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28 13:13최종 업데이트 25.11.2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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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지난 25일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후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공동여당인 일본유신회가 자민당과의 개헌 논의에서 국방군 설치를 주장했다. 지난 27일 자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유신회는 이날 '조문(條文) 기초위원회'에서 헌법 제9조 제2항을 삭제하거나 아니면 국방군 설치를 명기할 것을 요구했다.

전쟁 포기를 선언한 제9조 제1항에 뒤이은 제2항은 "제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은 보유하지 아니한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전쟁 포기 규정인 제1항을 그냥 둔 채 군대 보유를 금지한 제2항을 없애거나 아니면 국방군 설치를 명기하는 조항을 신설하자는 것이 유신회의 주장이다. 전쟁 포기를 선언하더라도 군대를 보유할 수는 있으므로, 일단은 전쟁 포기 선언의 폐지보다 공식 군대의 보유 쪽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 유신회의 모습이다.

20년 전부터 '헌법 수정' 생각한 다카이치

<아사히신문>은 유신회의 제안에 대해 자민당 일부에서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 논의의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공식 군대를 희망한다는 점에서는 유신회나 자민당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이 점은 2005년 당시 중의원 총선을 석달 앞둔 3선 경력의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의원이 그해 6월 8일 개인 홈페이지에 게시한 '일본국헌법 제9조 개정 사안(私案)'에도 나타난다. 그는 분케이슌주(文藝春秋) 출판사가 발행하는 <쇼쿤!(諸君!)> 6월호에도 기고한 글이라면서 새로운 헌법 제9조에 이런 내용들이 담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1항: 일본국은 국가 고유의 권리로 자위권을 갖는다.
제2항: 일본국은 국방군을 보유한다.

20년 전에 다카이치가 쓴 글에도 나타나듯이 일본 극우세력은 자위대가 아닌 국방군을 희망한다. 극우파가 주도하는 자민당이나, 그 자체가 극우정당인 일본유신회나 이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다만, 지금의 정세가 자민당을 다소 움츠리게 만들 뿐이다.

지난 7일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라는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으로 인해 중일관계가 험악해졌다. 여기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의 24일 전화통화에서는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라고 말하고, 다카이치 총리와의 다음날 통화에서는 "대만 문제를 갖고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라며 중국을 두둔했다. 이런 분위기이므로 지금 당장의 개헌 논의에서 자민당은 다소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자위대는 실질적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군대와 다를 바 없지만, 공식 군대가 아니다. 비상시에 군인은 출동을 거부할 수 없지만, 자위대에서는 다르다. 일본 헌법학자 상당수는 전쟁 포기를 규정한 제9조 제1항을 근거로 '자위대원이 출동을 거부한 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국가가 패소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자위대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강제력은 일반적인 군인-국가 관계와 똑같지 않다.

결정적으로, 자위대는 공식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방어나 평화유지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자위대라는 틀은 일본군이 보다 공격적으로 되는데 한계를 부여한다. 대표적 극우 정치인인 다카이치 사나에가 이끄는 지금의 일본 정부는 이런 한계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완전한 의미의 군대는 아닐지라도 자위대는 세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전범국인 일본이 이런 군사력을 보유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이같은 모순은 한국전쟁에서 기인한다. 이 전쟁은 미국이 일본의 군사력을 활용하는 명분이 되는 동시에, 일본이 미국의 요청을 빌미로 사실상의 군대를 재건하는 발판이 됐다.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를 창설하는 법령이 공포된 것도 한국전쟁 초반인 1950년 8월 10일이다. 한국군이 낙동강전선으로 내몰린 다급한 상황에서 일본 재무장 작업이 진행됐던 것이다.

<한일군사문화연구> 2023년 제37집에 실린 최윤철 상명대 교수의 논문 '한국전쟁에 동원된 일본의 활동 고찰은 "전쟁 이전까지 일본을 전략기지화하는 데 합법적인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미군이나 유엔군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 산업시설을 부흥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우게 되었"다고 한 뒤 일본 정부가 한국전쟁을 활용하는 장면을 이렇게 기술한다.

"전쟁 발발 직후(1950.7.14.) 요시다 수상은 한국전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일본이 군사력을 이동하는 데 미국과 협력할 것이며, (중략)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한국전쟁이 일본의 민주주의 수호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다'라고 표명하면서, 일본 정부는 헌법이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미군이 요구할 경우 협조할 것임을 밝혔다."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가 일본 민주주의 수호와 직결된다는 명분하에 자위대라는 사실상의 군대를 일으켰다. 지금의 일본 역시 '대만 유사시는 일본의 존립위기사태'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일본의 대만 유사시 운운이 국방군 건설의 '합법적인 근거'가 될 가능성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동아시아의 위기, 국방군 신설 노리는 일본

지난 2019년 4월 21일 중국 해군 창설 70주년을 맞아 열리는 국제관함식 참가 차 산둥성 칭다오항에 입항한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스즈쓰키'호에 달린 욱일기 옆에 수병들이 도열해 있다.연합뉴스

대만 위기는 대만과 중국의 위기에 그치지 않고, 최근 미국 내에서 강조되듯이 미국의 태평양 안보와도 직결된다. 동아시아인들은 태평양 너머를 동부전선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대서양 쪽에서부터 서쪽을 향해 진격하며 지금의 땅을 차지한 미국인들은 태평양 너머를 지향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

'서부 진출'이라는 미명하에 전개된 서부 침략을 통해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으며 태평양 연안에 도달한 미국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서부 침략을 계속했다. 미국은 인디언과의 전쟁이 종식된 지 12년 뒤인 1898년부터 태평양 침략에 나섰다. 미국은 그로부터 불과 2년 사이에 하와이·필리핀·사모아섬·웨이크섬을 점령해 태평양 지배권을 확보했다.

이 경험은 태평양과 미 본토가 안보상으로 분리돼 있지 않으며 태평양이 군사적으로 그리 넓지 않다는 인식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줬다. 미국이 한반도-오키나와-대만-필리핀-괌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게 된 것은 이런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대만이 중국에 점령될 가능성이 높아지면 '서부전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국방군 보유를 지지 혹은 추동할 수 있다.

일본 역시 대만이 중국에 넘어가면 중동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대만이 넘어가면 남중국해뿐 아니라 동중국해에서도 중국의 위세가 강해진다. 이는 일본의 외교·안보는 물론이고 대외무역에도 지장을 준다. 그래서 대만 유사시는 일본 개입의 명분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위대 폐지 및 국방군 신설의 명분이 되고도 남는다.

대만 유사시는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이를 가정한 혹은 이에 대비하는 움직임들은 동아시아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중국군이 대만을 포위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이제는 낯선 일이 아니고, 미국이 대만 문제를 매개로 한·미·일·필리핀 제휴를 확대하는 것도 낯선 일이 아니다. 대만 유사시를 빌미로 일본이 국방군 출범을 논의할 수 있는 토대는 이미 마련돼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일본유신회가 국방군 보유를 주장하는 것도 주목할 일이지만, 20년 전에 중의원 복귀를 꿈꾸며 국방군 창설을 외쳤던 다카이치 사나에가 지금은 총리가 돼 있다는 사실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중국을 상대로 공격적 행보를 걷는 다카이치 총리가 일본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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