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은 1970년대 이후 '응급 상황을 다루는 특별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응급 진료가 필요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하고 응급실 진료가 필요한 경우에도 우선순위를 정해야 효율적인 진료가 가능하다.
셔터스톡
멀쩡한 사람이 의식을 잃는다. 의자에서 나뒹굴 수도 있고 서 있다가 쓰러질 수도 있다.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전원이 차단된 로봇처럼 순식간에 멈춘다. 심지어 단순히 멈춘 것도 아니다. 눈동자가 한쪽으로 쏠리고 입에 거품을 문다. 뻣뻣해진 팔다리가 쉴 새 없이 떨린다.
처음 목격하면 매우 당혹스럽다. 여러 번 경험해도 일반인은 익숙해지기 어렵다. 의료인도 관련된 질환을 자주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면 긴장할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증상은 곧 멈춘다. 그러면 짧은 시간 동안 의식이 없거나 몽롱한 상태가 지속한 후에 명료한 의식을 회복한다. 대개의 경우에는 심각한 후유증이 남지 않는다. 다만 증상이 반복하며 점차 문제가 생긴다. 또, 경련하며 다칠 위험도 있다.
이런 증상을 만드는 대표적인 질환은 뇌전증이다(과거에는 간질이라 불렸다). 뇌전증은 뇌의 특정 부분에서 비정상 뇌파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다른 장기와 마찬가지로 뇌를 구성하는 세포도 전기신호를 주고받는다. 따라서 이상한 전기신호가 발생하면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뇌가 작동하지 않으면 환자가 '중앙컴퓨터에 버그가 발생한 기계'처럼 통제 불능에 빠진다. 그래서 뇌전증 발작이 시작하면 의식을 잃고 눈동자가 한쪽에 몰리며 입에 거품을 문 상태로 뻣뻣해진 팔다리를 떨게 된다.
다행히 대부분의 뇌전증 발작은 짧은 시간만 지속한다. 그래서 단기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다만 발작을 반복하면 뇌 손상이 심해질 수 있다. 또, 발작이 5분 이상 지속하는 뇌전증중첩증에 빠지면 아주 심각한 뇌 손상이 발생해서 당장 사망할 위험이 있다.
아울러 발작의 원인이 뇌전증이 아닌 경우도 종종 있다. 뇌출혈과 뇌경색에서도 뇌전증 발작과 유사한 경련이 발생한다. 뇌염과 뇌수막염도 마찬가지다. 뇌종양도 경련을 일으킨다. 저혈당, 고혈당, 저산소증, 저나트륨혈증, 고나트륨혈증, 신부전, 케톤산증, 모두 뇌전증발작과 유사한 경련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뇌전증 발작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경우, 단순한 뇌전증 발작인지 다른 문제가 원인인지 감별해야 한다.
그래서 구급대원이 '경련발작을 일으킨 환자가 있다'고 이송을 문의하면 일단 수용해서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경련이 지속하는 뇌전증중첩증의 경우에도 신경과 진료가 당장 필요하지는 않다. 항경련제를 투여하고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인공호흡기를 연결한 후에 한층 강력한 약물을 투여해 환자의 기본적인 생체 징후를 안정시키는 일은 응급의학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신경과의 전문적인 치료는 그다음 단계다.
그럼에도 많은 응급실이 '신경과 진료가 가능하지 않다'는 이유로 환자의 이송을 거부한다. 2024년 10월 분당 지역의 권역응급센터도 '신경과 진료가 불가하다'며 이송을 거부했다가 나중에 환자가 경련발작을 일으킨 원인이 뇌전증이 아니라 급성 신부전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의료진의 잦은 이송 거부
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고등학생의 사망사건도 마찬가지다.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 저하가 있다'라는 이송 문의에 부산의 모든 응급실이 '소아신경과 진료가 가능하지 않다'고 거부했으나 정작 환자의 문제는 외상성 뇌출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상황을 부연하면 환자는 이른 아침 학교에서 쓰러진 상태로 발견되었고, 추락 가능성이 컸다는 것을 구급대원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10대 후반에게 경련 발작과 의식 저하가 발생하면 외상이 없어도 '동정맥기형파열로 인한 자발성 뇌출혈' 같은 문제부터 감별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경련발작에 국한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응급실이 시쳇말로 '아주 작은 꼬투리'를 잡아 이송을 거부한다. '환자를 신속하고 적절하게 치료하는 것'이 구급대가 응급실에 이송을 문의하는 목적이나, 정작 현실에서는 의료진이 '골치 아프고 까다로운 상황을 피하는 것'으로 악용하는 셈이다.
2023년 3월 대구에서 발생한 사건은 '응급실 뺑뺑이'란 단어를 널리 알린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0대 후반 여성이 4층 높이에서 추락하여 머리와 다리를 다쳤다.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 의식은 명료했고 혈압과 맥박 같은 생체 징후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처음 환자가 도착한 응급실에서는 '자해를 목적으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있으니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와 폐쇄병동 입원이 가능한 응급실로 가라'며 수용을 거부했다.
그러자 구급대는 권역응급센터를 비롯하여 대구에 소재한 모든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 이송을 문의했으나 모두 '응급실이 포화 상태라 여력이 없다',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다' 같은 이유로 수용을 거부했다. 그렇게 응급실을 찾는 동안 환자의 상태가 점점 악화했고 급기야 심정지가 발생했다. 결국 환자는 제대로 된 진단조차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의과대학이 4곳이나 있어 수도권을 제외하면 의료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추어진 지역으로 꼽히는 대구에서 발생한 사건인 데다, 10대 여성이 희생자라 충격이 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응급실 뺑뺑이'란 단어가 널리 사용되었고 여론의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2024년 4월에도 대구에서 얼굴에 열상을 입은 환자가 '성형외과 진료가 가능하지 않다'란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응급실 3곳을 전전하다 사망했다. 얼굴이 찢어지는 경우, 다친 경위에 따라 외상성 뇌출혈부터 감별해야 해서 '성형외과가 가능하지 않다'가 수용을 거부할 합리적인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10대 여성의 추락사고도 마찬가지다. 4층이 아니라 2층에서 추락했다고 해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앞서 생명을 위협하는 손상이 없는지 감별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두 사건 모두 응급실 의료진이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라는 의사의 가장 중요한 의무를 소홀히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응급실 의료진이 의사의 가장 중요한 직업윤리를 외면하면서 수용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두 사건처럼 비극으로 치닫는 경우는 드물지만 '응급실 뺑뺑이'가 관행처럼 자리 잡은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의사가 이기적이고 사악해서일까?
'응급실 뺑뺑이'와 방어 진료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사망사건. 2017년 12월 서울 이화여대 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같은 날 연쇄적으로 심정지가 발생해 80여 분 안에 모두 사망한 비극적인 의료사고로 형사재판에서는 의료진 과실과 사망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종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유튜브 갈무리
2010년대 후반부터 의료 소송이 잦아졌다. 과거에는 의료진의 과실이 명백해도 적당히 합의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또, 몇몇 사건에서는 의료진이 크게 처벌 받았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2017년 12월 서울 이화여대 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같은 날 연쇄적으로 심정지가 발생해 80여 분 안에 모두 사망한 비극적인 의료사고로 역학·수사 결과, 지질영양 주사제 및 신생아실 환경에서 검출된 세균 감염과 연관성이 강하게 의심되었지만, 형사재판에서는 의료진 과실과 사망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종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다)의 경우, 최종적으로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해당 의료진의 고통은 매우 컸다.
또한 소아외과 세부 전문의가 아닌 외과의사가 소아에게 응급수술을 시행하여 발생한 후유증에 대해, 10억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사건도 있다. 생후 5일의 신생아에게 부주의하게 수액주사를 시행하여 발생한 뇌 손상에 대해 17억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사건도 있다.
이런 사건들은 의료사고와 관련한 전체 소송의 결과와 관계없이 의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의사들은 점점 방어 진료에 매달렸고 가급적 위험한 상황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가 '응급실 뺑뺑이'다. 신경과가 응급실 호출을 받지 않게 되면, 경련발작, 구음장애, 안면마비, 편마비, 보행장애를 동반한 어지러움 같은 증상이 있는 환자는 모두 거부된다. 폐쇄병동이 없는 경우에는 환자의 자해가 조금이라도 의심될 경우, 무조건 거부된다. 성형외과 진료가 가능하지 않으면 안면손상 환자도 모두 거부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위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응급실 의료진이 환자 수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급대원이 응급실을 지정하여 이송하는 것이 법안의 주된 내용이다. 그렇지만 그런 법안이 과연 응급실 뺑뺑이를 막을 수 있을까? 환자를 수용하지 않을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고 법안에서 강제하는 요건만 기계적으로 준수할 수도 있다. 아예 응급의학과를 비롯해 응급실 진료와 관련된 필수과에서 인력이 이탈할 수도 있다.
각자도생 문화를 바꾸어야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이 지난 10월 26일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부작용이 크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한국은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발전했다.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나 '유례없는 발전'이 틀림없다. 하지만 결과만 지나치게 우선할 때가 많다. 또,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보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빠른 성과를 내고자 했다. 그런 과정에서 개인이 피해를 입어도 개의치 않았다.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간주할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각자도생'이 한국 사회의 도드라진 특징이 되었다. 개인으로서는 '불운한 희생자가 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정부와 공공기관부터 민간기업까지 어떤 조직에 소속했든, 무슨 직종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응급실 뺑뺑이도 마찬가지다. 각자도생의 사회, '불운한 희생자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회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환자를 수용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수용했다가 결과가 나쁘면 오랫동안 소송에 시달릴 수 있고 자칫 여론의 먹잇감으로 던져질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안전한 환자, 문제가 될 여지가 적은 환자만 수용한다. 그래서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이 시행되어도 현실이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작다. '각자도생의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응급실 뺑뺑이는 어떤 법과 제도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환자, 보호자, 구급대원, 의료진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도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개인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운한 희생자가 되지 않는 것'에 몰두하는 문화를 바꾸지 못하면 단순히 의료진을 처벌하고 병원에 복잡한 규제를 강제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의사 집단의 주장처럼 보험수가를 비롯한 보상을 높이고 처벌 위험을 낮추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모두 미봉책일 뿐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응급실 뺑뺑이와 관련한 정책을 추진할 때, 당장의 여론보다 환자부터 의료인까지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의사협회와 응급의학회 같은 의사 단체는 단순히 직역의 이익을 지키는 것에서 벗어나. 전문가 단체로서 다른 사회 구성원의 존경과 신뢰를 얻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의료와 관련하여 세간의 이목을 끈 사건에서 의사협회 같은 의사 단체가 한 번이라도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을 고려한 적이 있었나? 의료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새벽배송 논란 같은 이슈에서 의사협회가 전문가 집단답게 다른 사회 구성원이 신뢰할 수 있는 성명을 낸 적이 있었는지 반성부터 해야 한다.
▲곽경훈 분당제생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본인
필자 소개 : 곽경훈은 분당제생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메디컬에세이와 소설을 쓰고 칼럼을 적고 있습니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곽곽선생뎐>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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