 일은 위험한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그 기록을 지우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급격한 선택이 된다. 역사는 언제나, 흐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에서 가장 크게 흔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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