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958년 8월 20일 자 기사 '또 벌어진 국회유혈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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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기물들이 아직은 '경질(硬質)'이던 1958년 8월 19일, 여야는 연초전매법 개정안을 놓고 충돌했다. 단속 강화를 통해 재정 수입을 높이는 이 개정안에 대해 민주당은 급한 사안이 아니라며 상정을 반대했다.
다음날 <조선일보>에 따르면, 경남 진주 출신인 56세의 김용진 민주당 의원은 "벌칙을 강화해서 양담배 피우는 시민을 괴롭히려는 이런 개정안은 뒤로 돌려도 되지 않느냐?"라며 노발대발했다. 김용진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경남 의령 출신의 이영희 자유당 의원은 이 말을 듣고 "그런 독선이 어디 있느냐?"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김용진이 "뭣이 어째?"라며 흥분하고, 이웃 지방 사람인 두 의원 간에 욕설과 호통이 오갔다. 이 기사에 첨부된 사진에는 서 있는 김용진과 앉아 있는 이영희가 각각 X와 O로 표시됐다. X와 O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던 중, 김용진이 좀전까지 커피가 들어 있었던 유리컵을 들더니 책상 위로 내리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는 다음에는 재떨이를 깨트린 뒤 던지려 했다. 옆에서 말리는 바람에 이 유리 제품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그는 이번에는 명패를 집어 던졌다. 여덟 살 적은 이영희는 이 공격들을 모두 피했다.
번번이 '무기'를 든 쪽도 김용진이고, 피로 물든 것도 김용진이다. 유리컵과 재떨이를 내리칠 때 피가 났던 모양이다. 이 피는 같은 당 김훈 의원의 와이셔츠에도 묻고, 어이없는 폭력 사태를 쳐다보며 웃음을 터트렸던 36세의 서임수 의원(무소속)에게도 한 방울 튀었다고 위 기사는 보도했다.
의사당에서 무기를 드는 쪽은 아무래도 야당인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다고 야당만 비난하기는 힘들다. 자유당이 국민 여론에 반하는 정책이나 법안을 수적 우위를 앞세워 무조건 밀어붙인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없애는 독선 정치가 이 시기의 의사당 폭력을 유발했다.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의 날치기 통과는 1952년의 위헌·불법 개헌(이른바 발췌개헌)이다. 이때 이승만은 군대(헌병)를 국회 폭력에 동원됐다. 의사당 내에서 홧김에 뭔가를 던지는 수준을 뛰어넘어,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짓밟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승만은 국회 폭력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장본인이다.
1950년 전후의 야당 의원들은 1948년부터 여수·순천에서, 한국전쟁 발발 직후부터 전국 곳곳에서 이승만 정권이 반대세력을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런 뒤에 그들은 이승만 정권이 자신들을 향해서도 군대를 동원하는 상황을 목격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공포심을 조장했을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승만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응이 불가능했던 그런 상황이 컵·명패·재떨이 등을 집어 들게 만든 배경이다. 야당의 행동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지만, 이 시기의 국회 폭력은 의회를 무시하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이승만의 국정운영 스타일이 낳은 산물이다.
미군정기의 테러와 학살 풍조로 폭력적 정치 문화가 조성된 상황에서, 정부수립 당시의 대통령마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의회를 폭력의 장으로 만들었다. 이승만이 국회로 끌어들인 폭력적 문화는 그 후의 한국 정치에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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