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석의 자서전에 담긴 일제 헌병의 고문 모습.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일제 지배에 학을 떼게 된 김주석은 열여덟 살 되던 해의 8월 15일에 "소리 높히 만세를" 외쳤다.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항복 선언이 방송된 12시 이전에 해방 소식을 들었다. 그날 오전 밤중에 "대문을 차면서 부락 청년 몇이가 내 집으로 달려"왔다면서 "주석아 이제 살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순간을 그는 "손가락에 불을 켜어 하늘에 올라갈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일제에게 당한 고통, 예술로 승화시킨 어른
이날 그는 해방 이후의 첫 작품을 남겼다. '도화지'는 일장기였다. "나는 제일 먼저, 잃었던 우리나라 국기를 왜놈 국기 위에다 먹칠을 하여서 시급하게 만들어 대문 앞에 게시하고 소리 높히 만세를 외쳤다"고 <자서전>에 썼다.
그 후 그는 일제 지배의 아픔과 상처를 글과 그림에 담았다. <자서전>에도 나타나듯이 그는 일제를 증오했다. 그러면서도 그때의 고통을 입에 담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만 꾸준히 알렸다. 한과 고통을 문학적·예술적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관한 우리 사회의 역사교육은 그때의 시련을 남들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 알리는 과정이다. 김주석의 <자서전> 집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교내 미술대회에서도 상을 많이 탔다. 그림을 구경하러 서울의 전시회에도 가보고 미술 서적도 탐독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경성전기학교 토목과에 진학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그때 못다 이룬 꿈을 해방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펼쳤다. 교원시험과 미술교사시험을 통과한 뒤 마산여중과 제일여중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때부터 40년 이상 교원 생활을 하면서,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불편한 몸으로 학생 지도뿐 아니라 지역미술 발전에도 기여했다.
2020년에 경남교육청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경남의 역사적 인물 3인'으로 주기철 목사 및 한글학자 이윤재와 더불어 김주석을 추천한 것은 그 때문이다. 경남교육청은 지역미술에 대한 그의 공헌을 그해 4월 10일자 네이버 블로그 글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김주석 선생은 자유상상화라는 장르를 개척했고, 1955년 마산 최초 미술단체 흑마회 창립회원으로 전국 최초로 가두 전시회를 개최하며, 1960년 마산미협 지부장을 맡아 지역미술을 이끌었습니다. 미술 교육자이기도 한 그는 1949년부터 1990년까지 중등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습니다. 바로 김주석 선생을 '영원한 미술선생님'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가 개척한 자유상상화 기법은 어떤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하고 붓을 드는 게 아니라, 붓이 움직이는 대로 그림을 그려 나가는 기법이다. 생각나는 대로 선과 점을 그린 뒤 거기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완성하는 식이다. <미술교육논총> 1997년 제6집에 실린 오창성 마산시 진전초등학교 낙동분교장의 논문 '자유상상화 지도에 관한 연구'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유상상화란 글자 그대로 자유롭게 그리는 상상화라는 말로 아무런 부담과 형식·기법에 구애받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내용으로, 의미가 있건 없건 직선이나 곡선을 자유롭게 그린 다음 그 선을 보고 연상되는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을 통하여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길러질 것이며, 그다음 작업으로 배경을 그리고 장식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채색을 하거나 자료를 이고 긁고 뿌리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질료를 이해하고 미적 체험을 할 수 있다."
'뭘 그릴까' 고민하지 않고 그리기에 착수하는 것이 자유상상화 기법이다. 어떻게 글을 쓸까 고민하지 않고, 머릿속의 생각을 곧바로 글로 풀어내는 것과 비슷한 면도 있다.
제자인 화가 전보경은 미술시간을 두려워했던 자신이 그림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김주석의 지도 방식 때문이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김주석은 학생들에게 "줄 한번 그어보라"라고 한 뒤 "어, 잘하네" "이 선 하나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며 선과 선에서 연상되는 것을 그리도록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다들 미술시간을 기다리게 됐다고 한다.
김주석은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고 승화시킨 독특한 수도자다. 그는 일제의 만행과 자신의 상처를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고발했다. 그는 글과 그림을 통해 이 일을 수행했다. 글쓰기와 더불어 미술을 통한 이 같은 치유 활동은 그 자신뿐 아니라 제자들과 지역사회 그리고 세상의 미술 발전에도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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