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윤석열씨가 지난 11월 19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 내란중요임무종사 재판 증인으로 나와 증언을 거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윤석열의 내란 이후 극단의 공론장에서 보편적 시민주의가 소멸하는 현실을 보며 나는 무엇보다도 '정치의 도덕적 형식'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넓은 의미의 정치는 공동체의 목표를 추구하는 공적 합의의 과정이다. 여기에는 입법부의 의회정치와 행정부의 관치, 사법부의 법치가 포함될 뿐만 아니라 제도정치와 공론장의 정치를 포괄한다. 따라서 정치는 공동체의 모든 질서를 포괄하는 가장 상위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정치질서는 '도덕적 형식'이 갖추어짐으로써 그 정당성을 얻고 나아가 공동체의 존립을 보장받는다. 도덕적 형식 없는 정치는 맹목적이고 위험한 권력일 뿐이다. 내란 이후 우리 정치에는 정치를 지탱하는 도덕적 형식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정치의 도덕적 형식은 '공적 이성'이다. 정치철학자 롤스(John Rawls)가 '중첩된 합의'(overlapping consensus)라고 표현한 공적 이성(public reason)은 개인적 욕망과 이익이 철저히 배제된 공공성이야말로 정치의 도덕적 기본이자 정치적 정당성의 근본이란 점을 말해준다. 윤석열의 국정파괴와 내란은 공사의 구분에 눈감았다. 국정은 무속과 취향으로 사유화되었고, 정치종교의 공개적인 정치 개입과 극단의 혐오정치가 공과 사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책임윤리 저버린 정치
정치의 또 다른 도덕적 형식은 '책임의 윤리'다. 정치사회학자 베버(Max Weber)는 정치는 권력이라는 악마와 손잡는 것이기 때문에 직업정치인의 자질로 신념의 윤리와 함께 책임의 윤리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의 국정은 국민과 역사와 영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반(反)책임의 정치'였다.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도 참사, 채상병의 죽음에 책임의 윤리는 찾을 수 없었다. 내란 재판과 특검의 수사에서도 모든 책임을 여당의 '입법 독재' 탓으로 돌리는, 책임윤리가 사라진 파렴치한 정치의 극단을 보여준다.
세 번째로 주목해야 할 정치의 도덕적 형태는 '인정의 윤리'다. 독일 철학자 호네트(Axel Honneth)는 인정의 세 형태로 사랑, 권리, 연대를 들고, '무시와 모멸'을 인정을 위한 저항과 투쟁의 원천으로 든다. 개인과 집단과 사회에 대한 인정의 윤리는 민주정치의 도덕적 기초다. 윤석열의 정치는 하나에서 열까지 국민과 야당에 대한 무시와 모멸로 가득 차 있었다. 헌법 질서와 사법 절차의 무시는 정치의 도덕적 기초로서 인정의 윤리 없는 무도한 정치의 전형을 보였다.
공론장과 시민사회에도 무시와 모멸, 혐오와 증오의 정치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정치의 도덕적 기초는 무엇보다 인정의 윤리에서 나오는 약속, 용서, 화해와 같은 형식이 되어야 한다. 내란 이후 우리 정치에서 인정의 윤리라는 도덕적 형식은 사라졌다.
2025년 대한민국에 정치의 도덕률이 무너졌고 보편적 시민주의가 해체되었다. 게다가 내란 세력에 대한 단죄는 지체되고 있다. 내란은 끝나지 않았고 대한민국은 서로 다른 신념이 지배하는 두 국민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공공의 이성과 책임의 윤리, 그리고 인정의 윤리라는 정치의 도덕적 형식이 해체됨으로써 대한민국은 국가공동체의 근본이 사라진 위태로운 나라가 되고 말았다. 내란을 단죄하고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를 회복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무너진 정치의 도덕적 형식을 복원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정치의 도덕적 형식 복원을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정치의 도덕적 기초를 세우고 보편적 시민주의를 일으키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래서도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두 가지 과제를 떠올려 본다. 무엇보다도 내란세력을 심판하고 단죄하는 일이야말로 그들로 인해 무너진 정치의 도덕적 형식을 세우는 일이다.
MBC의
최근 조사(11월 21~22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58%가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내란이 종식되었다고 응답한 사람(29% )의 두 배다. 속도감 있는 내란종식이야말로 가장 빨리 정치의 도덕률을 세우는 길이다.
다른 하나의 과제는 정치의 도덕적 형식과 보편적 시민주의를 세우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는 일이다. 역대 민주당 정부는 국정의 도덕적 형식에서 보수정부에 비해 우위에 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대통령으로 이어진 역대 민주당 정부의 국정은 평화, 포용과 혁신, 균형과 자치를 지향한다. 공공이성과 책임, 인정의 윤리라는 도덕적 형식에서 우위에 있는 셈이다. 도덕적 형식의 우위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주도하는 데 훨씬 더 유리한 조건이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정치의 도덕률을 세우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통해 민주주의 4.0 시대를 열어야 한다. 내란 1년을 맞아 보편이 무너진 시대의 우울을 안고 끝나지 않은 내란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조대엽 사단법인 선우재 상임대표
본인
필자 소개 : 조대엽은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노동학,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사회운동 등에 깊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한국사회학회, 한국비교사회학회 등 여러 학회에서 활동했고 현재 민간 싱크탱크 선우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장, 금융산업공익재단 초대 대표 이사장, 국민경제자문회의 민생분과의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2019년에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장에 취임해 대통령 소속 9개 국정과제위원회를 총괄하는 국정과제협의회 의장으로 정부 일을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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