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서울청사 통일부 간판 아래로 직원들이 오가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대북정책을 누가 주도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지난 9일 박일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 간의 정례적인 정책공조회의 개최 방안"을 브리핑한 뒤에 수면 위로 올라온 문제다.
15일 통일부는 '이 공조회의는 한미 관세협상에 관한 후속 협의다', '대북문제와 관련해서는 통일부가 미국과 직접 교섭하겠다'라며 외교부가 주도하는 한미공조회의 의제를 외교·통상 문제에 국한시키고자 했다.
같은 날,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를 이끈 임동원·정세현·이재정·조명균·김연철·이인영 전 장관은 한미공조회의를 우려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2018년에 출범해 남북관계를 제약한 한미워킹그룹의 전철이 재연될 수 있다면서 "전문성이 없고 남북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교부에 대북정책을 맡길 수 없다"라고 밝혔다.
기가 막힌 훈령조작사건
남북문제는 민족문제인 동시에 외교문제·안보문제·국방문제·경제문제·교육문제·문화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안이다. 그래서 여러 국가기관이 관여하고 있고, 각 기관의 특성이 남북문제에 투영되고 있다. 이는 대북문제에서 이따금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대북정책과 한미동맹을 놓고 자주파와 동맹파가 갈등을 일으켰다. 자주파는 주로 통일부 인사들이었고, 동맹파는 전통적인 외교 관료들이었다.
노태우 정부 말기와 김영삼 정부 초기에는 통일부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국정원)의 대립이 있었다. 1992년 9월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 때 발생하고 김영삼 취임 이후인 1993년에 빅이슈가 된 훈령조작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임동원 당시 통일원차관과 이동복 안기부 제1특별보좌관이 이끄는 남측 대표단이 판문점을 통과한 그달 15일 이전에 남북 간에 사실상 합의된 것이 있었다. 남에서는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리인모)를 송환하고, 북에서는 이산가족 상호 방문에 동의하는 것이었다.
남측의 회담전략은 '이산가족 상호 방문'에 더해 '판문점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나 '납북어선인 동진호 선원들의 송환'과 관련해 북측의 추가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합의 도출이 낙관적이던 시점인 17일 오전에 안기부 내의 일부 라인이 조작한 가짜 훈령이 평양에 전달됐다. '상호 방문, 면회소, 동진호가 모두 합의되지 않으면 이인모 송환에 동의하지 말라'는 강경 지침이었다.
그날 오후에 전달된 진짜 훈령은 '상호 방문은 반드시 성사시키고, 면회소와 동진호 둘 중 하나에서 양보를 얻어내면 이인모 송환을 약속해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훈령은 묵살됐다. 이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과 이인모 송환이 이 회담에서는 합의되지 못했다.
1993년에 통일부와 안기부는 이 문제를 놓고 격한 대립을 벌였다. <한국정치학회보> 2003년 제37집 제5호에 실린 배종윤 연세대 교수의 논문 '1990년대 한국의 대북정책과 관료정치'는 그 상황을 이렇게 요약한다.
당시 통일원장관이었던 최영철은 토론회에서 통일반대세력이라며 국가안전기획부를 비난했고,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이상연은 북한의 진실성이 회의적이었다며 이동복 대표를 두둔했다.
이 논문은 "북한에 대한 기본적 인식의 내용이 서로 상이한 관료조직들 간의 차별적인 판단은 관료조직들 간의 마찰을 초래했고" 이것이 다른 국가기관을 공격하는 형태로 표출됐다고 지적한다.
부처 갈등의 핵심 원인

▲외교부 정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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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가운데 국정원과 외교부의 역량이 한반도 이외 지역들로 골고루 분산된다면, 통일부·국정원·외교부 각각의 특성이 한반도문제와 관련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세 기관의 최대 역량은 모두 다 한반도 한 곳에 사실상 집중돼 있다. 이것이 충돌의 소지가 되고 있다.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시절의 국정원은 사실상 대북 정보부였다. 외교부가 주력하는 대미·대일 외교 역시 한반도 외교의 차원에 그치는 수가 많았다. 통일부뿐 아니라 국정원과 외교부도 사실상 한반도 문제에 올인해온 셈이다.
이 때문에 대북정책과 관련해 세 기관의 특성이 상호 보완적이 되기보다는 상호 충돌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수도권 집중'이 한국의 내부적 병폐를 낳았듯이, 주요 국가기관들의 '한반도 집중'은 대북정책과 관련된 병폐를 만들었다. 어느 기관이 주도하느냐에 따라 민족문제가 되기도 하고 안보문제가 되고 국제문제가 되기도 하는 일관성 없는 상태가 이어져 왔다.
대북정책의 충돌을 낳는 또 다른 요인은 대한민국 국가체제에 있다. 대한민국은 명분상으로는 민족통일을 지향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민족대결을 용인해 온 나라다.
유신헌법으로 불리는 1972년 헌법의 전문도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을 언급했다. 정부수립 당시의 1948년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제4조를 둠으로써 38선 이북도 한민족의 영역으로 포괄했다.
이처럼 역대 헌법들은 남북문제를 민족문제로 자리매김시켰지만, 현실적인 국가운영은 달랐다. 대부분의 역대 정부들은 적대적 냉전체제의 관점에서 남북문제를 처리했다. 냉전체제하의 미국이 이민족인 소련을 적대시한 것 이상으로, 대부분의 과거 정권들은 동족인 북한을 혐오하고 경원시했다.
이 같은 규범과 현실의 괴리는 정보기관이나 외교부가 북한을 적대시하고 외국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만들었다. 때에 따라 이런 기관들이 남북관계 발달을 저해하는 것을 용인하는 환경이 되기도 했다.
헌법이나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대북정책 주도권은 당연히 통일부에 있어야 한다. 이 기구가 남북교류를 촉진시켜야 헌법규정이나 대한민국 명분에 부합한다. 하지만 냉전체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어, 북한을 냉전적으로 대하는 것이 국가조직 내에서도 당연시됐다. 훈령을 조작해 남북회담을 결렬시킨 인물들이 사법처리를 받지 않은 것도 북한을 적대시하는 정부 풍토하에서는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통일을 방해하는 것은 헌법위반행위이지만, 그것은 냉전체제에 부합하는 일이었다.
정책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통일부와 여타 기관의 갈등은 부처 대 부처의 문제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놓고 전개되는, 규범과 현실의 괴리 문제다. 대북문제에 관련해 부처 간의 업무를 조정해 주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동시에, 대한민국이 평화체제로 갈 것인지 냉전체제에 머물 것인지를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 이 갈등의 근원적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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