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08 14:15최종 업데이트 25.12.0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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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케네디 센터에서 열린 2026 월드컵 조추첨식에서 잔니 인판티노 세계축구연맹(피파) 회장으로부터 받은 ‘피파 평화상’ 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에 애착을 보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평화 구상에 합의한 다음 날인 지난 9월 30일 자신이 수상 자격이 있다고 한 뒤, 다른 사람이 이 상을 받는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큰 모욕"이라며 "나는 받고 싶지 않다, 나라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직후인 10월 10일에는 평소 그답지 않은 말을 했다. "하지만 난 수백만의 생명을 구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차도가 받은 상은 금년이 아니라 작년 활동에 대한 것이라는 말로 내년도 수상에 대한 희망을 내비쳤다.

그처럼 노벨평화상에 집착하는 트럼프가 지난 6일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식 무대에서 국제축구연맹(FIFA)이 신설한 피파 평화상을 받았다. 꿩 대신 닭을 받아 든 트럼프는 "내 인생에서 큰 영예 중 하나"라며 자신이 수백만을 구해 세계가 안전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무리한 투자를 요구하며 영토적 야심을 드러내기도 하는 트럼프가 이처럼 세계 각지의 분쟁 조정에 열의를 보이며 노벨평화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 5일 백악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미합중국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트럼프가 왜 이처럼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평화 중재가 미국 국익에 도움 강조

미국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백악관

보고서는 외국 분쟁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기본 입장을 명확히 한다. 제4장 '전략' 편은 "합중국은 주권을 당당하게 수호할 것"이라고 한 뒤, 이런 주권수호 활동에 "우리의 정책을 조종하거나 우리를 외국 분쟁에 연루시키고자 하는 로비 활동 및 영향력 행사"를 차단하는 작업이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그간 트럼프가 수없이 밝혔듯이 외국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게 기본 입장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가 있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우리의 직접적인 핵심 이익으로부터 주변적인 지역과 국가"일지라도 평화 협상을 도와야 할 때가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 안정을 증진시키거나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을 때는 미국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지역의 평화를 위해서도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제4장 서두는 트럼프 외교정책의 대전제가 미국 우선주의라고 못을 박은 뒤, 바로 뒷부분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의 대통령으로서의 유산을 공고히 했다"고 강조한다. "평화의 대통령"이라는 대목에서 '평화'와 '대통령'을 대문자로 표기했다.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에서 국제평화 증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이런 방식으로 드러냈다.

보고서는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위해 '평화의 대통령'으로 활동한 구체적 사례들을 열거한다. 2020년 9월 15일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이 외교관계를 체결한 일명 아브라함 협정이 제시한다. 이슬람교·기독교·유대교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을 앞세워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관계를 개선시키고자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희망이 아브라함 협정이라는 명칭에 반영됐다.

캄보디아-태국, 코소보-세르비아, 콩고민주공화국-르완다, 파키스탄-인도, 이스라엘-이란, 이집트-에티오피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하마스-이스라엘을 중재하기 위한 트럼프의 조치도 보고서에 열거됐다. 가자전쟁의 경우에는 미국이 평화를 촉진했다기보다는 이스라엘의 대량 학살을 방조한 측면이 명확히 크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것도 평화 중재의 성과로 과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런 평화 중재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지역 갈등을 방치하면 자칫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뿐 아니라 미국의 이익까지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보고서에서 접할 수 있다. "지역 갈등이 전(全) 대륙을 끌어들이는 세계전쟁으로 확산되기 전에 이를 막는 것은 최고사령관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지적한다.

노벨평화상을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 분위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간) 워싱턴DC 미국평화연구소에서 열린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의 평화협정 서명식에 참석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작은 분쟁이 세계대전으로 비화되면 현존 국제질서가 동요해 미국의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트럼프의 평화 중재를 추동하는 원동력 중 하나다. "전쟁이 우리 해안에 다가오는 불타는 세상은 미국의 이익에 나쁘다"고 보고서는 우려한다.

그런 평화 중재가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데도 유용하다는 생각이 보고서에 반영됐다. "힘은 우리가 평화를 성취하게 해줄 수 있다"라면서 "왜냐하면, 우리의 힘을 존경하는 쪽은 종종 우리의 도움을 구하고,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를 유지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수용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접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의 평화를 중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지역의 존경을 받고 있는 증거라고 보고서는 강조한다. 군사력 과시나 경제적 지원으로 국력을 과시하는 방식은 돈이 많이 든다. 돈이 적게 드는 평화 중재로 미국의 힘을 각인시키려는 트럼프의 경제적 사고와 연관되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지구상에 미국보다 강한 나라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합중국은 그 어느 국가도 우리의 이익을 위협할 만큼 지배적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그 어느 국가보다도 미국이 강력하고 지배적임을 보여주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로 트럼프가 생각하는 것이 평화 중재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가 관세전쟁 못지않게 분쟁 조정에도 공을 들이는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번에 발간된 '미국 국가안보전략'은 가급적 외국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기본 입장이지만, 작은 분쟁들이 미국의 위상을 위협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한편 미국의 힘을 과시하고자 외국 분쟁에 개입하며 노벨평화상을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희망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 명예욕의 표현이 아니라 미국 세계 전략의 독특한 구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받고 싶지 않다. 나라가 받아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완전히 빈말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우국충정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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