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최초의 농난청인 아나운서인 노희지 앵커가 2025년 11월 AUD사회적협동조합이 개최한 '소통이 흐르는 밤'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다.
노희지
노희지 아나운서는 KBS <12시 뉴스>의 생활뉴스에서 활동하는 국내 최초 청각장애인 앵커다. 그의 삶은 스스로 청각장애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그걸 긍정해 가는 과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뒤에서 불러도 듣지 못할 정도로. 어른들은 집중력이 좋다고 했으나 사실 언어가 지연되어 7년이나 언어발달실을 다니면서도 청각장애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멀리서 부르던 친구에게 답을 하지 않으니 와서 어깨를 치면서 이상하다고 하는 일도 있었고, 반장으로서 학급 회의를 진행하던 중 '복도'라는 친구의 말을 포도라고 듣고 칠판에 적기도 했다. 어느 여름날, 그는 매미 소리가 안 들렸는데 다른 친구들은 들린다는 말에 비로소 청각장애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때 동생도 청각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청각장애를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던 시기가 10년이나 이어졌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는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청각장애를 탓하며 자기혐오에 빠져들었다. 초중고 시절 겪었던 많은 일들과 상처가 떠오르면서 지나갔던 기억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흉터로 남아있었던 것을 깨닫기도 했다. 완전한 번아웃이 오던 시절 '그대가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라'라는 헬렌 켈러의 말을 떠올리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KBS에서 장애인 앵커를 선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장애 때문에 시도도 하지 못했던 꿈을 다시 떠올렸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세상과 연결되고 싶었지만 이 꿈을 떠올리는 게 너무 아팠다. 스스로조차도 '청각장애인이 어떻게 아나운서를 해?' '절대 못 해. 무모한 짓이야'라며 자신을 계속해서 깎아내렸다.
그때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은 만큼 번민하고 고뇌하며 고난을 뛰어넘는 자는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니체의 문장을 보면서 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아나운서 준비는 거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느낌이었다. 'ㅅ' 발음은 공기를 내뱉는 소리라서 발음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서소문 사거리' 같은 발음은 너무 부정확해서 볼펜을 입에 물고 될 때까지 반복하면서 입꼬리에 피가 날 정도로 수백 번씩 연습했다.
또 중요한 건 발성이었다. 발성이 잘되어야 발음도 잘 되기 때문에 발성 훈련을 위해 소리를 울리면서 복압을 기억하는 식으로 매일 연습하다 보니 오죽하면 부모님이랑 동생이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고 불평할 정도였다.
하지만 노 앵커는 피나는 이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는 셈이었다. 그가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 깨달은 게 하나 더 있다. 장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느끼고, 말하게 하는 하나의 개성이라는 거다.
장애는 멈추게 하는 벽이 아니라 새롭게 다시 시작하게 만들어준 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 문을 여는 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설 수 있었다.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청각장애를 극복한 사람이 아니라, 청각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됐다. 수용의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리더라도 괜찮다. 결국 자신을 받아들이는 걸 멈추지 말아야 한다.
청인 위주 소통방식을 당연시하는 세상
"알아듣지를 못했는데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라서 알아들은 척하고 미소 지으면서 그냥 넘기기도 했어요."
"보청기를 끼고 있으면 여러 사람들이 중첩되어 이야기하는 걸 잘 알아듣기 힘들고, 그래서 여러 명이 어울릴 때 소위 스몰 토크에 참여하기가 어려워요."
이날 연사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알게 된 농난청인들의 애로사항이다. 농난청인들은 휠체어나 흰 지팡이처럼 얼른 보이는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외관적으론 장애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장애를 알게 되면서 여러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소민지 작가처럼 난청이 있는데도 처음엔 수어를 배우지 않고 입술을 읽어 뜻을 이해하는 구어를 배웠다가 나중에 수어를 배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 노희지 앵커처럼 장애가 있는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게 되면서 당사자도 가족도 장애 수용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농난청인들의 소통 이슈는 '말로 하는 청인의 소통'을 우월하게 보는 사회적 인식에서 시작해 본인의 정체성 이슈로 바로 이어진다. 소 작가와 노 앵커는 농난청인 정체성을 후에 깨달으면서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자신 있게 도전하게 된 사례다.
농난청인들의 이야기는 청인 중심의 세상에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두 연사의 이야기를 통해 청인 위주의 소통방식을 당연시하는 '소통이 흐르지 않는 세상' 자체가 실패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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