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워싱턴포스트>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은 남자 대학생, 특히 백인 남성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
극우 정치가 만들어 낸 역차별 서사와 달리, 미국의 실제 통계는 능력 구조가 이미 뒤바뀌고 있음을 분명히 말한다. NCES가 올해 발표한 자료에서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남학생보다 48퍼센트 높게 나타났고, 지난 40년 동안 이어진 성취 격차도 꾸준히 누적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상당수 대학이 성비를 맞추기 위해 남학생에게 사실상의 우대를 적용해 왔다는 사실은, WP와 <뉴욕타임스>(NYT)가 여러 차례 입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보도한 바 있다. 이는 '누가 누구를 밀어내고 있었는지'에 대한 통념을 근본부터 흔드는 내용이다.
브라운대의 사례는 이 문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5만 명이 지원한 지난해 신입생 선발에서 여학생 지원자는 남학생의 거의 두 배였지만, 실제 합격자는 남녀 비율이 거의 같았다. 이 수치는 브라운대가 매년 공개하는 입학 통계와 WP의 입시 분석 기사에서 확인되는 공식 자료다. 지원자 대비 합격률을 보면 남학생은 7퍼센트, 여학생은 4.4퍼센트였다. '능력보다 정체성으로 자리를 가져간다'는 역차별 담론이 말하는 그림과는 정반대의 현실이다. 성비 균형이라는 명목 아래 대학들이 조용히 남학생에게 가산점을 부여해 왔다는 사실은, 누구의 기득권이 실제로 보호돼 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DEI 폐기 흐름이 강해지면 이 남성 우대 관행 역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여기서 극적인 반전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DEI를 공격하는 주된 명분은 "남성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인데, 실제 제도 변화는 남성에게 가장 먼저 충격을 줄 수 있다. 대학이 성별 고려를 완전히 중단할 경우 여성의 비율은 단숨에 65퍼센트에 이를 것이라는 미국교육협의회의 전망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공정 경쟁을 향한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남성에게 조용히 적용되어 온 구조적 우대를 걷어내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 역설은 고용에서도 반복된다. 미국 대기업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채용 비율이 높아진 이유는 기회균등 프로그램 때문만이 아니다. 이미 역량을 갖춘 인재층이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DEI는 약자를 끌어올리기 위한 비상구가 아니라, 변화한 능력 지형을 제도 안에서 반영하려는 조정 장치였다. 이 장치를 폐지하면 소수자의 성장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정 경쟁의 장에서 더 뚜렷하게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결국 타격을 받는 쪽은 소수자가 아니라, 자신이 자연스러운 기준이라고 믿어 온 정체성 기득권 집단일 수 있다.
이제 문제는 누가 누구에게 위협이 되는가가 아니라, 누가 실제 변화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있는가로 옮겨간다. 역차별이라는 명분은 쉽게 분노를 불러일으키지만, 그 명분이 실제 구조와 맞지 않을 때 사회는 더 큰 오해와 충돌을 향해 움직인다. DEI 폐기를 둘러싼 논쟁은 평등과 기회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한 능력 지형을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기준에 매달릴 것인가의 문제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선택은 무엇보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믿어 온 집단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역차별이라는 말은 듣기에 매혹적이다. 누군가 나 대신 부당한 이익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복잡한 세계를 단번에 이해한 것 같은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그 말이 구조적 기득권을 비켜 가고, 정체성 기득권의 상처만을 자극하는 도구로 쓰일 때,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언제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다. DEI 폐기를 요구하는 정치가 누구의 분노를 이용하고, 누구의 기득권을 지키고 있는지부터 먼저 물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더 유능해진 여성과 소수자가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바뀌었는데도 기준은 바뀌지 않는 사회다. 이미 역량을 갖춘 집단을 "보호받는 약자"로만 묶어두고, 평범한 남성을 "진짜 피해자"로만 호출하는 이야기는, 근대가 어렵게 쌓아 올린 인권과 평등, 민주주의의 토대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그 토대가 무너지면, 정작 기댈 곳을 잃는 것은 구조기득권이 아니라, 삶의 전선에서 버티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DEI를 둘러싼 싸움은 그래서 단순한 정책 논쟁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공정하다고 부를 것인지, 능력 지형이 바뀐 세계에서 누구를 여전히 "기준이 되는 인간"으로 상정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역차별이라는 구호에 마음이 끌릴 때일수록, 그 말 뒤에 숨은 권력의 지도를 한 번 더 들여다봐야 한다. 그 지도를 보지 못한 채 과거의 기준에만 매달릴수록, 미래를 잃어버리는 쪽은 어쩌면 바로 그 "평범한 남성" 자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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