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현지시간) 중국과 대만 경계가 맞닿아 있는 금문도에 세워진 군인 동상 위로 대만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도쿄와 베이징이 대만을 사이에 두고 거친 말을 주고받는 사이, 워싱턴과 베이징은 관세와 희토류를 두고 다시 전화를 잡았다. 동북아의 지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갈라지고 있는데, 한국 언론과 정치 담론은 여전히 '중국 편이냐, 일본 편이냐'는 낡은 질문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 대만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양자택일이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축이 교차하는 구조로 읽어야 한다. 하나는 대만을 민주 헌정 체제와 권위주의 체제의 경쟁으로 끌어올리는 가치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과 일본, 미국이 서로를 군국주의·팽창세력으로 규정하면서, 각자 자신의 군사적 행동을 '자위'와 '현상 유지'로 정당화하는 안보 갈등이다.
대만 내부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언어는 첫 번째 축에 가깝다. 최근 몇 차례 선거에서 대만 지도자들은 "두 강대국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민주 헌정 체제를 지킬 것인가 권위주의로 되돌아갈 것인가의 선택"이라고 반복해서 말해 왔다. 중국의 사이버 공격과 가짜뉴스, 경제 압박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권위주의의 공격"으로 서술되고, 대만은 "세계 민주주의 방어선"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
그 반대편에서 중국은 두 번째 축의 언어를 빌려 자신을 정당화한다. 전후 처리, 식민지 청산, 영토 완정이라는 말로 대만을 "반파시즘 전쟁의 마무리"에 묶어 세운다. 여기에서 이미 가치의 언어와 안보의 언어가 서로 다른 층위에서 교차하며, 각자의 정당성을 부풀리는 프레임 싸움이 시작된다.
중국의 주장 가운데 "대만의 복귀는 2차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핵심 과제"라는 문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사실 하나를 빼먹고 있다. 오늘의 대만 분단 상태를 만든 직접 원인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 내부의 국공내전이다.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난 뒤,국민당 정부는 잠시 중국 대륙을 통치했지만, 곧 공산당에 밀려 대만으로 퇴각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한 번도 대만을 실질 통치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중국은 카이로 선언, 포츠담 선언, 연합국의 결정을 강조하며 "이미 국제사회가 인정한 귀속이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태"처럼 말한다. 내전과 체제 분단의 책임을 전후 국제질서라는 언어 뒤에 숨기고, "역사 수정"이라는 비난을 먼저 던지는 쪽이 오히려 자기 역사를 지우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또 한편에서 "군국주의의 부활을 경계한다"는 이름으로 일본을 강하게 비판한다. 항일 전쟁의 기억과 전쟁 피해를 강조하며, 일본의 어떤 군사적 발언이나 제도 변화를 곧바로 '전전(戰前) 회귀'와 연결시킨다. 문제는 현재 동아시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확대하고 해양 질서를 재편하려는 주체 역시 중국이라는 점이다.
대만해협 중간선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봉쇄형 연합 훈련으로 섬을 포위하는 연습을 반복하며, 남중국해 암초를 군사기지로 바꾸는 행위는 형식상 "평화 통일" 언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과거의 일본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언어가 현재의 중국 팽창주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가치와 전략, 전술이 어긋난 일본

▲지난 1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의 위치는 이와 또 다르게 어긋나 있다. 평화헌법과 전쟁 포기 조항,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 대한 충성은 일본 스스로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자기 이미지다. 그러나 2022년 국가안보전략 개정 이후 일본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의 2퍼센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적 기지 타격 능력에 해당하는 '반격 능력'을 공식화했다.
대만해협의 안정은 일본 안보의 핵심이라는 문구가 국가 전략 문서에 들어갔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국회 답변에서 "대만에 대한 공격이나 봉쇄가 발생하면 일본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이는 단순한 말실수라기보다는, 그동안 문서와 내부 논의에서 다듬어 온 논리를 바깥으로 내보낸 순간에 가깝다.
여기서 일본은 가치 축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서 있지만, 행위 축에서는 군사적 역할을 넓히며 현상 유지와 팽창 사이의 경계선을 조금씩 밀어 올리고 있다. 중국의 위협을 강조하는 것은 국내 정치와 국제정치 양쪽에서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안보 불안을 느끼는 유권자를 결집시키고, 헌법 해석 확대와 무기 증강을 정당화하며, 미국에는 "우리도 전면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며 더 깊은 안보·정보 협력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평화헌법을 상징으로 유지한 채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는 이중구조가 일본의 가치와 전략, 전술이 어긋나 있는 지점이다.
미국은 더 큰 무대를 배경으로 대만과 동북아를 바라본다. 민주주의, 인권,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내세우며 대만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함께 "자유세계의 전선"에 올려놓는 것이 최근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공통된 언어다. 의회 연설에서 대만은 더 이상 작은 섬이 아니라, 반도체와 해상 교통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한꺼번에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 전략의 중심에는 "중국을 장기 경쟁자로 관리하면서도, 경제적 비용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계산이 놓여 있다. 관세, 희토류, 핵심 기술 통제를 둘러싼 일련의 합의와 유예 조치는 완전한 단절(decoupling)이 아니라, 위험을 분산, 축소하려는 관리 전략(de-risking)을 지향하는 미국의 속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동맹이 제공해 주는 완충 장치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일본이 대만 문제의 최전선을 자임하며 중국과 정면으로 부딪치겠다는 태도를 보일수록, 미국은 표정 관리 하면서 경제·자원 전선에서 한발 물러나 숨을 고를 여유를 얻는다.
대만해협에서 직접 군함을 마주 세우지 않아도, 자국 의회를 통해 강경한 메시지를 보내고 동맹과의 연합 훈련을 확대하는 것만으로 억지력을 유지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언어 뒤에서, 미국은 여전히 자기 힘과 이익을 우선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그 틀 안에서 대만과 일본, 한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배치된다.
한국의 자리는 어디에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별장인 마러라고로 향하는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렇게 볼 때, 중국, 일본, 미국 모두 가치와 전략, 전술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중국은 전후 질서와 반군국주의를 말하면서 국공내전의 후과와 현재의 팽창을 감춘다. 일본은 평화헌법과 규범을 입에 올리지만 군사적 역할 확대를 통해 동북아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전선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거래 중심의 자국우선주의(America First) 아래에서 동맹 부담을 늘리고 자국의 비용을 줄이려 한다. 이 세 갈래의 어긋남이 대만을 중심으로 교차하고 있는 것이 지금 동북아의 풍경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리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한국 사회는 너무 쉽게 "친미냐 반미냐, 친중이냐 반중이냐, 친일이냐 반일이냐"라는 진영 언어로 미끄러진다. 이 구조에서는 대만 문제도 곧바로 "민주주의에 연대할 것인가, 중국을 자극하지 않을 것인가"의 이분법으로 축소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복잡한 정세에서는 먼저 가치 원리, 전략적 원칙, 전술적 행동을 나누어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 침략전쟁 반대와 같은 가치 원리는 바꾸지 말아야 할 기준이며, 중국의 권위주의와 인권 탄압, 일본의 역사 부정과 군사주의 회귀 가능성은 이 기준에서 동시에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다음에 물어야 할 질문은 '누구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막고 무엇을 지키겠다는 나라가 될 것인가'이다. 한국이 붙들어야 할 상위 원칙은 전쟁 방지, 민주 헌정의 유지, 그리고 어느 한 진영에도 종속되지 않는 자율성이다. 이 원칙이 선 뒤에야 비로소 동맹과 협력, 거리 두기와 비판의 수위가 결정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한미동맹, 중국과의 경제 관계, 일본과의 협력, 대만해협 문제는 서로 다른 시험대다. 한미동맹을 유지한다는 말은 미국의 모든 대외 전략에 자동 편승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이 정한 원칙의 범위 안에서 협력과 거절을 가를 수 있다는 뜻이어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 역시 최대 교역 상대라는 이유만으로 침묵을 택할 것이 아니라, 군사 팽창과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국제 규범의 언어로 분명히 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한국의 기준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면서 다른 중견국들과의 연대 속에서 불필요한 오해와 압박을 줄이는 전략적 여지도 커진다.
일본과의 관계도 같은 틀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지우지 않으면서, 동북아에서 전쟁을 막고 해양 질서를 안정시키는 데 일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계산해야 한다.
지금 한국이 필요한 것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다음 방문지인 튀르키예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순방 기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모든 원칙 위에서 대만 문제에 대한 입장을 세워야 하며, 대만해협에서는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되 어느 나라의 군사 전략 언어도 그대로 따라 말하지 않는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에 비로소 전술이 정해진다. 어떤 유엔 결의에 찬성하거나 기권할지, 중국의 행동을 비판할 때 체제 전복의 수사가 아니라 국제법과 해양 질서의 언어를 쓸지, 일본의 발언에는 감정이 아니라 규범과 사실의 차원에서 어떻게 응답할지 같은 구체적 선택이 여기에서 갈라져 나온다.
대만을 두고도 무력 사용 반대와 평화적 해결, 대만 시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감은 분명히 밝히되, 그것을 곧바로 새로운 냉전 서사와 군사적 전면 개입 약속으로 연결하지 않는 절제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이 필요한 것은 어느 진영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틀로 이 지역의 갈등을 읽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대만을 둘러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가치 축, 그리고 군사·영토 팽창 대 현상 유지의 안보 축을 분리해서 보고, 각 나라가 그 두 축 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냉정하게 그려 볼 때 비로소 우리의 자리가 보인다.
진영의 언어가 아니라, 가치와 전략, 전술을 나누어 생각하는 언어를 갖는 것, 그것이 동북아의 다음 위기를 준비하는 한국 외교와 언론의 첫걸음이어야 한다. 이 틀을 손에 쥐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남의 게임판 위에서 편을 고르는 존재가 아니라, 이 지역 질서를 해석하고 질문을 되돌려 줄 수 있는 하나의 주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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