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25 13:30최종 업데이트 25.11.2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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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연합=OGQ

한국 남성은 '억울'하다. 자신들은 한마디 말부터 행동 하나하나까지 '검열'당하고 있다고 믿는다. 잘나가는 선배들에게 전수받은 농담은 성희롱으로,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애정 표현은 성폭력으로 재정의하는 세상이 가혹하다고 느낀다. 자신이야말로 '역차별'의 피해자라는 이들은 '남성'이라서 강제되는 의무와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혜택을 비교하며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사회적 약자로 위치 짓는다. 이를 위해 군복무와 여성할당제가 '구조적 역차별'의 사례로 등장한다.

10년 전에는 '남성운동'으로 불리던 이러한 흐름에 한 남성은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부당한 배당을 늘려달라고만 주장"하는 대신 "남성으로서 자신의 삶과 위치를 고민하고, 지배적인 남성성을 해체함과 동시에 탈피하며 대안적인 남성성을 구상"하기를 주문했다. 모름지기 구조적 성차별과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반대한다는 것은 평등과 권리를 위한 투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인사혁신처에서 공개한 '2025 공공부문 균형인사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양성평등채용목표제를 적용하여 추가 합격한 인원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다. 국가직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14명, 지방직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100명 더 추가 합격해 양성평등을 위해 마련된 제도의 혜택을 본 것이다.

이런 설명만으로 남성들의 억울함이 해소될 것 같진 않다. 집단적 억울함은 제도가 닿지 않는 일상의 틈새에서 차곡차곡 축적돼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차별하면 '정수기 물통 교체,' '명품 프러포즈,' '여성전용,' 같은 사례들이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은 그 자체로 가부장제적 질서와 성역할 고정관념을 반영하거나, 성폭력 위험으로부터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려 만든 후속장치이다. 만약 어머니, 연인, 자매, 동료나 선후배 여성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대해 왔다면, 누구도 성차별·성폭력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란다면, 학교·직장·가정에서의 성평등을 주장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정부는 역차별 사례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역차별에 대한 믿음을 성급히 용인해 잠깐의 위로를 제공하고, 단기적 혜택을 몰아주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여성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분노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가족구성원이 자행하는 폭력을, 짓궃은 장난이라는 이유로 선을 넘는 행동들이 스토킹과 데이트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남성들이 만약 정말로 억울하다면, 타인으로부터의 선물이나 호의를 가만히 기대하는 대신 타인의 호감을 얻고 사회적 관계를 쌓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경험치를 쌓을 수 있도록 튜토리얼을 제공하는 것이며, 더 이상의 성희롱과 성폭력을 "어쩔 수 있는" 일이나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차별'에 맞서는 배움 필요

가령, 이런 시설이 있으면 어떨까. 생명의 신비와 사랑의 가치, 임신·출산 과정과 사춘기의 신체 변화, 상호 간 동의와 경계 짓기, 타인의 권리와 인격을 침해하거나 불편함을 유발하는 상황에서의 대화법, 차별과 폭력에 대한 대처 방법과 지원 기관 연락처 등. 복잡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례별 상황을 연습하며, 부모·친구와 함께 논의해 볼 수 있는 안전한 장소 말이다. 이 땅의 남성들이 '억울'한 이유 중 대부분에 대한 답을 주는 시설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남성은 그동안 요구받지 않은 평등을 요구받으면서 '억울함'이라는 집단적 정서를 쌓는다.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 대한 집단적 반발이나, '페미니즘 때문에' 남성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주장이 그러한 종류다.

그러나 차별과 평등에 대한 감각 역시 배우며 길러진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혹은 적응할 능력이 없는 남성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공간 역시 필요하다. 농담과 성희롱의 경계가 헷갈릴 때 실례가 되는지 되묻거나 제지할 수 있는 법을 배우고, 거절을 듣거나 이별을 맞는 순간을 노랫말처럼 미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광활한 온라인에서 개인정보가 담긴 사진이나 영상을 동의 없이 저장·합성·유포·수익화하는 범죄를 벌해야 한다. 발달이 더디거나 인지능력에 장애가 있는 아동·청소년도 마찬가지다. 다만 더 쉬운 말과 더 많은 그림, 시각·청각·촉각을 활용한 보조도구가 필요할 뿐이다.

한국에는 이미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성교육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시설이 있다. 청소년성문화센터다. 체험관을 운영하거나 교육기관·공공기관을 찾아가 성교육을 제공한다. 자녀가 '나는 어떻게 태어났냐'고 묻기 시작했다면, 혹은 장애가 있는 자녀가 부모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면, 보호자 동반 교육을 신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역차별' 사례를 찾고,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바꾸는 사이 오히려 남성들의 '억울함'을 해소할 좋은 방안은 그 세가 줄어들고 있다. 이 땅의 여느 사회서비스가 그렇듯, 청소년성문화센터의 교육 질과 콘텐츠 다양성은 지역별 편차가 크다.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며 지역의 유관기관과 촘촘히 연계하고 디지털 성폭력에 관한 최신 교육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반면 민간이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체제에서는 기관이 지역의 요구에 부응하거나, 사회적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기관의 철학이나 재정적 여력,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관계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어디에 손을 내밀 것인가

10월 1일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었다.이정민

공통된 문제는 인력과 예산이다. 관할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존망이 불확실한 틈을 타 수도권·광역시를 벗어난 소위 인구 유출 지역을 중심으로 젊은 종사자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연간 지원액은 센터당 약 1억 7천만 원 수준, 지침상 종사자 인건비는 약 2547만 원이다. 이는 사업 규모와 근로조건을 위탁운영의 주체와 지자체의 지원에 의존하게 만들고, 출장으로 얻는 교육비 수입으로 운영비와 인건비를 보전하기 위한 종사자의 부담을 심화시킨다.

이런 지역 격차와 운영의 책무성 부재는 결국 성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교육의 연속성이 끊기고, 숙련 인력이 빠져나가며, 가장 필요한 대상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에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성교육에 대한 일부 종교단체의 반대도 거세다. "청소년을 조기에 성애화한다", "동성혼을 조장한다"는 주장이 반복된다. 죄송하지만, 어느 세상에 살고 계시는지. 성인용 콘텐츠가 손끝에서 재생되는 세상이다.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전달받은 사진이 동의 없이 유통되고, 몰래 촬영된 영상이 상품처럼 거래되고 있다. 그것도 n 백만 명 단위로.

학교 성폭력과 디지털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는 청소년 가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 우리는 누구에게, 어디에 손을 내밀 것인가. 순결 사탕을 나눠 주며 교화를 시도하기보다, 올바른 지식과 진중한 대화로 남성(청소년)이 성·관계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모두를 위한 성교육 표준안을 개발하고, 성교육 종사자의 전문성과 근로조건을 강화하고, 투명한 운영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공적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디에 거주하든, 성별에 구애 없이, 설령 장애가 있더라도, 양질의 성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성별에 구분 없이 모든 이들이 차별에서 해방되기 위한 지름길은 멀리 있지 않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ealth Socialist Club 블로그에도 실립니다.인용시 작성자명을 Health Socialist Club으로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시: Health Socialist Club(2025). 문의는 healthsocialistcl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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