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스틸컷.
워너 브라더스
영화는 해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수십만 명의 병사들을 건조하게 보여준다. 멀리 보이는 잔교에는 군함이 보이지만 언제 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고립된 군인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건 소리다. 해안으로 다가오는 독일 전폭기 소리는 공포를 절망으로 바꾼다. 이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엎드리는 것뿐.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에 바로 옆 동료가 사라져도 슬픔은 보이지 않는다. 절망에 짓눌린 누군가가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죽음을 선택해도 무심할 뿐이다. 덩케르크 해안에서 죽음은 일상이고 생존은 본능이었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독일 군에 대한 공포, 탈출이 불가능한 드넓은 바다에서 느끼는 절망, 심지어 가까스로 올라탄 구조선이 폭격으로 침몰해 다시 해안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허탈감, 그리고 그로 인해 생존 욕구밖에 남지 않은 비인간성에 기분이 울적해졌다.
<덩케르크>는 재난영화에 가깝다. 나는 재난영화를 볼 때면 그 속의 인물이 되어본다. 극복할 수 없는 재난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의 불안 앞에서 과연 인간성을 지킬 수 있을까? 극단적 공포와 절망이라는 단어 앞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변할까? 이런 질문 앞에 서면 덩케르크에 고립된 병사들의 선택과 행동은 비판의 영역을 벗어난다.
영화 내내 들었던 기묘한 불쾌감은 어릴 적 보았던 재난 영화 <타워링>이나 좀비 아포칼립스를 그린 <워킹 데드>를 마주한 듯한 기시감 때문이었으리라.
이런 관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짜놓은 미학은 놀랍다. 영화 속에서 구조가 필요한 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이름뿐만 아니라 개별적 서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속 주인공은 생존하고 싶은 수십만 군인 중 하나일 뿐이다.
등장인물 중 이름을 가진 사람은 총 다섯 명, 자신의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떠나는 도슨 선장, 아들 토미, 토미의 친구 조지 그리고 독일 전폭기에 맞서 출격한 영국 공군 콜린스와 패리어다. 이들 중 서사를 가진 사람은 도슨 선장 한 명이다.
도슨 선장은 영국 공군으로 전사한 아들을 가진 남자다. 덩케르크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배를 띄운다. 윈스턴 처칠은 덩케르크 구출 작전에 해안에 닿을 수 있는 소형 선박을 징집했다. 총 600여 대가 넘는 민간 선박이 동참했고, 200여 대의 군함과 함께 33만 명을 구해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도슨의 캐릭터가 타이타닉의 생존자, 찰스 라이트롤러에서 왔다는 것이다. 타이타닉의 2등 항해사였던 그는 아이와 여자를 구명정에 먼저 태우고 배와 함께 침몰했다. 다행히 바닷속에서 사투를 벌이다 기적적으로 구명보트에 올라타 목숨을 건졌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그의 영웅적 모습이 그려졌다.
라이트롤러는 '익명의 희생자들이 남긴 자리'를 품고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실제로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서 그는 자신의 배, 선다우너호를 이끌고 130명의 군인을 구출했다. 영화 속에서 도슨의 전사한 아들은 타이타닉에서 사라진 수많은 익명의 생명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래서 감독은 도슨을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목숨을 구하러 망설임 없이 바다로 나선 또 다른 수백 명의 익명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낼 뿐이다.
영화 내내 답답했던 가슴은 페리어의 스핏파이어 전투기가 잔교 위로 폭탄을 투하하려는 독일 전폭기를 격추하는 순간 비로소 뚫린다. 그후 수많은 민간 선박이 해안에 도착하고 실의에 차있던 젊은 군인들의 얼굴에도 안도의 웃음꽃이 피어난다. 신기하게도 그제야 영화 내내 들리던 음울한 음악 소리가 사라졌다. 이미 역사적으로 결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런 감정이 들다니, '감독님, 제가 졌습니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왔다.
격려와 환대의 상징, 맥주
▲덩케르크 기념비
윤한샘
영화 속 병사들은 그토록 그리던 고향에 도착해서도 패잔병이라는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가 창문 사이로 맥주 두 병을 건넨다. 이 투박한 맥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 생사를 넘나든 이들에게 건네는 '살아 돌아와서 고맙다'는 무언의 위로이자, 다시 삶을 이어가게 하는 환대의 상징이었다. 짠 바닷물과 공포를 삼켰던 그들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맥주는 그제야 비로소 '생명의 물'이 된다.
덩케르크에서 7일간 구출된 33만 명의 군인들은 4년 뒤 노르망디 작전에 투입되어 독일의 패전을 이끌어낸다. 만약 이들이 모두 사망했다면, 우리가 아는 역사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며칠 전 다시 영화를 보는데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역사의 간유리를 대어 보니, 영화 내내 왜 그토록 불쾌감과 안도감이 들었는지 깨달았다.
위기 앞에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권력,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각자도생해야 했던 불안한 현실. 내란의 위협과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모두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이름 없는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절망의 순간, 바다를 건너온 수많은 민간 선박들처럼 광장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익명의 시민들이 있었다. 그들이 든 촛불과 응원봉은 도슨 선장의 배와 다르지 않았다. 기차 안에서 맥주를 마시며 안도하던 병사의 모습 위로 위태로운 일상을 지켜내고 비로소 맥주 한 잔을 기울이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졌다.
덩케르크에서 건네진 맥주 한 병이 격려와 환대였다면, 지금 우리 손에 들린 맥주 한 잔은 연대와 승리의 증표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어둠을 뚫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오늘을 기억하며 맥주를 마실 수 있다면, 이 또한 역사가 기억할 '조용한 승리'가 아닐까.
이름 없는 영웅, 당신과 나를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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