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24 06:43최종 업데이트 25.12.24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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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제안위원회'는 생활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와 정책 아이디어를 직접 제안하는 참여형 의제 제안 프로젝트입니다. 시민과 정부를 연결하는 가교로서 다양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해 국민주권정부의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합니다.[편집자말]
설계수명이 다해 영구 정지된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오른쪽)와 재가동을 위해 계속운전 절차를 밟고 있는 고리2호기의 모습.김보성

내가 사는 동네의 공기, 매달 받는 전기요금 고지서, 아이들의 미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에너지 정책의 결과로 매일 체감된다. 폭염·집중호우·가뭄·산불·미세먼지가 반복되는 지금,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위험'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기후 이상'이 아니라 새로운 기후 체제(New Climate Regime) 속에 들어섰고, 이 변화는 자연현상을 넘어 정치·경제·산업 전략과 사회정의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전환은 선언이 아니라 '작동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2050 탄소중립과 2030·2035 감축 목표를 아무리 강조해도, 전력·산업·수요관리·지역정의가 하나의 실행 로드맵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목표는 공허해진다.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국민주권'은 에너지정책에서도 실체를 가져야 한다. 국민의 건강과 지역균형, 경제안보, 세대 간 책임이 걸린 에너지정책을 여전히 전문가·산업계의 프레임 속에서 결정한다면 신뢰는 무너지고 갈등은 커질 뿐이다.

한국 전력 시스템은 석탄과 원자력 발전 중심의 중앙집권형 구조 위에 설계됐다. 과거에는 단가와 공급 안정성이 장점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다. 에너지의 혜택과 피해가 지역 간 불균형하게 배분되고, 발전 과정의 위험과 폐기물은 미래세대에 전가된다. 무엇보다 대규모 기반시설 중심의 시스템은 경직되어 기술·시장·산업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제 에너지정책은 단순히 "전기를 더 생산하자"가 아니라, 어떤 에너지 체제로 전환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위험과 비용을 떠안는지까지 묻는 민주주의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노후 원전 연장의 중단, 그리고 재생에너지의 필요성

그런 점에서 '원전 신화'는 이미 무너졌다. 원자력 발전은 오랫동안 '깨끗하고 안전하며 경제적'이라는 이미지로 유지돼 왔지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원전이 결코 통제 가능한 위험만을 가진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한국에서도 노후 원전 수명 연장 논의 과정에서 사업자 편의와 규제기관의 안일함, 전문성 집단에 대한 불신이 누적되며 사회적 신뢰가 크게 훼손되었다. 특히 40년 가까이 운영된 노후 원전의 연장은 "잘 관리하면 된다"는 말로 정당화될 수 없다. 배관·전선·부품의 노후화는 특정 설비 하나를 교체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사고는 늘 예상 밖의 지점에서 발생한다.

더구나 시대가 변하며 과거에는 고려되지 않았던 위험이 새롭게 등장했다. 원전 주변 지역의 도시화로 상주인구는 늘었고, 기후변화로 해수 온도와 설계 기준의 전제가 흔들린다. 최근에는 수중 생물 유입 등으로 가동 중단이 발생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나아가 드론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충돌 위험, 군사적 위협처럼 설계 당시 상정하지 않았던 위험까지 현실이 되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고리2호기 사고관리계획서 승인을 두고 탈핵부산시민연대가 지난 10월 27일 부산시청 광장을 찾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김보성

이런 변화된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노후 원전 연장을 추진하는 것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국민 안전을 후순위로 미루는 행정의 문제다. 이재명 정부가 정말로 '국민주권'을 말한다면, 노후 원전 수명 연장 절차의 전면 재검토와 중단, 신규 원전 추진의 백지화, 원전 안전성과 경제성,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비용의 투명한 공개, 그리고 책임 소재의 명확화가 최소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탈석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 전략이어야 한다. 석탄 발전은 기후위기와 미세먼지, 건강 피해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이며,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 주민에게 피해가 집중된다. 그렇다면 정책의 핵심은 단순히 석탄 발전을 줄이는 선언이 아니라, 2030년까지 정의로운 탈석탄 계획을 구체적인 로드맵으로 확정하는 데 있다. 여기서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자와 지역경제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안전망, 직무 전환 교육, 지역기금과 같은 실질적 장치를 포함해야 한다. 탈석탄은 환경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이자 복지정책이며, 무엇보다 지역정의의 문제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두고 "전력 불안정, 비용 상승, 환경 훼손"을 말하는 주장들이 반복되지만, 전 세계 전환 사례는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기술 발전과 규모 확대로 태양광과 풍력, 저장장치 비용은 빠르게 낮아졌고, 분산형 전력망은 오히려 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을 높인다. 또한 지역 기반의 에너지 협동조합과 주민참여 모델은 전환이 곧 지역경제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왔다.

한국에서도 재생에너지 전환은 실험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흐름이다. 문제는 가능성이 아니라 속도·규모·품질이다. 인허가 절차는 불필요한 지연을 줄이되 생태·경관 기준은 더 엄격히 적용하고, 주민이익공유 모델을 표준화해 수용성과 정의를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재생에너지 확대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송배전망 강화와 에너지저장장치 확충, 유연성 자원 확대 같은 기반 투자와 전력시장 제도 개편이 함께 가야 한다.

AI 시대, 원전이 '필수'는 아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확산과 데이터센터 증가를 이유로 "값싸고 대량의 전기가 필요하니 원자력이 필수"라는 프레임이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전력 문제를 '공급 확대'로만 환원해 특정 결론을 정당화하는 방식에 가깝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무조건 발전소를 늘려야만 대응 가능한 성격이 아니라, 효율 개선과 운영 방식 전환을 통해 상당 부분 관리할 수 있는 수요다.

예컨대 수요반응제도(DR, Demand Response)는 전력 수요가 높은 시간대에 소비를 줄이거나 다른 시간대로 이동시키도록 유도하는 제도이며, 이를 데이터센터 운영과 결합하면 피크 수요를 완화할 수 있다. 또한 전력구매계약(PPA, Power Purchase Agreement)은 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장기 계약을 맺어 전력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데이터센터가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는 전기가 남는 시간대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설비로,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핵심 인프라다. 이처럼 수요반응제도, 전력구매계약, 에너지저장장치를 결합하고 데이터센터의 효율 기준을 강화하며, 전력 사정에 따라 학습 작업 시간을 조정하는 스케줄링을 도입하면 'AI 시대 전력 수요'는 충분히 관리 가능한 영역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AI 데이터센터와 원전이 모두 물과 생태계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지역 불평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는 냉각에 많은 물을 사용하므로, 물 부족 지역에서는 주민 생활과 농업용수, 지하수에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 원전 역시 냉각수 배출로 인한 온배수가 해양 생태계를 교란하고, 고준위 핵폐기물은 수만 년에 걸친 관리 부담을 남긴다.

AI를 명분으로 이러한 비용을 덮고 원전 확대를 추진한다면, 그 부담은 결국 특정 지역 공동체와 미래세대에 전가된다. 따라서 AI 시대 전력 논쟁은 전력량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에너지 체제를 선택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의 문제여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해야 할 5가지 정책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과 '탄소 없는 미래'를 진정으로 말한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신규 원전 추진을 중단하고 노후 원전 수명 연장 절차를 멈추며, 탈핵 원칙을 명확히 재확인해야 한다. 둘째, 2030년 정의로운 탈석탄 계획을 구체 로드맵으로 확정하고,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위한 전환 안전망을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재생에너지 확대를 단순 보급 목표가 아니라 전력시장·송배전망·저장 인프라·지역 수용성·이익공유를 묶은 '시스템 전환'으로 추진해야 한다. 넷째,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공급 확대가 아니라 효율과 시간 조정, 수요반응제도, 전력구매계약, 에너지저장장치 결합을 통해 관리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순서를 재정렬해야 한다. 다섯째, 에너지정책의 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바꾸어 정보 공개와 독립적 검증, 상설 숙의 기구를 제도화하고, 정부가 최종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제 질문은 "원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에너지 체제의 나라가 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위험을 숨기고 비용을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체제, 산업계와 소수 기득권이 방향을 결정하는 체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정보와 참여를 기반으로 국민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민주적 에너지 체제이며, 그 토대는 원전 확대가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정의로운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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