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04 16:42최종 업데이트 25.12.1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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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 국회에 투입된 무장 군인들.연합뉴스/AFP

"당신의 12월 3일은 어땠습니까?"

지난 1년 동안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에겐 꼭 한 번씩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그날을 빼고서 우리의 삶을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요. 만약에 12월 3일의 시나리오가 '비상계엄 성공'으로 흘러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찔한 상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정훈님은 그날 어디에 계셨는지요? 당시 저는 일본 교토 여행 중이었습니다. 단풍으로 유명한 청수사를 방문한 후,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녹인 뒤에 쉬고 있던 터였죠. 윤석열이 긴급 담화를 한다길래 "설마 하야 선언하나" 아내와 농담을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오후 10시 23분, 돌연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윤석열의 말을 듣고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내일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한국으로 갈 수는 있는 건가, 회사(<오마이뉴스>)는 괜찮은 건가. 수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국회로 모여드는 국회의원들과 시민들을 보며 마음을 졸이다가,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가결됐을 때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날 여행에서 교토 인근 오하라의 사찰 '산젠인'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음에도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비상계엄은 내 터전과 내 일상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위협이었으니까요. 허탈하고 불안했습니다. 그 와중에 발에 급격한 통증이 생겨서, 나중에는 거의 걷기도 힘들 정도가 되더군요.

몸과 정신이 모두 고장 난 상태에서, 12월 7일 여의도 탄핵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비록 발은 아팠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봉과 케이팝 합창을 보고 나니 치유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비록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으로 탄핵소추안 표결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왠지 절대 지지 않을 것 같더군요.

내란을 정쟁화한 입법·행정·사법부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은 너무나 명확하기에, 일찌감치 끝날 것 같던 탄핵 국면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지속됐습니다. 그동안 윤석열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관저에서 버티는가 하면,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판사가 초유의 '시간 계산법'을 통해 윤석열 구속을 취소하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헌법재판소 탄핵 선고일은 당초 예상보다 한참 미뤄져서 시민들의 애간장을 타게 했습니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도 대법원은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돌연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하면서 '선거 개입'에 가까운 행태를 보입니다. 그러니 '내란이 끝나지 않았다'라는 말이 계속 나올 수밖에요.

내란 사태에서 유독 기억에 남은 세 가지 장면이 있습니다. 내란을 결코 윤석열의 단독범행처럼 여기면 안 된다는 증거들이었습니다. 부도덕한 엘리트의 존재가, 법조 카르텔이,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이 내란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었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만들더군요. 내란을 두둔하고, 내란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했던 이같은 일들은 12.3 내란으로부터 1년이 지났음에도 마음을 쉽게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10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 내란 우두머리 방조 사건 2차 공판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 CCTV에 대한 증거조사가 이뤄지고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 계엄 직후인 2024년 12월 3일 10시 49분, 용산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나가려는 이상민 장관을 붙잡았다. 둘은 16분 동안 서로의 문건을 보며 협의를 했고, 이 장관은 한 총리를 보며 '씨익' 웃기도 했다. (내란 특검이 공개한 대통령실 CCTV 중)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을 비롯한 의원들이 1월 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앞에서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 1월 6일 오전 6시께, 국민의힘 의원 30여 명이 용산 대통령 관저 앞으로 모여들었다. 공수처가 법원에서 발부받은 윤석열 체포영장의 만료일, 영장 집행을 막고자 '인간방패'를 자처하며 집결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모인 국민의힘 의원은 모두 45명. 김기현 의원은 이날 "사기 탄핵이 진행되지 않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워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파면 선고 7일 후인 4월 11일 서울 서초동 사저로 가기 위해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 4월 11일 오후 5시 8분, 윤석열이 탄 차가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이후 1주일이 지나서야 그는 사저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나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차에서 내려 '과잠'을 입은 대학생 지지자들을 껴안는가 하면, "Make Korea Great Again"이라고 쓰인 빨간 모자를 쓰고 주먹을 불끈 쥐기까지 했다. 계속 그가 구속 상태로 구치소에 있었다면 보지 않아도 될 광경이었다.

엄동설한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국민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황당하고 분노가 치미는 세 개의 장면입니다. 동시에 입법·행정·사법 권력이 내란 사태에서 결합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내란을 정쟁화하거나 별일 아닌 것처럼 축소하는 이들이 있기에, 탄핵 선고와 정권 교체 이후엔 당연하게만 보였던 '내란 청산'이 자꾸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윤 어게인"이라는 섬뜩한 말

국민의힘 주최로 9월 28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열린 사법파괴·입법독재 국민 규탄대회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윤어게인'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남소연

"나는 손상되었습니다." 황정은 작가는 12.3 비상계엄 이후의 일상을 기록한 <작은 일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슴이 저릿해지는 표현이었습니다. 다들 그날 이후 몸과 마음의 어디 한 부분에 깊은 상처가 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만든 세상이, 나의 삶이, 인간의 존엄성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경험과 더불어 폭력과 억압을 통해 권력을 획득하거나 유지하려는 자들의 민낯을 목격한 충격이 너무나 컸습니다. 탄핵 국면에서 '극우'의 발호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절망스러운 지점입니다.

"윤 어게인(YOON AGAIN)"이라는 구호가 처음 나왔을 때, 저는 솔직히 웃었습니다. 헌재의 윤석열 파면 선고 직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이 공개한 옥중 편지에 써있던 글귀이니까요. 지금 막 파면된 대통령의 재출마·재집권을 주장하는 '윤 어게인'은 일종의 발악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윤 어게인"이 최근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 됐습니다. 요즘 국민의힘 주최 집회에선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구호가 됐습니다. 물론 국민의힘 의원들은 누구도 그 말을 저지하지 않고요.

그런데 이 말이 더 이상 우습게 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윤 어게인"이 하나의 '밈'(Meme,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신조어 및 콘텐츠)처럼 쓰여서입니다. 특히 10대들 사이에서도 "윤 어게인"이라는 구호는 영향력이 있어 보입니다.

"어떤 학생은 계엄으로 인한 정치 상황을 정치세력간의 갈등 정로도 이해하거나, 계엄 발동의 정당성을 대통령 입장에서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당 학생은 극단적 인식이 흘러넘치는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을 자주 접하고 있었다." (<계엄, 내란 그리고 민주주의>, p.362)

고등학교 교사 맹수용씨가 '12.3 비상계엄 이후의 수업, 그 대화의 기록'이라는 주제로 책 <계엄, 내란 그리고 민주주의>에 쓴 내용 중 일부입니다. 실제로 지난 10월엔 윤석열의 모교인 충암고 축제에서 초대 가수인 정상수씨가 "윤 어게인"이라고 외치니 일부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10대의 극우화 현상 속에서 위헌·위법한 12.3 비상계엄이 희화화되는가 하면, "윤 어게인"이라는 말의 의미조차 망각된 채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뉴스를 전하는 저도 '정치적으로 할 수도 있는 구호'라고 가끔 착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니 '윤 어게인'은 곧 '국회 병력 투입 어게인' '선관위 장악 어게인' '주요 인사 체포 시도 어게인' '언론사 단전·단수 어게인' 이런 무시무시한 위헌 행위의 축약형일 뿐..."

JTBC 이가혁 앵커는 지난 8월 21일 <이가혁 라이브>에서 "윤 어게인"이 얼마나 섬뜩한 말인지 전했습니다. "윤 어게인"의 속뜻은 "민주주의 파괴 어게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와서 우리 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걸 '당신들은 윤 어게인, 부정선거(론자)니까 안 된다고, 우리가 내칠 필요는 없는 거 아닙니까"라는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11월 19일)을 생각해 보면, "윤 어게인"이라는 구호도, 그것을 외치는 세력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듯합니다.

혐오를 이기는 광장의 '금실'

2024년 12월 21일 서울 광화문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처벌, 사회대개혁 촉구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응원봉(탄핵봉), 피켓 등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권우성

정훈님, 2022년 3월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을 알리는 <오마이뉴스>의 헤드라인 기사 제목은 '혐오가 이겼다'였습니다. 여성, 이주노동자, 노조, 시민단체 등을 혐오·배제하는 '갈라치기' 선거 전략의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말합니다. "혐오로 한 번 재미를 본 세력은 언제든 그것을 향후 통치술로 사용할 수 있다"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윤석열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모조리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최후의 정치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어려운 정치적 국면을 소통이나 정책으로 전환하기는커녕 극단적인 형태의 혐오로 뚫어내려고 한 것은, 그가 일전에 혐오를 통해 성공한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윤 어게인"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선 우선 내란 범죄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 필요하겠지만, 더불어 혐오를 무기로 삼는 극우의 팽창과 이를 이용하는 혐오 정치를 어떻게 막느냐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극우세력은 "○○ 때문에 당신의 삶이 힘든 것이다. ○○을 없애자, 근절하자"라고 호도할 것이고, 그러한 프레임이 계속 위세를 떨치는 이상 진정한 '내란 청산'도 쉽지 않습니다. 윤석열이 죗값을 치르더라도, 윤석열이 남긴 혐오의 잔재는 청산되지 않고 수많은 사람을 괴롭힐 테니까요.

결국 저는 다시 윤석열을 끌어내렸던 '광장'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광장에서 나온 약자·소수자들의 목소리들을 외면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 나가고, 혐오에 맞섰던 '연대'의 정신을 사회통합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 지금 시점에서 꼭 실현해야 할 정치적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청년들에게 광장에 참여한 동기를 질문했을 때는 '비상계엄에 대한 충격'(73.2%)이 가장 높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36.2%)라고 응답한 비율은 가장 낮았다. 하지만 광장을 경험해본 청년들은 사회대개혁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광장이 가진 '가능성'이다. 광장에서 시민들은 다양한 발언을 통해 여러 소수자, 약자의 삶과 고충을 접하고 그럼으로써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나아가 공감하게 된다."(<광장 이후>91~92p)

이재정 윤석열퇴진을위해행동하는청년들(윤퇴청) 대표가 윤석열 퇴진 집회에 참여한 청년 954명을 설문 조사해 분석한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참가자의 63.1%가 광장의 주요 요구사항 네 가지 중 1순위를 '사회 대개혁을 위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꼽았기 때문입니다(윤퇴청이 제시한 다른 요구사항들은 '내란범죄 책임자 처벌', '윤석열 탄핵 최종 완수', '탄핵 이후 국정 안정' ). '내란 처벌' 그 이상의 사회 개혁이 광장의 요구였고, 동시에 광장의 연대와 다양성의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노동자, 농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온갖 시민,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정체성으로 어떤 부침을 겪고 있든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 폭력에 관통당한 경험으로, 그 고통으로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감을 잃지 않는다면, 잊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황정은 < 작은 일기>, 186p)

'고통으로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감'이라는 말에서, 저는 문득 한강 작가가 '사랑'의 정체로 언급한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을 떠올렸습니다. 결국 우리가 광장에서 획득한 '금실'이, 민주주의를 훼손했던 이들과 윤석열이 남기고 간 혐오를 이기는 실마리가 되리라 믿습니다. 12월 3일이 모두의 가슴 속에 있는 '금실'을 되새기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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