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기후위기비상행동이 개최한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 연속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기후와 생태의 관점에서 헌법 전반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기후위기비상행동
160여 개 시민사회운동 단체의 연대 기구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올해 초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를 주제로 3차례의 연속 세미나를 진행한 바 있다. 이 세미나를 통해서 확인한 것은, 기후위기 시대 필요한 헌법개정이 환경권 조항 등과 같은 몇몇 일부 조항의 개정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후와 생태의 관점에서 국가 목표, 기본권, 민주주의 시스템 등 헌법 전반의 내용을 새롭게 개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향후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으로 기후위기 시대 필요한 헌법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기후와 생태의 관점에서 헌법 전반의 내용을 개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기후위기 해결의 정신이 헌법전문과 총강에 담아야 한다. 헌법전문에, "기후와 생물다양성 보전, 생명존중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람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확보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를 지향"할 것을 명시한다. 총강에 "대한민국은 기후위기 극복과 지구환경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명시하고, 민주국가, 법치국가, 사회국가와 함께 생태국가를 국가 원리로 제시해야 한다.
기후생태헌법에서 추구해야 할 국가의 상은, '기후/생태 안정성(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정의'가 함께 충족되는 사회다. 지구환경의 생태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전제로 한 20세기 사회복지국가의 모델은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기후위기의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사회현실을 고려할 때, 사회국가원리와 생태국가원리는 기후생태헌법 내에 함께 강화될 필요가 있다.
둘째,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광범위한 기본권 강화가 필요하다. 지난 30여 년의 환경에 대한 상황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헌법의 환경권 조항은 크게 수정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과 기후를 '함께' 누리며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명시하며, 국가와 모든 사람은 "모든 생명체와 지구환경을 존중하고 보전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기후위기의 책임과 피해가 불일치하지 않도록 하며, '기후정의'가 실현되는 방식으로 전환이 이뤄져야 함을 명시해야 한다.
나아가 환경권만이 아니라 생명권, 안전권, 노동권 등, 기후재난이 유발하는 위험과 불평등으로부터 인간다운 삶을 지킬 기본권을 폭넓게 헌법에 담아야 한다. 차별받지 않고 노동할 권리,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권리,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 식량주권과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농민의 권리 등이 그것이다.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
셋째, 기본권의 주체는 '국민'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람'으로 규정해야 한다. 나아가 (사람만이 아닌) '모든 생명체'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며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비인간 생명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의 기후위기는 자연을 인간의 개발과 이용의 '대상'으로만 여긴 결과다. 인간-자연 사이의 상호 관계성과 생태적 상호 의존성의 회복은 모든 생명체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넷째, 기후위기와 같이 그 대상이 광범위하고 현재와 미래의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참여를 적극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강화가 필요하다.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고, 국회 등의 대의기구는 다양한 민의가 비례적으로 반영되는 선거를 통해 구성되어야 함을 명시해야 한다.
기후소송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라는 청구인의 진술을 인용하며, 미래세대가 민주적 정치과정 참여에 제약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현재만이 아닌 미래 국민의 권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기후위기는 보다 심화된 민주주의 시스템을 요청한다.
다섯째, 경제 및 국토와 자원에 관한 조항의 개정도 필요하다. 현재의 기후생태위기는 기업의 자유와 성장을 우선한 경제시스템이 낳은 결과다. 따라서 경제질서는 자연 재생능력의 유한함을 고려하여 생태순환을 존중하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재산권 행사 등)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제헌헌법 제83조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한다. 각인의 경제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제적 자유보다 국민의 기본적 수요 충족과 사회정의 실현을 우선한 제헌헌법의 정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풍력, 태양력, 수력 등의 자연력과 해양자원, 산림자원 등의 천연자원은, 모두의 공동자산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존 및 이용되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헌법의 내용만이 아니라, 개헌의 과정도 중요하다.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다. 기후위기 해결은 그것을 직접 맞닥뜨리는 당사자들의 참여와 목소리가 존중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기후생태개헌은 미래세대와 비인간생명까지 포괄하는 장기적이고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기성 정치권 내의 논의에 맡겨서는 협소하고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에 갇히기 십상이다. 시민의회와 같은 참여와 숙의 과정이 개헌 절차에 필요하며, 국민발안 절차도 명시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앞 '좋은 삶'은 무엇인지
▲2019년,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 석유 시추 개발에 반대하는 와오라니 공동체 주민들이 에콰도르 정부를 상대로 한 토지 매각 중단 소송에서 승소한 직후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에콰도르 헌법의 '부엔비비르' 원칙이 인정된 중요한 사례다.
아마존프론트라인
"생명이 재생산되고 발생하는 곳인 자연, 곧 파차마마는 그 존재를 온전히 존중받고 그 생명주기와 구조, 기능, 진화과정이 유지되고 재생산되도록 할 권리가 있다." (에콰도르 헌법 71조)
2008년 에콰도르는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규정하였다. 에콰도르의 헌법은 '부엔비비르(Buen Vivir)', 곧 '좋은 삶'의 권리에 관한 내용을 별도의 장으로 담고 있다. 연구자들은 남미의 '부엔비비르' 개념이 다음과 같은 기본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곧 자연과의 조화, 원주민의 가치와 원칙의 존중, 기본적 필요의 충족, 국가의 책임으로서 사회정의와 평등,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헌법을 말하는 것은 기후위기 앞에서 '좋은 삶'은 무엇인지 묻는 것이다. 기후재난과 생태계 파괴를 유발하면서 맹목적 경쟁 논리를 앞세워 이윤과 경제성장을 좇는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인가? 기후위기 시대, 모든 이들의 '좋은 삶'을 보장하는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 부단히 질문하며 싸우는 시민들의 힘으로만 새로운 헌법은 가능하다.
[필자 소개] 황인철은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이자,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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