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5일 외교부 부대변인이 외신기자들에게 배포한 비상계엄 관련 자료.
MBC화면캡처
12·3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설명자료(PG)를 외신에 배포한 하태원 전 대통령실 외신대변인이 "흉악범에게도 반론권이 있다"며 윤석열씨의 입장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12일 법정에서 해명했다. 윤씨는 '이 덕분에 미국 정부가 한국 민주주의 회복에 안도했다'는 식의 주장도 펼쳤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백대현 부장판사)의 윤씨 체포방해 등 재판에서는 계엄 직후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외신을 상대로 비상계엄 선포 이유를 '헌법주의자이자 헌정질서를 누구보다 숭배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내린 결단이었다'고 설명한 PG와 관련해 하태원 전 외신대변인, 유창호 전 외교부 부대변인의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내란특검은 이 일에 대해 윤씨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지난 7월 기소했다.
문제의 자료는 하태원 전 대변인이 작성했다. 그는 "(2024년) 12월 4일 점심식사를 하는 도중에 대통령께서 전화를 주셨다"라며 "정확한 문답은 기억나지 않는데, 계엄 선포 상황에 대해 설명을 쭉 해주셨다. 제가 알고 싶던 내용이기도 했고, 내외신 기자들 모두 궁금해하는 상황이라 본능적으로 받아적었고, 그걸 정리해야겠는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① 도대체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나 ② 심하지 않나 ③ 헌정질서 파괴 아니냐여서 나름대로 최선의 설명을 만들었다"라고 했다.
'나는 비서일 뿐'이라는 대변인... "대통령 입장 가감없이 전달"
하 전 대변인은 계엄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거나 계엄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한 결과물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이희준 검사 "외신 기자들에게 '국회의원 과반수 찬성 시 계엄 해제 요건을 알고 있었지만 국회의원의 본회의장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PG를 전달했다. 당시 이 내용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나."
하태원 전 대변인 "그 전체의... 조각조각된 그림들이 계속 생방송으로 비춰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뭐 오롯이 그 상황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던 것 같고, 전체 그림을 판단하기 굉장히 어려웠고, 속보도 정신없이 나왔는데 대부분 굉장히 (정보가) 혼재된, 제가 현장에 있지 않은 사람으로서 지금 경찰 병력이 국회 진입을 막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일부를 허용하는 건지, 사후에 들었지만, 어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그런 최소한의 조치였는지를 그때 제가 냉철한 머리로 모든 걸 다 전지전능하게 판단해보진 않았던 것 같다."
이희준 검사 "증인이 전달한 PG 내용의 사실 여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는 말인가."
하태원 전 대변인 "대통령께서 저 부분에 대해서 본인의 육성으로 최초의 설명이 나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 부분에 대해선 제가... 상당 기간 기자를 했던 경험으로는, 그 사건의 가장 1차적인 이해당사자가 본인의 말씀으로 설명하는 것은 최소한 그대로 전달하는 게 언론인의 문법에 맞다고 봤고. 제가 외신대변인으로서 언론과 관(官)의 중간을 이어주는 미디어의 역할을 한다는 자체보다는, 가감없이 설명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희준 검사 "당시 상황 등을 종합해볼 때 이 PG 내용을 외신 기자들에게 전달할 때 약간 고민이 들거나, '이게 맞나' 싶거나 그런 것은 없었는가."
하태원 전 대변인 "너무나 많은 상황이 발생되어 있고, 제가 외신을 통해서 저 상황을 밝히는 시점은 1차적으로 대통령께서 국회 계엄 해제 요구를 받아들여서 계엄이 해제된 상황이었고, 대통령이 현직 신분을 유지하고 계셨고, 저는 어드바이저(adviser, 조언자)가 아니라 세크리터리(secretary, 비서)이지 않나. 그러면 제 임무는 현직 대통령이 설명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이 행동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 앞서서 대통령의 말씀을 저의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전달하는 게… 제 … 공직자로서의 직무 윤리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 전 대변인은 '외신에게 대통령의 입장을 전달하는 역할로서 일일이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설명할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윤씨 변호인단 질문에 "
흉악범이나 중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피고인에게도 반론의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다"라고도 답했다. 그는 "대통령의 말씀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은 언론들 몫"이라며 "
대통령의 말씀을 전달한 게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그런 목적을 갖고 지시했는지는 제가 판단할 상황은 아니었다"라고 부연했다.
그러자 박억수 특검보는 "경고성 계엄이란 워딩(표현)을 쓰면서 그렇게 규정하고, 그게 PG에도 반영된 것 같은데, 증인도 그렇게 인식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하 전 대변인은 "계엄을 선포한 것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라는 짧은 답변을 내놨다. 또 특검 조사에서 진술한 것과 마찬가지로 'PG 배포 당시 상당부분의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었다는 점은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사후적으로 인지했다'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5일, 하 전 대변인으로부터 '자료를 못 받아본 외신 기자들에게 알려주라'며 PG를 전달받은 유창호 전 외교부 부대변인 역시 "읽어보니까 대통령의 입장이더라. 그거는 입장이니까, 또 기자들이 계속 '왜 계엄을 선포했는지' 문의해왔던 거라 그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전했다"라고 증언했다. 그는 "일단 자료가 내려오면 어느 정도 다 검증된 자료일 테고, 그 내용을 가지고 부대변인으로서 동의 못한다고 전달 안 하고, 이건 제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PG 때문에 미 국무부 성명? 윤석열의 아전인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025년 1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외교부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윤석열씨는 이번에도 직접 "어느 조직이나 공보, 대변인은 입장을 얘기하는 거고 팩트는 기자들이 취재하는 것"이라고 의견을 진술했고, 증인들도 신문했다. 특히 유 전 부대변인에게 "
대통령실의 외신 공보 이후에 미 국무부에서 '한국의 계엄 선포에 대해서 우려했는데 헌법과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것으로 판단되어 다행'이란 취지의 성명이 나온 것을 알고 계시는가"라고 물었다. 본인이 PG를 내보낸 덕분에 미국 정부도 안도했다는 의미였다.
윤석열씨 "(계엄 선포 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서 주한 미대사관하고 일대사관에 얘기했더니 미대사관 쪽에선 '그게 뭐냐' 이러면서 굉장히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이런 외신 대응을 하게 된 건데, 주한 미대사관의 그런 분위기는 알고 있었는가."
유창호 전 부대변인 "어… 그런 얘기는 들은 바 있지만, 이 건(PG 배포)하고 그렇게 연계짓진 않았다."
윤석열씨 "그리고 (12월) 4일날 오후에서야, 오후 한 느지막한 시각에 미 국무부에서 그 '헌법과 민주주의가 회복되어서 다행'이란 브리핑이 나온 거는, 외교부에서 12월 5일 (PG 배포)하기 전에 이미 나온 건 알고 계신가."
유창호 전 부대변인 "어… 잘 기억 안 난다."
그런데
2024년 12월 4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의 성명은 한국이 계엄을 거부하고 합법적 절차를 밟아 평화롭게 해제했다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당시
커트 캠벨 부장관은 공개석상에서 윤씨의 계엄 선포를
"심각한 오판(badly misjudged)"이라고도 평가했다.
이후 퇴임을 앞둔 1월 6일 한국을 방문한
블링컨 장관은 "윤 대통령이 취한 조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고, 이를 한국 정부에 직접 전달했다"라며 다시 한번 12·3 비상계엄을 비판했다.
"미국은 지난 24시간 동안 한국의 상황을 면밀히 주시해 왔다. 우리는 계엄 선포를 거부한 국회의 만장일치 표결 이후, 헌법에 따라 비상계엄 선포 명령을 철회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성명을 환영한다. 우리는 정치적 이견이 평화적으로 그리고 법치에 따라 해결되기를 계속 기대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법치라는 공동의 원칙에 기반해 한국 국민과 한미 동맹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다."
- 토니 블링컨 장관, 2024년 12월 4일 언론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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