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한강이 나오는 장면
넷플릭스
대도시 한복판에 원시적인 무인도 하나가 의연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경이롭다. 그 공간을 탄생시킨 한강은 거대한 은총이다. 한강은 고밀도 메트로폴리탄의 숨통을 틔워주는 여백이다. 만일 그 바람길이 없다면 여름에 열섬은 더욱 가혹할 것이고, 강에서 발생하던 수분 순환이 줄어 기온 편차도 커질 것이다. 그리고 폭우가 내릴 때 범람 위험이 켜져 배수 인프라 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러 산이나 궁궐들처럼 한강은 시민들의 빡빡하고 팽팽한 일상을 이완시켜 준다.
하지만 한강은 그 거대한 부피에도 불구하고 접촉면이 너무 비좁다. 자동차 도로 때문에 보행 접근로가 매우 제한되어 있고, 삭막한 콘크리트 구조물들 때문에 강변의 서정을 만끽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서울의 매력적인 장소로 별로 언급되지 않고,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한류의 새로운 기폭제가 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서울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살펴보자. 그 작품은 탁월한 음악에 감동적인 서사를 녹여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공간으로, 한옥, 골목, 성곽길, 식당, 목욕탕, 남산 등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한강이 잠깐 나오는데 철교를 지나는 전철에서 주인공들이 악귀들과 싸우는 장면이다. 아득한 배경으로 스쳐 지나갈 뿐, 중심적인 무대가 되지는 못한다. 메기 강 감독은 서울의 여러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지만, 한강은 그녀에게 그다지 인상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던 듯하다.
<케데헌>은 서울의 평범한 일상을 산뜻하게 재현했다. 그 소재로 채택된 공간들의 공통점은 '휴먼 스케일'이라는 점이다. 그 장소들은 외국인들에게 각별한 느낌을 줄 뿐 아니라, 시민들의 마음을 아늑하게 품어준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런 보물들을 보존하기는커녕 엉뚱한 공사로 경관을 망가뜨리고 있다. 종묘 맞은 편의 고층 빌딩, 광화문 광장의 '받들어 총' 조형물, 뜬금없이 등장하여 걸핏하면 멈춰버리는 한강버스.
이 모든 것은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한강버스의 부실함에 대해 비판이 일자 오세훈 시장은 "안전 문제를 정치 공세의 도구로 삼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는데, 시민의 안위를 돌보는 것이 정치의 최우선 책무라는 것을 부정하는 몰지각한 발언이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식견과 자질도 갖추지 못했음을 스스로 선언한 셈이다.
서울의 격조가 한결 드높아지기를
▲도심 속 쉼과 힐링의 장소인 한강 지류 샛강에서 맨발 걷기를 하는 시민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케데헌> 후속편이 2029년 공개를 목표로 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스태프들은 이미 서울의 여러 곳을 누비며 로케이션 헌팅을 하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샛강이나 선유도 같은 곳에 그들의 눈길이 닿기를 기대한다. 한강이 시민들에게 선사하는 여유와 운치를 읽어주기를 부탁드린다.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윤성학 시인이 '선셋 라이더'라는 시에서 포착하는 장면은 한 가지 힌트가 될 듯하다.
'해가 진다 / 원효대교 남단 끝자락 / 퀵서비스 라이더 / 배달 물건이 잔뜩 실린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 우두커니 서 있다가 / 휴대폰 카메라로 서쪽 하늘을 찍는다 // 강 건너 누가 배달시켰나 저 풍경을 / 짐 위에 덧얹고 다시 출발 / 라이더는 알지 못 하네 / 짐 끈을 단단히 묶지 않았나 / 강으로 하늘로 차들 사이로 / 석양이 전단지처럼 날린다는 것'
한강은 업무와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잠깐의 쉼표를 찍어준다. 1~4호선 지하철이 한강의 철교를 통과할 때 많은 승객이 강물과 하늘과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유려함이 우리의 고단함을 위로해 준다.
'산천은 유구한데' '고향 산천' '조국 산하'... 이런 표현에 잘 나타나듯이 한국인의 심성에서 강은 산과 대칭을 이루는 자연경관이다. 마포, 영등포, 반포, 노량진, 광진(광나루), 한강진, 압구정, 염창동 등 서울의 많은 지명이 한강을 모태로 생겨났다. 거기에 얽힌 여러 스토리는 서울의 고유한 모습이고 귀중한 정체성이다. 아쉽게도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한강의 매력을 무심하게 지워왔고, 오세훈 시장은 그 끝판왕이 되고 있다.
K-뷰티는 화장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궁궐과 산과 강이 어우러지는 도시 공간에도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코리아 브랜드가 날로 참신해지는 지금, 'K-풍경'을 다채롭게 발굴하면서 서울의 격조가 한결 드높아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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