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08 14:59최종 업데이트 25.12.0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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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갯빛 행진대형 무지개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녹색당

직업이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활동가라 자연스럽게 동종 업계의 사람들이 함께 있는 단체 메신저 방에 들어가 있다. 아무래도 일을 매개로 생긴 메신저 방이라 사사롭고 일상적인 이야기나 농담이 오고 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심지어 성소수자 인권 관련 뉴스라도 이미 알법한 이야기는 잘 공유되지 않는다. 활동가들도 놓치기 쉽지만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한 뉴스나 업무와 관련하여 알아두면 좋을 소식 등이 주로 이야기 된다. 그럼에도 결국 이 모임도 사람이 만든 것이라 인간적인 순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인간적인 순간들 중 하나는 바로 의외의 장소에서 무지개 찾기다. 여섯 색의 무지개는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무지개를 담은 깃발은 '자긍심의 깃발(Pride Flag)'로 불리며 지금 당장 구글에서 검색하면 가장 상단에서 유래와 색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아무튼 사람들은 때로 의미를 알고 자긍심의 무지개를 사용한다. 종종 들르는 동네 식당에서 여섯 색의 무지개와 함께 '모두를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발견하는 경우가 그렇다. 혹은 주로 해외 기업의 제품 패키지에서 여섯색의 무지개를 발견하곤 한다. 아마 적극적인 다양성 정책의 결과일 것이다.

'무지갯빛 평등' 성소수자들의 외침연합뉴스

숨은 무지개 찾기

물론 무지개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자연현상이며 때문에 이전에도 꾸밈의 용도로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어 왔다. 이 경우 보통 일곱색의 무지개를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색이 하나 밖에 차이가 나지 않다 보니 의도치 않게 자긍심의 무지개가 사용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자긍심의 무지개가 어떻게 그곳에 있게 됐든 우연히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하면 활동가들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에 성공이라도 한듯 사진을 찍어 단체 메신저에 올렸다. 여기에도 무지개가 있다며 신나하거나 때로 저기에는 도대체 왜 무지개가 있는지 궁금해 하며.

우리는 이런 일을 꽤 오래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경향도 발견했다. 자긍심의 무지개가 자주 발견되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독립서점이나 독립영화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작은 규모의 지역 소품숍이나 식당이 전자에 해당한다. 이런 곳에선 무지개가 아주 잘 보이는 위치에 비치되거나 혹은 그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그렇다면 무지개가 잘 보이지 않는 곳은 어딜까. 우리에게 익숙한 곳들이다. 대형 쇼핑센터, 프랜차이즈 식당 그리고 주요 관광지들. 공중파를 포함한 주류 미디어의 영상 속과 관공서들. 보다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공간들 혹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소유한 곳들이 그렇다. 무지개가 보이는 공간의 편차는 성소수자가 사회에 어느 정도로 수용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가늠자는 아닐까.

"성소수자 시민의 이름으로 윤석열을 파면한다!"이정민

내란 종식 광장의 성소수자 무지개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놀라온 모습을 최근에 접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년을 맞아 민주주의의 위기와 그럼에도 이를 막아선 시민들의 용기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다. 특히 비상계엄 사태 및 내란 저지의 주요 무대였던 국회 앞에서도 여러 행사들이 열렸고 많은 수의 시민들이 이곳에 함께했다. 주요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들도 12월 3일을 전후로 이와 관련한 특집 보도를 방송했다.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을 촉구해왔으며 민주주의 회복을 주장한 작년부터 올해까지의 다양한 현장들이 방송에 등장했다.

그리고 광장을 비춘 대부분의 뉴스 보도 꼭지에서 자긍심 무지개 깃발을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자긍심 무지개 깃발 뿐이랴, 성소수자 집단 안에는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고 그래서 정체성에 따른 각자의 고유한 상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12·3 내란 종식 시민대행진을 비춘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선 양성애자 자긍심의 깃발을 발견했다. 이는 무척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사실 어쩌면 이 모든 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모른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과 내란 종식을 위해 열린 많은 집회에 성소수자들이 자기 정체성의 상징을 가지고 참석했다. 그리고 때로는 연단에 올라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관련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시민의 이름으로 윤석열을 파면한다!"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윤석열퇴진성소수자공동행동이 2025년 2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파면 촉구 릴레이 기자회견 "성소수자 시민의 이름으로 윤석열을 파면한다"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이정민

성소수자와 내란 종식이 무슨 상관이냐고?

어쩌면 누군가는 질문할지 모른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내란을 종식하기 위한 집회에서 왜 성소수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느냐고. 그게 내란 종식 및 민주주의 회복과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자.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 회복이란 부당한 권력자에 의해 위기에 빠진 체제를 구하는 것이지 과거의 시스템으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괜찮아 보였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 비극과 같은 지금의 위기를 다시 반복하자는 말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내란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대, 권력자가 시민들 간의 적대를 부추기고 한쪽의 등에 업어 탈 수 없는 시대, 허황된 거짓과 증오를 선동하거나 그것에 선동되는 게 불가능한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이 광장의 요구가 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민주주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기존의 체제가 정말 민주적이었고 그래서 모든 시민들이 평등하고 차별 없이 사회의 일원일 수 있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가장 직접적으로 응답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배제 받은 소수자들이 직접 연단에 서서 자신을 드러내고 경험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새롭게 보완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정치적 실천이다. 그리고 광장의 다른 이들이 '왜 이 소수자들은 지금까지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나' 질문할 때, 거기서부터 지금과는 다른 더욱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사회와 체제를 만드는 일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지개가 잘 보이는 곳과 아닌 곳이 나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어디서나 소수자들과 그들의 상징을 볼 수 있는 사회와 체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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