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정책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정 장관은 정부와 여당이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추진 중인 '지역의사제'에 대해 "위헌 소지가 거의 없다"며 "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시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지역의사제를 둘러싼 논의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빠져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새 제도를 통해 채우고자 하는 '지역'과 길러내고자 하는 '의사'는 도대체 어떤 지역과 어떤 의사인가. 의료의 공백을 메워야 할 공간이 서울이 아닌 모든 지역인지, 상급종합병원이 있는 대도시가 아닌 지역인지, 혹은 보건진료소가 있는 의료취약지를 의미하는지 등을 현재로서는 알기 어렵다.
이러다 보니 공청회에서도 제도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염두에 둔 문제와 고통의 내용이 크게 달랐다. 아직 도입되지 않은 제도라 구체적인 내용이 다 준비되지 않았다고 해도, 입법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구체화하고 그에 걸맞은 정책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기울일 때 어렵게 도입된 새로운 제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사제 도입에 반대하는 주장 중에는 '의사들이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들면 지역 근무를 강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각 지역이 의사 유치를 위해 서울에 준하는 경제발전과 교육·문화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것인데,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공청회에 참석했던 경상국립대학교 김영수 교수는 시민이 믿을 수 있는 병원과 의료인이 '살 만한 지역'의 조건이 지역 발전의 지지대가 된다고 말했다.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서로 돌보는 마을을 만들어 존엄한 노년을 준비하는 데 힘을 보탤 의료인을 양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어떻게 선발·교육·수련시켜야 할까
둘째, 지역의사제가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뽑고 키우자는 것인데, 막상 이들을 어떻게 선발하고, 교육하며, 수련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 의과대학을 다니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갑자기 지역사회 책무를 중히 여기는 다른 의료인이 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의학교육과 실습, 전공의 수련이 이루어져야 할까?
참고할 만한 사례를 찾기 어렵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스스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주민들의 삶과 일터를 그리듯 상상할 수 있는 의사를 키워내야 한다는 점이다. 직접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실에 누워서, 진료과와 진단명이 붙은 '환자'가 되기 이전의 사람들, 그들의 일상과 지역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의사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퇴원한 환자가 어떤 일상을 겪는지, 삶의 신산함이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미루어 짐작하고 개입 지점을 고민할 역량이 있는 의료인이 절실하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모습. 자료사진.
연합뉴스
이를 위해서는 이들이 사회적 학습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의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의 주체로 나서는 지역의 일꾼으로 활동할 의사를 양성하자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일본의 자치의대 출신 의료인은 "내가 원하는 전공보다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분과를 수련받으려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의료인을 어떻게 선발하고, 길러낼 수 있을까? 시장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사회적 가치와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며 기꺼이 그에 복무하려는 의료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조롱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지역의사제 반대의 논리가 되어선 안 된다. 전문직 노동 윤리가 보여주는 다층적인 모습조차 정책을 기획하는 데에 고려해야 할 현실로 받아들여, 대안적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역의료인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관계
정부는 2025년 5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책정해 지역·필수의료 교육 강화를 위한 의대 교육과정 혁신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지역사회기반 의학교육'은 단순히 "실습 장소를 대학병원에서 개원가로 옮기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보다 더 넓고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바로 병원 밖 시민들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묻고 반영하는 것으로 이는 지방정부의 중요한 정치적 책무다.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의료인을 기르는 데에 돈과 법이 아닌 다른 유인책이 필요하고, 그것은 아마도 관계가 아닐까 한다. 지역의 사람들과 더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의대생 개인의 분투로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의과대학, 지방정부, 중앙정부가 한데 힘을 모아 의료와 지역사회의 거리를 좁혀 나가야 한다.
의료계가 우려하듯 지역의사제는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근본 대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는 다른 의료, 지역사회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의료인을 기대하는 마음이 새로운 의료정책을 한발씩 진전시킬 것이다. 한국 의료가 마주하게 될 암울한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비관과 냉소를 멈추고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보태기를 권한다.
▲김새롬 인제대 의대 교수
본인
필자 소개 : 김새롬은 예방의학 전문의로서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관심 영역은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시민참여와 공공성, 젠더와 건강, 건강 불평등입니다.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의 공저에 참여했고, 팀 블로그 'Health Socialist Club'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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