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에 수록된 울산 현대중공업 소각장 굴뚝 사진. 2008년 12월, 현대미포조선 생산직 김순진 씨와 민주노총 울산본부 이영도 씨가 이 굴뚝에 올랐다.
문선희 사진작가, 가망서사 출판사
이 책은 고공농성이 일어난 자리들을 34개 사진으로 담아낸 '빛' 챕터를 앞머리로 삼는다. 고공 농성 현장을 촬영한 계기와 작업 과정을 알리는 '물결' 챕터가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서울경찰청 앞 교통통제 CCTV 탑부터 서울 강남역 CCTV 탑에 이르기까지, 고공에 올랐던 노동자들의 여정과 기업 행태를 추적하는 '윤슬' 챕터로 마무리를 짓는다. 나는 이 사진집을 펼친 맨 처음, '무력감'을 느꼈다. 기업명과 투쟁 구호 표식이 제거된 채 나타난 단정한 구조물 사진들에, 그만 캄캄해졌다.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촬영 구도였다. 일련의 고공 농성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와 자세를 드러낼 수 있는 구도는 어떤 것일까? 그들이 건너온 시간에 대한 정중한 관심을, 그럼에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실제적인 거리감을, 아무리 노력해도 감히 온전한 이해에 가닿을 수 없음을 어떻게 고백할 것인가."
-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 '물결' 챕터 중에서
무력감, 모종의 성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난생 처음의 이미지들. 신기하리만치 막연하고 막막했다. 하늘에서 "그들이 흘린 눈물이 바닷물처럼 짜다는 사실"을 은유하고자 작가는 밤바다를 장노출 기법으로 촬영해 고공 농성장을 찍은 사진들 바탕으로 삼았다.
그렇게 고요한 밤바다 사진 위에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송전탑이, 초로의 경비원이 섰던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굴뚝이 세워졌다. 작가가 작업한 이 사진들은 순교자들의 뒷모습처럼 숭고하게 다가온다. 사진들로만 구성된 1장엔 촬영 장소를 나타내는 정보가 일체 없다. 그리고 직면하게 된다.
굴뚝에 오른 사람이 살았던 '시간'에. 식구와 동료가 있는 발 아래를 내려다봤을 그 막막한 기분에. 독자는 한 사람이 견뎠을 고행에 잠시나마 동참함으로써 고공 농성자들이 겪은 시간에 공명하게 된다.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막막함에 마음을 붙들려 정중히 감상하는 마법에 빠진다.
[감상 포인트 ②] 외로움과 고립의 섬, 직시하기
필자에겐 사진 비평을 하는 전문적 감각이 없다. 그러나 폐부를 찌르는 이 서늘하고 고요한 무력감 다음으로 느낀 감각이 '외로움'이었음을 고백한다.
롤랑 바르트는 <밝은 방>에서 사진에서 나타내는 사회·정치적 정보를 스투디움(stúdĭum)이라 말하는데, 그와 대치되는 푼크툼(punctum)은 "찔린 자국" "작은 구멍"을 뜻한다. 즉, 사진을 볼 때 느끼는 여운이나 자극을 말하는데, 이 책에 실린 사진 모두가 노동자가 기거했던 명확한 장소(정보), 즉 물질 세계로 느껴져 작가의 사진들이 차라리 스투디움이라는 물질로 쌓아 올린 상처로 다가왔다.
사진 속 부당해고에 맞섰던 노동자들은 고행을 마치고 이제 땅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최후 수단으로 올랐던 꼭대기들은 대부분 그 자리 그대로 존재한다. 즉, 고공농성자들이 올랐던 흔적이 지워졌음에도 그곳에서 버틴 존재를 끊임없이 소환해내는 역설이 이 사진들을 바라봄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그 물질의 현현이 선명하여 유난히 가슴을 찌른 사진이 있다. 바로 <서울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전광판> 사진이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에 수록된 서울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전광판 사진. 2015년 6월,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 한규협 씨가 오른 곳이다.
문선희 사진작가, 가망서사 출판사
2015년 6월 11일, 기아자동차 노동자 최정명, 한규협씨가 이 자리에 올랐다. 고공에 오른 두 사람은 기대를 걸었다. 사내 하청 직원의 불법파견 인정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려 농성을 결심했는데, 인권위 건물에 오르면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예상한 것. 그러나 당시 인권위 건물에 설치돼 있던 전광판 광고업체와 마찰을 빚었고, 생존에 필요한 음식 반입조차 금지 당해야 했다. 인권위는 침묵으로 일관하다 사회적 비난이 일어나자 그해 8월 15일이 돼서야 두 사람에게 식사를 올려보낸다(관련 기사 :
"농성자 생명권 우려" 한발 늦은 인권위원회).
이 내막이 쓰인 셋째 챕터 이야기를 읽고 앞쪽에 배치된 옥상 전광판 사진을 다시 찬찬히 바라보자. 수천 개 인권위 건물 창문이 또렷한데, 그 속에서 마치 다른 세계에 존재하듯 일했을 수천 명 직원들이 가만히 그려진다. 온갖 더위와 분쟁에 시달렸을 두 노동자의 싸움이 어느 허허벌판보다 외로웠음을 짐작하게 된다.
누군가 꼭대기에 올랐던 건물이, 또렷한 물질로 이뤄진 우리의 현실이, 싸우는 사람의 현실을 극명하게 비춰 보인다. 그곳은 사람을 믿어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이 섬처럼 버틴 곳이다.
[감상 포인트 ③] 겸허한 관찰자에서 기억하는 참여자 되기
본문 50쪽에 실린 강남역 CCTV 탑은 김용희씨의 거처였다. 경남에서 삼성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가 1991년에 해고된 그는 고투 끝에 2019년 6월,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내다보이는 강남역 CCTV 탑에 오른다.
예순을 한 달 앞둔 날, 그는 어떤 마음으로 난간을 붙들고 서울 한복판 공중으로 향했을까. 25미터에 달하는 원형 철제 바구니에서 새우잠을 자며 버틴 그는 2020년 5월 29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335일을 버틴 결과였다. 그해, 삼성전자는 무노조 경영을 끝내겠다고 발표한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에 수록된 서울 강남역 CCTV 탑 사진. 2019년 6월, 삼성테크윈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가 예순을 한 달 앞두고 이곳에 올랐다.
문선희 사진작가, 가망서사 출판사
캄캄한 발밑을 내다보며 품는 소망은 가족들과 밥 먹고, 보고 싶은 영화 한 편 보는 것. 고공 농성을 했던 사람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위시리스트다. 이 책들엔 그것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외로움이 사진마다 잠잠히 스며 있다. 그리고 독자는 그 짙은 인내에 겸허한 관찰자가 되어 목격한다.
그들이 버티고 섰던 건물의 아름다움을. "여름엔 화상을 입고 겨울엔 동상을 입"히던 건물의 올곧음을. "고압 전류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저릿저릿한 통증"에도 무너지지 않고 직선으로 쭉 뻗어 인내했던 그들 정신의 성소를.
그러니, 그것은 기업의 것이 아니라 동료와의 약속을 지키려 수십 미터 높이에서 비바람을 맞아낸 노동자들의 것이다. 그리하여 책에 실린 서른네 곳 사진들에는 꼭대기에 오른 이들의 꿋꿋함이 서려 있다. 그들은 출근하는 마음으로 어느 날 꼭대기로 올랐고, 해고된 동료와 함께 살겠다는 책임감으로 퍼렇게 밀려오는 고독을 떨쳐냈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돈키호테를 무수히 목격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진지하게 말하고, 이길 수 없는 적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사람들. (중략)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쓰는 사람들. 각자 장르가 다르더라도 한 발 한 발 내딛는 힘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 '에필로그' 중에서
벼랑에 몰린 사람이 아니라, 벼랑이 되어 기꺼이 자기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투지가 이 책에 스며 있다. 고공농성을 마친 사람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옵티칼 복직투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고진수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이 부당 해고에 맞서 꼭대기에 오른 지 300일이 다 되어간다.
아름답고 위태로운 정신이 아침마다 깨어나는 소리가 해와 함께 떠오른다. 문선희 작가가 사진에 실어 보낸 희망만큼, 그 빛을 뿜어내는 사람들을 따라 아침을 시작할 것이다. 이 등대에 사람이 있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
문선희 (지은이), 가망서사(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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