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베를린자유주간 동안 국제회의장을 가득 채운 자유수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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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이 새삼스럽게 자유라는 팻말을 높이 치켜들었다. 11월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달이고 그래서 자유의 달로 기념된다. 하지만 그게 36년 전이다. 그사이 베를린은 젠트리피케이션과 관광객, 그리고 클럽과 스타트업의 도시로 더 유명해졌다.
그런 베를린이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제1회 '베를린 자유 주간'을 성대하게 열었다. 100개 넘는 행사, 50개국에서 온 130명의 반체제 인사들, 그리고 전직 대만 총통까지 왔다. 베를린, 왜 이러는 거야?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약 6%만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충격적인 조사 결과다. 15년 전만 해도 12%였는데 그 사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얘기다. 인류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들이 증가할 뿐 아니라 독재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쉬쉬하기는커녕 서로 어깨를 걸고 네트워크까지 형성했으며 뻔뻔하고 시끄럽게 국제 여론을 장악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민주국가들 사이에 이에 대항하여 스크럼을 짜야 한다는 자각이 온 것으로 보인다. 실은 매우 절박한 상황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번 행사의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 니카라과 야당 지도자 펠릭스 마라디아가, 이란 여성인권운동가 마시 알리네자드, 체스 천재에서 크렘린 비판자가 된 가리 카스파로프. 이들은 본국에서 수감, 고문, 망명을 겪으면서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투사들이다.
앞으로 베를린에 세계자유회의 본부를 둔다니, 이건 분명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베를린이 자유세계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베를린은 진심인 것 같다. 진심이어야 할 것이다. 1989년의 영광을 박제하는 대신, 자유 투쟁이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는 자각이 온 것이다.
솔직히 이런 야심은 좀 놀랍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조용한 외교'를 선호하는 나라다. 인권 문제에는 원칙론적 입장을 대단히 강하게 표명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큰 시장과는 실리적으로 협상한다. 그런 독일이 반체제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초대해서 권위주의 정권 전선에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의 '시대전환' 선언처럼, 독일이 국제 정치 무대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 보겠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물론 그게 얼마나 지속될지, 그리고 얼마나 일관될지는 또 다른 문제다. 다만 독일은 무언가 한번 시작하면 뿌리를 뽑는 성격이 있다. 이번에도 그러기를 바란다.
위기의식 느끼고 있는 개최국 독일

▲베를린 자유 주간에 성시를 이루었던 대만 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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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대만이었다. 차이잉원 전 총통이 주요 연사로 왔고, "독재의 그림자는 얼마나 긴가? 독일과 대만의 비교"라는 패널도 열렸다. 타이베이 대표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심지어 대만 야시장까지 열려 성시를 이루었다. 자유는 선언만이 아니라 일상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많은 사람들이 야시장을 방문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긍정적인 댓글을 남겼다. 거창한 회의실보다 야시장에서 맺은 결속이 더 끈끈한 것 아닐까?
이번에 대만이 주목받은 이유는 명확하다. 대만은 지금 민주주의와 제국주의 갈등의 최전선에 서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이웃의 압박 속에서 민주적 가치를 지켜내야 하는 대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독일과 대만을 한데 묶어 서로 비교한 것이 흥미롭다. 독일은 과거의 독재를 청산하고 자유와 통일을 이루었다. 반면 대만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독일과 대만의 어깨동무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자유는 한 번 쟁취했다고 끝이 아니다. 방심하면 언제든 잃을 수 있다. 이건 우리 한국인들이 여러 차례 겪어봐서 누구보다 잘 안다.
베를린이 대만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지정학적 선택이기도 하다. 유럽이 인도-태평양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지금, 대만은 단순히 동아시아 이슈가 아니라 글로벌 민주주의 방어선이다. 물론 이게 얼마나 일관되게 유지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독일이 경제적 이익과 가치 외교 사이에서 줄타기를 얼마나 잘할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행사에 한국이 초대되지 않았다고 섭섭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칭찬으로 해석해야 한다. 자유 민주주의가 실천되고 있는 국가로 인지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에는 위기 국가들만 초대되었다. 개최국 독일도 지금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베를린 주요 언론들의 반응은 미묘했다. "야심 찬 시도"라는 긍정적 반응이 우세했지만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았다. 첫째, 악셀 슈프링어 같은 대형 미디어 그룹과 정치재단들이 주도하는 행사가 얼마나 다원적일 수 있겠냐는 의문을 낳았다. 맞는 말이다. '자유'를 논하면서 특정 정치-경제 세력의 의제만 대변한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헤게모니다.
둘째, '자유' 개념이 너무 서구-자유주의적으로만 해석될 위험을 지적했다. 언론들은 사회 정의, 이주민, 경제적 불평등 같은 문제가 주변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것도 정확한 지적이다. 자유를 오직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으로만 정의한다면, 그건 자유에 대한 협소한 이해다. 진짜 자유는 정치적 권리만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권리까지 포괄한다.
셋째, 상징적 수사를 넘어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냐는 질문이 많았다. 화려한 연사들의 감동적인 연설과 고위급 패널이 실제 정책이나 시민사회 강화로 이어질까? 아니면 일주일 후면 다들 잊어버릴 일회성 이벤트일까?
베를린, 책임질 수 있어?

▲베를린 자유 주간 국제회의 개막 행사에서 젊은 퍼커션 그룹이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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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베를린은 자유의 도시란 타이틀을 지켜낼 수 있을까? 1989년의 베를린은 자유의 상징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과거의 영광을 재활용하는 것과 새로운 역할을 창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베를린이 자유 도시의 축이 되려면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이 많다. 정치 경제적 양극화, 극우주의의 부상, 이주민 혐오, 관료주의의 경직성.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이 일부 주에서 20~30%를 득표하는 나라가 다른 나라 반체제 인사들 초대해서 자유를 논한다? 이 행사로 극우의 확산이 저지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걸까?
독일의 이중잣대도 문제다. 중국 인권 문제엔 원칙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중국 시장은 포기 못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엔 분노하지만, 수십 년간 러시아 가스에 의존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의 도시' 운운하는 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하지만 냉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베를린 자유 주간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중요한 대화를 시작했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전 세계 반체제 인사들에게 플랫폼을 제공했고,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공론장을 만들었다. 이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진짜 문제는 어떻게 지속가능한 변화로 이어지느냐다. 베를린이 진정 자유의 도시가 되려면, 화려한 행사 너머를 봐야 한다. 그것은 다원성과 비판에 대한 개방성을 의미한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용기를 의미한다. 자유를 서구 중심적으로만 이해하려는 편협함도 극복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국 내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극우당 지지율은 지금 심각할 정도로 높아졌다. 극우당 지지자 중에는 "민주주의는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며 차라리 누군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속 편하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먹고살게만 해 주면 된다고 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이런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가져온다.
베를린 자유 주간이 앞으로 연례행사로 자리 잡고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간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자유는 선언문이나 현수막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태 당연한 권리로 여겼던 자유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경종을 울리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경종을 매우 크게 울려야 할 때인 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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