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18 17:22최종 업데이트 25.12.1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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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민주항쟁의 결과로 개정된 헌법은 현재 시대적 변화와 국민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민개헌넷은 시민사회가 제안하는 개헌의 방향과 내용을 쟁점별로 소개하고 필요성과 절차를 심도 있게 다룸으로써 국회의 개헌 논의를 촉구하고 시민 주도의 개헌 공론화를 이끌어내고자 합니다.[기자말]
12·3 계엄을 전후한 국면에서 특히 주목된 영역 중 하나가 바로 종교였다. 그동안 종교는 '사적 신념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민주적 통제의 논의 바깥에 놓여 있었지만, 이번 사태는 종교가 이미 공적 영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국가조찬기도회, 각급 공공기관의 신우회 등은 오랜 기간 국정 운영과 공적 의사결정 과정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쳐 왔다. 통일교를 비롯해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 계엄 국면과 정치적 동원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과 정황 역시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계엄 사태 1주년을 앞둔 지금도 광장에서는 극우 종교 세력이 정치적 선동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에 비해 현행 헌법이 종교를 다루는 방식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이다.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고 국교 부인과 정교 분리를 명시하고 있지만, 종교가 민주주의와 공공질서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경우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5대 종단이 모여 종교의 자정과 개혁을 촉구하는 범종교개혁연대를 출범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범종교개혁시민연대

종교의 자유와 공공성의 충돌

종교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핵심적인 기본권이다. 그러나 자유가 곧 무제한의 권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주사회에서 자유는 언제나 공공성, 책임성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종교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종교단체 내부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해 온 성직자의 성범죄, 불투명한 회계 운영,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 지도자의 카리스마에 의존한 인사 전횡과 자금 유출 문제는 이미 오랜 사회적 문제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구조적으로 방치돼 왔다.

각종 법률 곳곳에 존재하는 '종교단체 예외' 조항들은 종교를 사실상 광범위한 치외법권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종교에 속한 시민들의 권리와 안전은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고, 종교가 공적 영역에 미치는 영향에 비해 책임은 현저히 가벼운 구조가 유지돼 왔다.

지난 4월 24일, 범종교개혁시민연대는 종교인 전광훈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섰다.범종교개혁시민연대

세계의 헌법이 보여주는 또 다른 선택지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다수의 민주국가들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민주주의와 공공질서를 침해하지 않도록 헌법적 균형을 마련해 왔다.

터키 헌법은 종교적 자유의 행사가 세속적 질서와 민주주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인도 헌법 역시 종교의 자유가 공공질서와 도덕, 사회개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강조한다. 독일은 종교단체의 공익적 역할을 인정하는 한편, 헌법질서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제한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등 유럽 국가들 또한 종교를 존중하되, 민주적 헌정질서의 예외로 두지 않는다는 공통된 태도를 보여준다. 이들 국가의 경험은 종교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반드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가치가 아님을 시사한다.

지난 9월 3일, 가톨릭 행사를 위해 특혜성 예산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한 세계청년대회특별법을 비판하는 공청회가 열렸다.종교투명성센터

시민 주도의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

종교에 대한 헌법적 논의는 종교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와 납세자의 보호 속에서 성장해 온 종교에 사회적 책임을 상기시키고, 종교 공동체 내부의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민주적 기준을 고민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87년 헌법이 외형적 민주화를 완성했다면, 이제 한국 사회는 실질적인 삶의 민주화라는 과제 앞에 서 있다. 종교 민주화에 대한 논의는 헌법이 그동안 미처 다루지 못했던 영역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작업이며, 다른 헌법적 가치들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다가오는 개헌 논의는 단순한 조문 수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 헌법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이제는 시민 주도의 숙의와 토론이 필요하다.

[필자 소개] 김집중 : 세무사.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산하 종교투명성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종교인 과세, 종교단체의 재정 투명성, 종교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원 문제를 중심으로 제도적 대안과 비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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